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개혁 플랜]
-참여연대 활동으로 ‘재벌 저격수’ 별명 얻어…‘합리주의자’란 평가도
20여 년간 대기업과 맞서온 ‘진보 경제학자’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공정위 수장이 되기까지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강성 이미지가 각인된 만큼 그가 공정위원장에 내정되자 재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청문회에서도 몇몇 의혹들이 불거지면서 야당의 반대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임명을 강행했다. ‘대통령 직권’ 카드를 꺼낸 것이다. 국회가 청문 보고서 채택을 거부하더라도 장관 인사는 대통령 직권으로 후보자를 임명할 수 있다.

김 위원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두터운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간 김 위원장의 행보를 살펴보면 문 대통령이 왜 김 위원장을 공정위 수장으로 고집했는지 엿볼 수 있다.

◆박사 논문에서 ‘독점자본’ 문제 지적

김 위원장은 오래전부터 대기업들의 지배구조와 시장 독점에 대해 비판해 온 ‘원조 대기업 개혁론자’로 꼽힌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부터 대기업의 시장 독점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인 ‘설비자금의 동원 및 배분체계에 관한 연구’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논문에서 대기업이라고 볼 수 있는 ‘독점자본’이 1980년대 말 이후 인플레이션을 동반한 새로운 경기 침체를 낳은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독점자본이 사회적 자원 배분을 지배함으로써 가격 체계와 가치 체계 괴리가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당시 한국 경제의 구조 개선을 위한 다양한 노력(금융자율화·금융실명제)들이 성과를 볼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대기업에 대한 문제의식은 향후에도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1994년부터 한성대 사회과학대학 무역학과 교수로 임용되는데, 외환위기를 겪은 1997년부터 대기업 개혁을 단순한 ‘생각’이 아닌 ‘실천’으로 옮기자고 결심하게 된다. 대기업이 변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미래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교수직을 유지하면서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소액주주 운동 등 대기업 감시 활동에 나서기 시작한다.

김 위원장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1999년 발족된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을 맡으면서다. 참여연대는 정부의 대기업 정책과 현대·삼성·LG·SK 등 5대 그룹의 구조조정 작업을 감시하고 비판하기 위한 취지에서 경제민주화위원회 산하에 재벌개혁감시단을 만들었다.
김 위원장은 교수·변호사·회계사 등 10여 명으로 구성된 감시단의 리더 역할을 맡으며 이름을 알려 나갔다. 언론에 그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재벌개혁감시단에서의 활약을 통해 2001년 경제민주화위원회가 확대·개편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직까지 맡게 된다. 이후 김 위원장은 대기업 문제와 관련한 대부분의 사건에 주도적으로 개입하며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 권리 행사를 위한 노력을 펼쳐 나간다. 거의 모든 대기업 문제와 관련된 이슈 뒤에는 참여연대, 정확히 말하면 김 위원장이 있었다.

결국 참여연대는 대기업들이 가장 껄끄러워 하는 대상이 됐고 정부 또한 대기업 정책을 수립할 때 참여연대에 자문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2006년 경제개혁센터를 참여연대에서 분리·독립해 경제개혁연대 설립을 주도하고 초대 소장에 오른다. 대기업 문제를 다루기 위해선 조직 자체의 전문성과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2004년 삼성 주총에서 몸싸움도

김 위원장은 공정위원장에 오르기 직전인 2017년 3월까지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맡았다. 20여년 넘게 시민단체 활동을 하며 급기야 ‘재벌 저격수’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간의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왜 이런 별명이 붙었는지 알 만하다.

김 위원장은 1999년 재벌개혁감시단장을 맡자마자 현대전자 주가조작과 관련해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 등 관계자 9명을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이 개인 또는 회사의 보유 주식을 대량 매각하는 등의 방법으로 주가조작에 관여, 막대한 시세 차익을 남겼고 반대로 투자자들이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손실을 봤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해체된 대우그룹과 관련해 김우중 전 회장을 상대로 주주 대표 손해배상 소송을 이끌기도 했고 LG그룹에 대해선 데이콤 주식 위장 분산 문제도 지적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LG그룹의 위장 계열사 소유 여부를 조사했다. 다만, 결과는 최종 무혐의로 처리됐다.

특히 그간의 행보들을 훑어보면 삼성그룹과의 일화들이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은 많은 이들이 눈치를 보며 주저했던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구조, 순환 출자 문제를 주저 없이 제기해 왔다.

그와 삼성의 인연(?) 역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1월 참여연대가 삼성SDS 대표이사 등 6명을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과 관련해 검찰에 고소하면서부터다. 배경은 이렇다.

당시 삼성SDS는 230억원어치의 BW를 발행하면서 이재용 현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게 시세보다 싼값에 신주인수권을 배정했다. 이에 김 위원장을 주축으로 한 참여연대는 편법 승계를 주장하며 삼성SDS 경영진을 배임 혐의로 고발한 것이다.

이 사건은 1심과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참여연대는 삼성SDS 측을 검찰에 여러차례 고소하고 헌법소원까지 제기해 2009년 결국 유죄 판결을 이끌어 냈다.

삼성전자 역사상 최악의 주주총회로 불리는 2004년 주총의 주인공도 그였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이었던 김 위원장은 소액주주들의 위임을 받아 주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가 “삼성전자가 불법 대선 자금을 지원하는 등 윤리 강령에 위반되는 행위를 했다”며 “이건희 회장 등을 징계 조치해야 한다”고 밝히자 삼성 측은 발언권을 빼앗고 강제 퇴장 조치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당시 삼성 측 보안 요원들과 몸싸움을 하다 다치기도 했다. 그가 주총장에서 고함을 치는 장면이 보도되며 ‘유명 인사’로 떠올랐고 ‘삼성 킬러’라는 별명이 추가되기도 했다.

이렇듯 김 위원장은 그간 대기업을 상대로 집요한 싸움과 비판을 펼쳐 왔다. 그간 벌어진 상황들만 놓고 본다면 자칫 그를 뼛속까지 진보 성향이 몸에 밴 학자라고 볼 수 있겠지만 실제 그를 직접 겪어본 공정위 내부나 학계에서는 시각이 다르다. ‘합리주의자’에 가깝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김 위원장 스스로도 자신의 성격을 “굉장히 신중하고 합리적인 성격”이라고 말한다.

실제 그는 과거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면서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정부의 대기업 정책과 관련한 쓴소리를 주저하지 않았다. 예컨대 김대중 정부 시절 김 위원장은 참여연대 논평에서 정부의 대기업 정책과 관련해 ‘지금은 재벌을 격려할 때가 아니다’고 일갈했다.

당시 정부가 대기업의 지배구조 등을 개선하겠다고 국민들과 약속했지만 이는 상속·증여세 확대 등 숫자상으로만 나타났을 뿐 국민들은 전혀 체감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지지부진한 대기업 개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숱하게 대립각을 세웠던 삼성과도 마찬가지다. 삼성 측이 2013년 12월 사장단 회의 강연자로 초빙하자 여기에 응하며 지배구조 개선 등과 관련한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합리주의자’라는 평가 지배적

합리주의자로서의 그의 면모는 그가 2012년 펴낸 저서 ‘종횡무진 한국경제’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책을 통해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이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당장의 주가와 부동산 가격 문제에 온통 관심을 집중하는 일반 시민들의 인식과 행동을 존중하지 않으면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공정위원장 자리에 앉은 그가 대기업을 향해 겨눈 칼끝이 예상보다 무딘 것도 이런 합리주의적 성향이 때문이라는 견해가 나오기도 한다.

또한 김 위원장은 엄격한 자기 관리로도 정평이 났다. 20여 년간 참여연대에서 활동했지만 본업이었던 대학교수로서의 역할 역시 충실하게 이행했다. 단 한 번도 휴강하지 않았고 수업 준비 역시 철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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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출신 ‘동지적 관계’ 인맥에 주목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대기업 개혁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만큼 그의 인맥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랜 기간 학계는 물론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던 그의 인맥은 화려하다.

그가 공정위원장 후보로 내정되자 498명에 달하는 사회 각계 인사들이 지지 성명서를 발표한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우선 현 정부에서는 김 위원장과 참여연대 시절부터 ‘동지적 관계’로 맺어진 인맥들이 곳곳에 포진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장하성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다. 장 실장은 1997년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 2001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장 등을 지낸 바 있다. 김 위원장을 참여연대로 이끌었고 이후 함께 대기업 개혁을 외쳐 온 인물이다.

2017년 5월 청와대 정책실장에 임명됐다. 그간 현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던 김 위원장이 공정위원장직을 고사하지 않고 수락한 것도 장 실장의 내각 입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등도 같은 참여연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1996년부터 약 6년간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지냈던 박원순 서울시장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학맥으로 맺어진 이들도 있다. 김 위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81학번으로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한승희 국세청장,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 등과 동기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도 김 위원장의 학맥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다. 김 위원장이 최고로 꼽는 스승들이다. 김 위원장의 과거 발언들을 살펴보면 서울대에서 석사와 박사를 거치는 동안 이 두 사람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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