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지방 소도시 부활 프로젝트 : 양양·군산·안동…‘매력 도시’를 찾아라]
-축제나 이벤트만으로는 흡입력 한계…자리 잡고 살 수 있는 '정주성'이 핵심

한경비즈니스가 매력도시연구소와 공동으로 한국의 매력 도시를 찾아 나섰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라이프스타일로 사람들을 그러모으고 있는 ‘매력 도시’가 국내에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매력 도시의 탄생은 지역에 잠재돼 있는 공간과 사람, 콘텐츠의 재발견에서 시작된다.
['매력도시'를 찾아라] 매력, 쇠락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다
(사진) 세련된 디자인의 카페, 수제맥주 펍 등이 들어서면서 양양이 변했다. 예쁜 카페나 서점, 게스트하우스는 정주(定住)의 지표가 된다. /서범세 기자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한국의 도시는 동맥경화 상태다. 한국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50%가 살고 있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말처럼 서울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목적지이자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단독 주연이었다.

반면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성장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지방은 낙후됐다. 30년 안에 전국 시군구의 37%, 읍면동의 40%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어느 정권에나 지방 분권, 도시 재생 등 수도권에 집중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분산하는 것은 숙제였다. 행정수도를 이전하고 지역의 랜드마크를 짓고 도시 슬로건이나 공공 디자인을 통한 하드웨어적 노력은 이미 이뤄져 왔다. 그리고 도시는 숫자와 크기의 척도로 평가됐다.

◆소도시의 매력으로 지방 불균형 해소

이런 노력들은 대부분 행정가의 마스터플랜이나 부동산 개발업자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적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의 소도시들은 외면 받고 있다. 정주(定住)의 측면에서도, 관광의 측면에서도, 사업의 측면에서도 어느 하나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억지로 지방에서 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수도권이 살기 좋아진 것도 아니다.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살고 싶은 도시’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도시’가 됐다. 치열한 경쟁, 집값 상승, 일자리 부족의 문제로 2017년 서울의 출산율이 모든 광역시를 포함해 가장 낮다.

수도권은 팽창을, 지방은 소멸을 걱정하는 지금, 이 둘의 간격을 채워 줄 수 있는 매개체는 뭘까.

매력도시연구소는 꽉 막힌 한국 도시의 혈류에 침 한 방을 놓아 순환하게 할 방법으로 ‘매력’을 꼽는다. 조성익 홍익대 건축대학 교수와 이호 핏플레이스 대표가 이끌고 있는 매력도시연구소는 지방 소도시 활성화를 연구하는 리서치그룹이다. 왜, 지금 도시의 매력에 귀 기울여야 할까.

매력은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힘이다. 매력은 도시에도 적용된다. 사람을 ‘살고 싶게’ 만들고 ‘그곳에 가고 싶게’ 만들 수 있다. 매력 있는 도시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수도권으로 응축된 밀도를 분산할 수 있다.

◆정주성이 매력의 조건

도시의 매력은 관광의 측면이나 개발의 측면이 아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요인,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행정가의 도시계획보다 도시를 이루고 있는 이들의 삶의 변화에서 더 의미 있는 꿈틀거림이 나타난다. 매력 도시의 가치는 크고 규격화된 대도시가 갖지 못한 독특함에 있다.

이 대표는 “이제 사회는 숫자나 순위보다 삶의 질이나 개인의 행복에 집중한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이제 더 이상 행정가에 의한 개발이나 투자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오히려 대도시가 가지지 못한 지방 소도시의 조그마한 매력이 이들을 그러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매력적인 사람들과 장소의 영향으로 지역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시대다. 지방 소도시 발전의 중요한 실마리로 도시의 매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까지 외부에서 지방 소도시를 바라볼 때 축제나 특색 있는 전통만이 강조돼 왔다. 하지만 도시의 매력은 사람이 일정한 곳에 자리 잡고 삶을 살 수 있는 도시의 ‘정주성(定住性)’에 있다.

단순히 송어 축제나 산천어 축제가 열린다고 그곳에 살겠다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도시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가게를 만들고 카페를 차리고 책방을 운영하면서 서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지표가 된다”고 말했다. 즉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벤트가 아닌 일상에 대한 욕구가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는 의식주를 기반으로 ‘커뮤니티’가 이뤄져야 한다. 축제, 도시 브랜딩, 행정 계획만으로 지방을 바라보는 관점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주성과 동떨어진 얘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도시 현실에 대한 취재는 우울한 리포트 속에서 관광 위주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관광이라는 요소는 도시가 가진 매력의 일부일 뿐이다. 찾아보면 소도시에도 수많은 매력이 존재한다. 매력 도시를 통한 변화는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도시의 매력을 찾는 것이다.

물론 매력 도시가 대도시에 집중된 인구 밀집 현상을 해결해 주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당면한 고령화, 지방 소멸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인터뷰] “매력도시가 많다는 건 살고 싶은 도시가 많다는 것”
-'매력도시연구소' 조성익 홍익대 건축대학 교수·이호 핏플레이스 대표 인터뷰
['매력도시'를 찾아라] 매력, 쇠락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다
Q. 왜 도시를 매력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나요.
▶“도시와 삶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변했어요. 이제는 숫자나 순위보다 삶의 질이나 개인의 행복,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 즉 매력이 훨씬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난 어디에서, 어떤 환경에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죠. 이들에게 개발이나 투자는 매력이 되질 못합니다. 오히려 대도시가 가지지 못한 지방 소도시의 조그마한 매력이 이들을 그러모으고 있습니다.” (이 대표)

▶“지금까지 외부에서 지방 소도시를 바라볼 때 축제나 특색 있는 전통을 위주로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매력도시 연구소는 사람이 일정한 곳에 자리 잡고 오래오래 삶을 살 수 있는 도시의 ‘정주성’을 주목합니다. 사람이 어떤 지역에서 살겠다고 마음을 먹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송어축제나 산천어축제가 열린다고 그곳에 살겠다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시 말해 이벤트가 아닌 일상에 대한 욕구가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죠. 단발적인 축제, 행정계획만으로 지방을 바라보는 관점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주성과는 동떨어진 얘기가 될 수 있죠. 즉, 매력도시는 ‘나라면 그곳에 살고 싶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습니다.”(조 교수)

Q.지방에서의 삶을 일상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신건가요.
▶“네. 물론 지방 고유의 색깔과 전통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방 소도시의 활성화를 토속으로만 하려고 해서는 곤란해요. 도시는 의·식·주를 기반으로 ‘커뮤니티’가 이뤄져야 해요. 저명한 도시계획가 자이미 레르네르는 “정말로 좋은 도시는 좋은 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녁에 모르는 사람과 섞여 대화하고, 나와 유사한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되고,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는 곳. 바가 그 역할을 해준다는 거죠.“(이 대표)

Q. 매력도시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먼저 ‘발신기지’가 필요합니다. 발신기지란 매력도시의 시작지점이에요. 매력적인 신호를 발산해 멀리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이를 계기로 사람들을 도시에 머물게 하고, 소도시 공간을 확대시키는 요소죠.

쉽게 말하면 ‘이 곳에 뭔가 있으니까 와서 봐’라고 신호를 보내는 무언가예요. 사람들은 발신기지에 이끌려 소도시를 찾게 됩니다. 그러다가 오래된 전통시장도 가고, 그곳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알게 되면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신호에 이끌려서 갔다가 도시 전체를 발견하고 오는 셈이죠. 사실 그리 특별한 개념은 아니에요.

마음이 끌려 어딘가로 가도록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발신기지죠. 지역의 랜드마크들이 발신기지에 해당하고요. 뉴욕의 현대미술관이나 링컨센터가 좋은 예가될 수 있겠네요. 예술이라는 신호를 발산해 사람들을 모으잖아요.”(조 교수)

Q. 대형 미술관이나 랜드마크 말고, 소도시에 걸맞은 발신기지는 무엇인가요.
▶“발신기지라고 해서 꼭 거창할 필요는 없어요. 특히 소도시일수록 거대한 발신기지를 갖기 힘들죠. 작지만 강한 컨텐츠 하나에 집중해야 해요. 예를 들자면 일본 오부세에 있는 양조장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아주 조그만 시골 마을이죠. 시설이라곤 양조장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마저도 고색창연한 건물에 있는 오래된 양조장이죠.

그런데 이런 시골 마을의 양조장에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무사시노 미술대학 교수인 하라 켄야가 디자인한 술병이 놓여있어요. 이걸 알아보는 사람들은 오부세와 낡은 양조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발신이 이루어진 것이죠. 지역이나 건물이 아닌 아주 작은 물건조차도 발신기지가 될 수 있습니다.”(조 교수)

Q. 발신기지가 없는 도시는 어떡하죠.
▶“발신기지를 만들려면 행정 위주의 사고에서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역 전체를 다 건드리려는 마스터플랜적 사고에서, 특이점에 집중하는 사고로 전환해야 합니다. 발신기지가 지역 특성에 반드시 연계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하고요.

하나의 예를 들면 양양을 매력도시로 만든 서핑문화가 지역 특산물인 ‘송이버섯’이나 지역 명소인 ‘낙산대’와 연관 있는 건 아니잖아요. 보기 좋은 지도, 친절한 정보, 편안한 휴식처가 되는 식당과 카페, 수준 높은 공간 디자인과 같은 요소가 사람을 안심하게 만들죠. 발신기지는 지역 행정가보다는 그 지역의 크리에이터와 기업가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거예요.”(이 대표)

Q. 한국에 매력도시가 적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제 시대가 사람과 그 사람이 지닌 독특함을 중심으로 가고 있어요. 지금까지 한국은 그런 독특한 개성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가족, 학교, 직장과의 단단한 유대 때문에 자유로운 개인들이 생기기 쉽지 않기 때문이죠. 사회가 내준 숙제이나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개인이 필요합니다. 매력도시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텐데, 이들이 이런 삶을 지속할 수 있게 끔 사회적 안전장치를 만들어줘야 해요. 이걸 인지하는 지자체, 행정가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조 교수)

Q.매력도시가 많아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그 질문은 ‘나 어떻게 하면 매력적이게 돼?’ 라고 묻는 거랑 똑같아요. ‘네 안에 있는 걸 찾아’라고 답할 수밖에 없죠. 매력도시는 하나의 솔루션이 아닙니다. 하나의 해결책보다는 현재의 움직임과 지속적인 흐름에 집중해야 해요.”(이 대표)

[약력]조성익 교수 : 건축가 겸 도시 연구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및 TRU 건축사사무소 대표다.
[약력]이호 대표 : 건원건축에서 은평뉴타운 마스터플랜, 세종시 마스터플랜 등을 기획했고 이후 4년 동안 JOH 공간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핏플레이스 대표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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