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 논란,속사정은 자금 마련 위한 ‘고육지책’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셀트리온 주가 과열 논란’에 불씨를 댕긴 외국계 증권사들이 하나같이 지적한 공통점이 있다. 셀트리온 3형제로 묶여 있는 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셀트리온제약이 ‘사실상 하나’의 회사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셀트리온의 매출 실적이 상당히 부풀려 있다는 게 핵심이다. 이는 사실 2011년 이후 잊을 만하면 제기되는 해묵은 논란이다.
셀트리온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셀트리온제약은 ‘셀트리온’이라는 한 지붕 아래에서 각기 그 역할과 기능이 뚜렷하게 구별돼 있다.
바이오시밀러 기업인 셀트리온은 바이오 의약품을 개발·생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셀트리온 3형제의 중심축이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셀트리온 제품의 세계 판권을 쥐고 있다. 쉽게 말해 셀트리온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은 셀트리온헬스케어가 독점적으로 마케팅$판매하고 있는 구조다. 셀트리온제약은 셀트리온의 합성 의약품 복제약(제네릭) 전문 자회사다. 셀트리온 제품의 국내 판매를 담당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회사가 해야 할 역할을 셀트리온 3형제가 나눠 맡고 있다는 지적이 일견 타당하다. 그러면 셀트리온은 왜 이와 같은 구조를 고집하고 있을까. 셀트리온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 ‘바이오 문외한’ 선입견 넘을 방책
지금은 대표적인 글로벌 바이오 기업을 이끌고 있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바이오’와는 거리가 먼 비전공자 출신이다. 건국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서 회장은 1983년 삼성전기에 입사해 직장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삼성그룹 비서실을 거쳐 한국생산성본부에서 대우그룹 컨설팅을 하다가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과 연을 맺는다. 대우차에서 최연소 임원으로 경영혁신팀을 책임졌던 서 회장은 1999년 대우차 워크아웃을 계기로 직장 생활을 마감한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서 회장은 대우차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2000년 넥솔을 창업한다. 바로 이 회사가 셀트리온의 전신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넥솔은 마땅한 사업 아이템이 없었다. 그저 ‘뭐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1년간 적당한 아이템을 찾아다니던 중 우연한 계기에 생명공학(BT)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서 회장은 그 무렵 세계 바이오산업의 중심지인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해 간염 백신 개발로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석학들을 만났다. 그들로부터 머지않아 블록버스터급 매출을 내고 있는 바이오 의약품들의 특허가 만료된다는 사실을 듣게 됐다.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 특허가 만료되면 바이오시밀러(특허가 만료된 바이오 의약품을 대상으로 동일하게 개발하는 바이오 의약품) 시장이 확대될 것이란 확신을 얻었다.
바이오 의약품 위탁 생산(CMO)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KT&G 등으로부터 약 1500억원의 투자 자금을 모아 2002년 셀트리온을 설립했다. 하지만 생명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서 회장의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도전은 무모하게 보이기 십상이었다. 무엇보다 사업 초기 수년간 이렇다 할 만한 매출이 없었다. 그 상태에서 지출만 계속되자 회사는 심각한 자금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 생산하기로 한 에이즈 백신 임상이 실패하며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당시 서 회장은 ‘죽을 결심’으로 사채시장을 쫓아다니며 회사를 살리는 데 온힘을 쏟았다. 서 회장은 당시를 “명동 사채시장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들락거렸다”고 회고했다.
숨통이 트인 것은 2005년 무렵이다. 다국적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와 20억 달러 규모의 바이오의약품 위탁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2008년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아벤티스와 계약했다. 셀트리온은 위탁 생산으로 1000억원 가까운 매출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CMO에만 머무를 수 없었던 서 회장은 2009년 셀트리온헬스케어를 설립한다. 본격적으로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뛰어들기 위한 서 회장의 ‘큰 그림’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셀트리온은 본격적으로 바이오시밀러를 직접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특히 각 나라마다 임상 시험에 필요한 의약품과 생산 시설 적합성을 검증하는 작업이 까다로웠다. 당시 셀트리온의 송도 공장에서는 바이오시밀러 허가에 필요한 제품을 생산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예전만큼 CMO사업을 통해 매출을 내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렇다고 국내에서 투자자 금을 유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바이오 문외한’이라는 서 회장에 대한 선입견이 그만큼 컸다. 당시 국내 시장의 외면을 받았던 셀트리온에 동아줄이 돼준 것은 해외 투자자들이었다. 2010년 2080억원을 시작으로 총 3500억원을 투자한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을 비롯해 해외에서 모은 투자 자금만 1조4000억원이나 됐다. 이 자금을 바탕으로 셀트리온의 첫 항체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의 임상을 진행할 수 있었다. ◆1000조 바이오 시장 잡을 양 날개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셀트리온이 ‘돈 걱정 없이’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지속하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이었다.
셀트리온은 셀트리온헬스케어에 제품 판권을 넘겨주고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셀트리온이 생산한 모든 제품을 사들였다. 이를 통해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의 허가 과정에서 필요한 시험 생산 비용과 개발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셀트리온이 개발 중인 바이오시밀러의 승인 이전에 생산된 시제품을 ‘취소 불능’의 조건으로 구매했다. 이는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판매 허가를 받지 못해도 셀트리온은 이미 셀트리온헬스케어에 제품을 판매한 대금을 다시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셀트리온에서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실패하면 그 피해를 셀트리온헬스케어가 떠안는 구조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서 회장의 지분이 35.72%다. 그 외 JP모간(17.98%)과 테마섹(12.51%) 등 해외 투자자들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의 성공 확률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큰 상황에서 셀트리온헬스케어 주주들이 그 위험을 떠안은 것이다.
셀트리온제약은 셀트리온이 2009년 150억원에 인수한 한서제약이 그 시작이다. 연간 1000조원 이상에 이르는 글로벌 바이오 의약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바이오와 케미컬 의약품이라는 양대 축을 갖춰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2010년부터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케미컬 의약품을 개발해 온 셀트리온제약은 2015년 1500억원을 투입해 국내 단일 제제 최대 규모의 첨단 대규모 GMP(의약품 제조 관리 기준) 공장을 오창에 완공하며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공장은 연간 최대 의약품 100억 정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그동안 셀트리온의 바이오 의약품 연구$개발(R&D)과 글로벌 허가, 마케팅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케미컬 의약품에도 접목해 세계 제네릭(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복제약)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셀트리온제약의 오창 공장은 지난해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합성 의약품 복제약(제네릭) 수출을 위한 실사를 완료하고 올 상반기 최종 허가를 앞두고 있어 미국 시장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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