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세 더욱 거세질 전망…마찰 빌미 제공하는 원인 먼저 제거해야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되는 시점부터 우리 경제에 미국발 악재들이 이어지고 있다.
가전제품과 태양광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 상호 호혜세 부과 방침 발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재확인, 안보와 연계된 철강 제품에 대한 고관세 부과 방침 천명 등이다.
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인 ‘트럼프노믹스’의 총체적인 기조는 ‘미국의 재건’이다. 직전 오바마 정부가 태생적 한계였던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크게 손상된 국제 위상과 주도권의 반작용에서 나온 경제정책이다. 한마디로 글로벌 이익과 미국의 국익이 상충될 때에는 후자를 중시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트럼프 통상 정책, 과거 정권들과 달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노믹스를 구체화하기 위해 조직과 인선을 정비했다. 최우선 과제인 손상된 국익을 복구하기 위해 국가안보위원회(NSC)와 동급 위상의 ‘국가무역위원회(NTC)’를 신설했다.
인선도 윌버 로스 상무장관, 로버트 라이시 무역대표부(USTR) 대표처럼 중국을 비롯한 대미 무역 흑자국에 강성 기조를 갖고 있는 인물로 채워졌다.
보호주의 색채로 본다면 ‘역대 최고’로 평가된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난 1년 동안 보여준 대외 통상 정책에는 이전 정부와 구별되는 네 가지 특징이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첫째, 미국에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면서 부담과 책임만 지는 국제 규범과 협상에 대한 우선순위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무역기구(WTO)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의사, 파리 신기후협상 불참 통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 FTA 폐기 혹은 재협상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둘째, 국가별로는 무역 적자 확대 여부에 따라 이원적 전략(two track)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 적자가 대미 흑자국에 성장과 고용을 빼앗기는 과정으로 인식해 왔다. 이 때문에 무역 적자 확대국에 대해 통상 압력을 가하고 다른 국가와는 공존을 모색하는 ‘차별적 보호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문제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전부터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 심상치 않다. 무역·통상·지식재산권 등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등 경제 외적인 분야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환율 분야가 심하다. 세계경제 양대 축인 두 국가 간 마찰은 그 파장이 커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셋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통상 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종전과 다른 점이다. 반덤핑관세·상계관세 등 WTO 규범에서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수단뿐만 아니라 미국의 통상법에 근거한 수단까지 동원하고 있다. 심지어는 미국 의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명령으로 발동할 수 있는 슈퍼 301조까지 동원한다.
넷째, 통상정책을 다른 목적과 결부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미국 통상법 232조에 근거해 통상을 안보와 연계한다든가, 대북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한국에 집중적으로 통상 압력을 높이고 있다. 한국 등 해당 국가가 트럼프 정부의 통상 정책에 쉽게 대처하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력은 앞으로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출범 이후 1년 동안 미국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극단주의적 보호주의’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오히려 확대됐다. 올해 11월 예정된 중간선거 이전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트럼프 정부는 궁지에 몰릴 수 있다.
◆ 과다한 경상수지 흑자 줄이기도 시급
중요한 것은 주요 교역국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통상 정책이 먹힐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중국·한국 등을 대상으로 한 ‘통상 압력’ 카드는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게임이다.
중국은 진퇴양난 여건이다.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력에 반발한다면 수출이 둔화되면서 ‘경착륙’과 ‘중진국 함정’ 우려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대로 수용한다면 시진핑 정부의 ‘팍스 시니카(중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 구상은 물 건너갈 수 있다. 한국은 중국보다 더 어려운 처지다.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력에 반발한다면 수출이 둔화되면서 ‘구조적 장기 침체론(L자형 장기 침체, 일본식 잃어버린 10년 혹은 중진국 함정, 샌드위치 위기론)’이 급부상하고 남북 관계를 풀어 나가는 데 난항이 예상된다. 반대로 수용한다면 중국과의 관계 등에서 어려운 국면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럼프 정부의 네 가지 기준에서 보듯이 과거의 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에 일단 대응하기가 힘들다. WTO 분쟁처리기구(DSB)에 제소하는 등의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확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확정된다고 하더라도 트럼프 정부가 따르지 않을 수 있어 문제다.
그런 만큼 우리 스스로 트럼프 정부와 통상 마찰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근본 원인부터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다. 트럼프 정부의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은 궁극적으로 중국을 지향하는 만큼 우리의 대외 정책이나 남북 관계 등을 풀어갈 때 미국과 중국 간 중간자로서 ‘균형’을 잃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미국과의 무역 흑자를 포함한 과다한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미국 재무부 환율 보고서의 환율 심층 혹은 관찰 대상국 지정 요건(베네·해치·카퍼 의원의 첫 글자를 따 BHC 요건) 중 하나인 대미국 무역 흑자 200억 달러 기준 밑으로 축소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 때 국제적으로 약속해 놓은 ‘경상수지 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4% 룰’이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응 방식도 미국 등 주요 교역국의 통상 정책 기조 변화에 맞춰 ‘옴니버스 방식’으로 바꾸는 문제도 검토해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통상 정책을 남북 관계 등의 다른 정책과 분리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 정부가 다른 목적과 연관시켜 통상 정책을 추진하는 움직임과 불일치하는 만큼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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