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세 할머니가 경로당 막내…대한민국의 가까운 미래
[르포] ‘출생아 0명’ 서천군 마산면에 가다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나가 올해 일흔일곱 살인디 여기서 막내여. 그런데 아기를 어떻게 낳아.” 충남 서천군 마산면 나궁리 경로당에서 만난 이광녀 할머니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서천군 마산면에서는 지난해 신생아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았다. 2월 27일 찾은 서천군 마산면은 논밭에도 새싹이 돋지 않아 사람 없는 거리에 황량함을 더했다. 마산면은 서천군에서 가장 발전한 서천읍이나 장항읍과 거리가 멀고 농업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면 전체 770가구 중 658가구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젊은 사람들은 시내(서천읍·장항읍)에 살고 여기는 노인네만 살아서 그려. 마산면에 마산초 말고 지산초도 있었는디 20년 전에 없어졌어.”

경로당 맏언니인 선옥순(86) 할머니가 얘기한 지산초교는 1999년 학생 수 감소로 마산초교에 통합됐다. 올해를 기준으로 마산초교의 총 학생 수는 37명이다.

학생 수가 가장 적은 4학년은 3명뿐이다. 마산초뿐만 아니라 송림초·서남초·송석초·화양초·기산초·한산초·문산초·오성초·서면초 등 서천군 18개 초등학교 중 10개 학교의 총 학생 수는 50명을 넘지 않는다.

서천군의 고령화가 마산면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서천군 전체 평균연령은 51.8세다. 전국 평균연령인 41.5세보다 열 살 많다. 65세 이상 인구가 32.5%(1만7931명)를 초과해 이미 초고령사회(65세 인구 비율이 20% 이상)에 정착했다. 고령화에 따른 빈집 문제도 심각하다. 충남 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서천군의 빈집은 2564채로 충남에서 가장 많다.

◆인구 유출이 가장 큰 원인
[르포] ‘출생아 0명’ 서천군 마산면에 가다
서천군에 남은 산부인과는 딱 하나다. 몇 년 전까지는 분만도 가능했지만 현재는 수요가 맞지 않아 진료만 받을 수 있다.

“아이를 낳으려면 군산에 있는 산부인과나 준종합병원에 가야 해요. 20분에서 30분 정도 거리여서 크게 불편한 건 없어요. 서울에도 집 앞에 산부인과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원래 분만을 할 수 있는 산부인과도 하나 있었는데 5년 전쯤 없어졌어요.”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미경(가명) 씨가 말했다.

인구 절벽에 빨간불이 들어온 서천군은 한때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적이 있었다. 서천은 1960~1970년대 장항제련소와 장항항을 중심으로 한국 산업의 고성장을 이끌었던 곳이다.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장항에만 인구가 3만 명 정도 됐는데 지금 1만4000명 정도예요. 사회책 표지에 장항 제련소 굴뚝이 등장할 만큼 장항이 근대화의 상징으로 차지하는 위상이 컸어요. 주민 대부분이 제련소에 근무했다고 하니 지금의 울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서천이 고향인 군 직원에 따르면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장항은 1970년대 이후 공장 산업의 쇠퇴와 항구의 이동으로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 전형적인 도시 쇠퇴의 징후를 겪었다.

최근 서천군 인구 감소의 가장 큰 이유는 인근 지역으로의 인구 유출이다. 약 27만 명이 살고 있는 군산시는 서천과 차로 20분 거리다. 올해 말에는 서천과 군산을 잇는 동백대교도 개통될 예정이어서 이동이 더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서천읍의 한 공인중개사는 “서천 집값이 군산과 비슷하지만 군산의 교육 환경이나 문화 환경이 낫다”며 “군산에 살면서 (서천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에서 말하는 빈집은 논밭과 가까운 시골집들이고 젊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시내 아파트는 미분양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르포] ‘출생아 0명’ 서천군 마산면에 가다
올해 2월 서천군청에서 청 내 직원 37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인구 감소의 주요 원인을 양질의 일자리 부족 36%(305명, 복수 응답 가능), 주택 공급 및 가격 20% (169명), 열악한 교육 환경 19%(160명) 등 삶의 질적인 부분을 꼽았다.

서천군은 2020년까지 공공임대주택 100가구를 건설할 예정이다. 또 최근 장항의 산업 문화유산과 해변 생태 경관이 주목받으면서 국립생태원·국립해양생물자원관·문화예술창작공간·장항스카이워크·폴리텍대학 등 새로운 시설이 유치되고 있어 군 차원에서 거는 기대가 크다.

◆시골에도 삶은 있다

서천군은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최대 2200만원까지 지원하는 출산장려금뿐만 아니라 온 가구의 정책을 아우를 수 있는 출산 정책 컨트롤타워(가족누리센터), 노인 일자리 사업, 귀농·귀촌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인구 유출을 최대한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서천군 관계자는 “언론에서는 지방 소멸에 집중하지만 지방에도 삶이 있고 희망이 있다”며 “노인이 많이 사는 곳이라면 젊은 사람들을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행복한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서천군 인구의 32%를 차지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군에서 집중하고 있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지금까지 2000명 이상의 노인이 일자리를 얻었다.

서천군 노인복지팀 관계자는 “앞으로도 노인들이 희망하는 일자리가 있으면 적합한 일자리를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
[르포] ‘출생아 0명’ 서천군 마산면에 가다
2017년 대한민국은 사상 최하위 출산율을 기록했다. 서천군처럼 지난해 연간 출생아가 한 명도 없었던 읍면동(출장소 포함)은 25개다.

‘지방 소멸’을 처음 주창한 일본의 정치인 마스다 히로야 씨는 “현재와 같은 고령화 추세 속에서 지방이 소멸하고 나면 그다음 차례는 대도시가 된다”고 주장했다. 노인 인구 35.2%의 초고령사회 서천. 서천의 현재는 머지않은 대한민국 전체의 미래다.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