정부 추가출자 법안 무산돼 파산설 ‘솔솔’…장기적 관점에서 지원책 마련해야 (사진) 한국광물자원공사는 17개국에서 31개의 해외 자원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광물자원공사가 투자한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 광산.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한국광물자원공사의 운명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당장 5월 5600억원 정도의 해외 만기 금융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데 이만한 거액을 상환할 여력이 없다.
자금 조달을 위한 최후의 보루였던 ‘1조원 추가 지원’ 법안마저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벼랑 끝에 몰린 상태다. 일각에선 파산(디폴트)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예상치 못한 개정안 부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한국광물자원공사법 개정안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광물자원공사는 기존 금융 부채 만기 도래에 따라 올해 약 7400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2019년 9610억원, 2020년 7355억원, 2021년 1조1843억원, 2022년 7896억원 등의 부채가 남았다. 2023년 이후에도 4960억원의 금융 부채 만기가 도래하는데 총규모는 5조원이 넘는다. 과거 정부에서 추진한 무리한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해 부채가 쌓였다는 분석이다. 가장 급한 불은 5월 돌아오는 해외 사채 만기다. 5억 달러(약 5600억원)를 갚아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회사채를 발행하더라도 이 정도의 자금을 마련하기 어렵다.
현재 광물자원공사의 회사채 발행 잔액은 국내외 사채를 포함해 총 3조7158억원이다. 이 중 1조7000억원이 국내, 나머지는 해외 사채다. 현행법상 광물자원공사의 사채 발행 한도는 자본금의 2배로 제한돼 있다.
이런 가운데 광물자원공사는 이미 누적 자본금(1조9883억원)의 2배에 육박하는 3조7046억원의 사채를 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현재 사채 발행 여력은 2700억원에 불과한 상황이다. 당장 3000억원이라는 금액이 부족하다.
이를 마련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바로 정부의 추가 출자였다. 광물자원공사의 자본금을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켜 추가로 사채를 발행할 수 있게 하면 막힌 자금줄에 숨통이 트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8월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광물자원공사 자본금을 2조원에서 4조원으로 증액하는 내용의 ‘한국광물자원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당시 송 의원 측은 공사의 해외투자 사업 자산 가치 하락으로 자금 조달이 힘들어졌고 저유가 시기 해외 자원 개발 투자 확대의 적기라는 점에서 개정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고 전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상임위 심사 과정을 거치며 광물자원공사법 개정안은 광물 출자 금액이 3조원으로 줄어들었지만 법제사법위원회까지 무사하게 통과하면서 무난하게 통과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29일 본회의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본회의 발언에 나서 “공기업도 잘못 경영한다면 문을 닫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반대표가 무더기로 나와 개정안이 부결된 것이다. 찬성 44명, 반대 102명, 기권 51명으로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에 따라 회사채 추가 발행 계획이 무산되면서 광물자원공사 자력으로 당장 만기가 도래하는 해외 사채를 갚을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어렵게 됐다. 광물자원공사의 파산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의 협조 얻을 수 있을 것”
그러면 광물자원공사는 이대로 파산 절차를 밟는 것일까. 현재 상황만 놓고 본다면 그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광물자원공사는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미국·중국·캐나다·호주 등 17개국에서 31개(생산 14, 개발 8, 탐사 9)의 해외 자원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여기에 투입된 총투자 금액은 43억 달러로, 한국 전체 해외 자원 개발 투자 금액(171억 달러)의 25% 수준이다.
투자 금액도 금액이지만 광물자원공사가 파산한다면 국가 신뢰도 문제가 가장 우려된다. 광물자원공사의 최대 주주는 대한민국 정부다.
전체 지분의 99.86%를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0.14%는 KDB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다. 특히 광물자원공사의 해외 자원 개발 프로젝트는 현지 또는 해외 업체들과 합작해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광물자원공사의 파산으로 사업이 중단되면 국가 신뢰도에 금이 갈 수밖에 없다. 향후 해외 자원 개발 사업 진출 시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일본·중국 등 주변국들이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꾸준히 해외 자원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더욱이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5%에 달하는 에너지 자원 빈국인 만큼 한쪽에서는 해외 자원 개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여당이 국회에서 부결된 한국광물자원공사법 개정안을 정부안으로 다시 발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의 공식적인 의견은 “아직까지 정해진 바 없다”는 것이지만 이는 여전히 검토 중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개정안 발의부터 통과까지 최소 3개월에서 6개월까지 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5월 만기인 해외 사채를 상환하는 문제가 있지만 이 부분 역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광물자원공사의 생각이다.
이제욱 광물자원공사 자금팀장은 “해외 채권 중 코리안페이퍼(KP)물을 제외하면 순수 외국인이 인수한 해외 사채는 3억 달러 정도다. 현재 정부와 함께 롤오버(만기 연장)를 검토하고 있는데 어렵지 않게 롤오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정민 NH투자증권 연구원도 “광물자원공사와 관련한 개정안 부결은 공기업의 재무 개선 의지와 최근 정치적 이슈의 경고로 볼 수 있다”며 “구체적 자구 계획을 동반한 개정안이 재상정되면 국회와 정부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향후에도 4조원 정도의 천문학적인 금융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 광물자원공사에 대한 여당 내 기류는 여전히 심상치 않다. 즉, 개정안이 재상정되더라도 통과를 낙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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