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글로벌 금융위기 10년…한 치 앞 모르는 초불확실성 시대로 돌입
‘유포리아’를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불확실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불확실성 시대(uncertainty)’라는 용어가 나온 지 40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제는 ‘초불확실성 시대(hyper uncertainty)’에 접어들었다. 이전보다 더 영향력이 커진 심리 요인과 네트워킹 효과로 ‘긍(肯 : 긍정)’과 ‘부(否 : 부정)’, ‘부(浮 :부상)’와 ‘침(沈 : 침체)’이 겹치면서 앞날을 내다보기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세계경기는 사이클이 사라졌다든가 있더라도 그 폭이 줄어들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정도로 장기 호황을 경험했다. 하지만 2008~2017년의 세계는 그 어느 쪽도 옳은 결론이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오히려 금융을 중심으로 네트워킹이 한층 진전되는 경제에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아졌고 심리적인 요인이 얼마나 큰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금융위기 이전과 다른 시장경제

금융 위기 이전의 경기순환은 주로 인플레와 관련돼 발생했다. 종전 경기순환 이론대로 한 나라 경기가 호황을 지속해 인플레가 문제가 되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대신 경기는 하강 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금융 위기 이후 경기순환도 금융 불안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종전과 같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동반 침체가 함께 진행됐다는 점 △금융 불안에서 실물경제 침체로 전이 속도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빨랐다는 점 △경기 하강 폭이 짧은 순간에 대공황 때와 버금갈 정도로 컸다는 점 △위기가 계속해 이어진다는 점 등이 종전과 다른 점이다.

이 때문에 종전의 경기순환 패턴을 기초로 한 전망이 경제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예측 무용론’까지 나올 정도로 예측 기관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예측 기관들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확인된 ‘네트워킹 효과’에 심리적 요인 등을 복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하는 등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그런 만큼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2분기 이후 지속돼 왔던 경기 논쟁은 올 들어 ‘대안정기(great stabilization)에 진입할 것인가’ 아니면 ‘대침체기(great recession)에 재진입할 것인가’ 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무술년, 올해로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째를 맞았다. 금융 위기 이후 모든 예측 기관들은 경제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분석을 꾸준히 연구해 왔다. 금융 위기로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활동을 주도해 왔던 글로벌 스탠더드와 전혀 다른 ‘뉴 노멀(new normal)’ 시대가 전개됐기 때문이다.
‘유포리아’를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
금융 위기 이후 세계경제를 특징짓는 현상인 뉴 노멀은 종전의 글로벌 스탠더드와 글로벌 거버넌스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금융 위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와 국제금융 시장을 주도했던 미국과 서방 선진 7개국(G7)에서 발생했다. 이제 금융 위기 이전에 통용됐던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신뢰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이행 강제력은 땅에 떨어졌다.

뉴 노멀 시대에는 세계경제 최고 단위부터 바뀌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규범과 국제기구를 주도해 왔던 미국을 비롯한 G7에서 중국이 새로운 중심축으로 떠오른 주요 20개국(G20)으로 빠르게 이동되고 있다. 앞으로 태동될 국제 규범은 보다 많은 국가들의 이익이 반영될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주류 경제학에 대한 회의론 확산

글로벌 추세에도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트럼프 정부 출범을 계기로 신(新)보호주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기존 국제기구에 대한 회의론과 함께 신역할론이 부각되고 있다. 2010년 11월 열렸던 G20 서울회담을 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쿼터를 재조정했다. 세계무역기구(WTO) 등 다른 국제기구들도 IMF와 비슷한 운명을 걷고 있다.

경제학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다. 주류 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 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이 그것이다. 금융 위기를 계기로 ‘합리적 인간’을 가정한 주류 경제학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는 대신 심리학·생물학·인문학 등을 접목해 행동경제학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가정이 무너진다면 자유와 창의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에도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금융 위기와 같은 시장 실패 부문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시장과 국가가 경제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혼합경제나 아니면 국가자본주의가 유행하고 있다. 규제 완화보다 규제 강화, 사적 이윤보다 공공선이 강조되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도 많아지고 있다.

가장 많은 변화가 일고 있는 곳은 역시 산업 분야다. 모든 것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증강현실(AR) 시대를 맞아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차별화 혹은 고부가 제품을 통한 경쟁 우위 확보 요구가 더 커졌다.

수요 면에서는 트렌드의 신속한 변화에 따라 고부가 제품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는 반면 이들 제품 소비에 드는 비용을 무료 콘텐츠 제공 등을 통해 줄여나가는 이율배반적인 소비 행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한 인간 중심의 커넥션은 사회현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종전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나눔·기부 등 이른바 ‘착한 일’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고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기업과 계층에 대해 가치와 평가를 부여하는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많은 분야에 걸쳐 변화를 몰고 오는 ‘뉴 노멀’이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로 정착되지 못할 때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뉴 노멀에 대한 실망감과 금융 위기 이전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향수까지 겹치면서 ‘규범의 혼돈(chaos of norm)’ 시대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뉴 앱노멀(new abnormal) ’ 시대다.

위기가 더 큰 위기를 낳는다는 ‘나선형 복합 위기’가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위기가 10년마다 반복되는 ‘10년 주기설’에 따라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째를 맞는 경제 주체들은 연초부터 세계경제와 증시에 ‘유포리아(상황이 계속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시장 심리가 과도한 안도감과 희열감에 빠지는 것)’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낙관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기대와 희망만을 갖기에는 편하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