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 시스템 성숙될수록 ‘평균값’에 수렴해…‘암호화폐 규제’가 산업 발전시킬 것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스마트 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1941년 테드 윌리엄스가 기록한 시즌 타율 4할 6리(0.406)를 마지막으로 미국 프로야구에서 4할대 타자는 사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현상을 설명하려고 했다. 대중적인 가설은 오늘날 타자들의 기량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인데, 그것도 투수와 수비의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사이 타자들만 퇴보했다는 논리다. 글러브가 좋아졌고 투수들의 실력이 늘었고 정교한 구원투수 시스템이 승패와 상관없이 타율을 관리하려는 최고 타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2002년 작고한 세계적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저서 ‘풀하우스(Full House)’에서 이 문제를 통계학을 이용해 설명했다. 4할대 타자가 사라진 것은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자연법칙에 따른 것이다. 타자를 포함한 야구 실력의 전반적인 향상이 4할 타자의 출현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4할대 타자는 평균에서 먼 이상치(아웃라이어)이므로 이상치의 빈번한 출현은 시스템의 초기 단계에서 관찰되는 현상일 뿐이다. 시스템이 성숙되면 평균값을 중심으로 분포가 좁아진다. 평균보다 월등히 잘하는 선수들과 월등히 못하는 선수들이 동시에 사라지는데 메이저리그가 원숙한 시스템으로 안정기에 들어갔다는 의미다. 전 세계 젊은이들의 꿈의 무대가 됐으므로 평균 타율에 미치지 못하는 선수들은 언제든지 더 나은 선수로 대체된다.

이런 가지치기 때문에 평균 자체가 더 이상 도달할 수 없는 인간 한계에 접근한다. 가까이는 가지만 넘어설 수 없는 이 한계를 점근선(漸近線)이라고 부른다. 세계적인 재능을 갖춘 선수들이 모인 곳에서 천재적인 선수는 평균보다 조금 나을 뿐이다. 이 선수들 역시 인간 한계인 점근선과 평균사이에 존재할 수밖에 없으므로 평균이 점근선에 다가갈수록 최고의 선수와 평균 사이의 거리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법칙이다.
암호화폐, 더 이상 ‘길 위에 떨어진 돈’은 없다
(사진)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

-더 이상 ‘길 위에 떨어진 돈’은 없다

새로운 산업이 부상할 때는 시스템의 초기 상태의 특징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경제학자들은 간혹 ‘길 위에 떨어진 돈’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때야말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이윤의 기회가 많다.

길 위에 떨어진 돈이 오랫동안 제자리에 있을 수 없듯이 시장이 성숙되면 초과 이윤은 사라진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하버드대를 졸업하지 않고 비즈니스에 뛰어들 때도 ‘누군가 길 위에 떨어진 돈을 줍기 전에 집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광주경찰청은 4월 1일 산업단지에서 허가받지 않고 암호화폐 채굴장을 운영한 13개 업체를 적발해 입건했다고 밝혔다. 일반용보다 10% 정도 저렴한 산업용 전기와 값싼 가격에 공장 부지를 임대한 것이 불법이라고 설명했다.

법망을 피해 헐값의 전기와 공장 부지를 이용하는 채굴업자들은 4할 타자에 해당한다. 비트코인 시스템의 핵심은 채굴이기 때문에 불법적인 초과 이윤에 대한 단속이야말로 비트코인 시스템의 안정을 돕는 정부의 역할이다.
암호화폐, 더 이상 ‘길 위에 떨어진 돈’은 없다
채굴 보상을 분석해 보면 채굴 산업은 빠른 속도로 성숙되고 있다. '그래프'는 채굴 보상이 점근선으로 수렴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채굴자들은 비트코인으로 보상받는다. 채굴 시점 비트코인 시장가격에 채굴자들의 보상(신규 코인+거래수수료)을 곱하면 달러로 표시된 채굴자들의 총보상을 구할 수 있다. 이를 암호 시도 횟수(해시레이트)로 나누면 컴퓨터가 무작위 암호를 시도하는 데 따르는 보상을 구할 수 있다.

2011년 1월 1일 채굴자는 초당 1테라해시의 성능으로 하루 2만1000달러를 벌었다. 당시 비트코인 가격은 0.3달러에 불과했다. 2018년 4월 1일 초당 1테라해시의 성능으로 채굴자는 하루에 0.5달러밖에 벌지 못한다. 비트코인 가격은 6826달러로 2만3000배 정도 늘었음에도 채굴자들의 수익은 4만2000배나 줄었다. 참고로 2017년 12월 비트코인 가격이 2만 달러에 육박했을 때도 1테라해시 성능을 가진 채굴자의 하루 수익은 고작 3.7달러였다.

시스템적으로 보면 1비트코인이 0.3달러였던 2011년이 2만 달러에 육박했던 2017년 12월보다 거품이 많았던 셈이다. 2011년 당시 채굴자들은 손쉽게 초과 이윤을 얻었다. 반면 2017년 12월 채굴자들은 기계 임대료와 전기료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조금밖에 없었다.

비트코인 가격의 상승 폭보다 채굴 경쟁이 더 거세졌기 때문에 이제 길 위에 떨어진 돈이 사라졌다. 획기적으로 효율적인 방식이나 공짜 전기를 찾아내는 이들은 한시적으로 큰 이익을 챙길 수 있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다른 채굴자들도 모방하기 때문이다. 평균이 승자를 모방하면서 4할 타자가 없어졌듯이 모두가 효율적인 방식과 값싼 전기를 사용하니 그런 방식의 이점은 사라진다.

전기를 도둑질해 사용하는 채굴업자들을 단속하는 정부의 노력은 금광의 독점을 해체하는 것과 경제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특혜의 금지는 시스템의 성숙을 촉진한다. 시스템의 성숙은 횡재의 가능성을 줄이므로 초과 이윤을 체계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지대 추구자(rent-seeker)가 임의로 시장을 교란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인다.

[돋보기] 채굴 전용 칩 특허 낸 ‘반도체 공룡’ 인텔

인텔이 2016년 9월 암호화폐 채굴 전용 칩의 특허를 출원했다는 사실이 3월 공개됐다. 인텔의 새 제품은 채굴 작업과 무관한 부분을 제거함으로써 에너지 손실을 줄이고 성능을 극대화해 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주문형 반도체(ASIC) 공급자로 알려진 중국의 비트메인의 시장 지배력을 위협하고 채굴 산업의 중국 의존도를 낮춰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인텔의 칩은 채굴의 에너지 효율을 증가시켜 주지는 못한다.

채굴 경쟁이 증가하면 생산량도 증가하는 금 채굴과 달리 비트코인의 채굴량은 일정하다. 다만 채굴 난이도가 높아진다. 성능이 좋은 칩을 사용하는 개별 채굴자에게만 에너지 효율을 높일 뿐이다. 채굴 산업 전체가 소모하는 전기는 감소하지 않는데 기본적으로 채굴자가 투입하는 한계비용은 비트코인의 시장가격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는 채굴자들이 투입하는 총 변동비는 신규 코인을 시장에 공급해 얻는 수익에 수렴한다. 즉 채굴에 투입되는 총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요인은 기술이 아니라 비트코인의 시장가격이다.

인텔의 채굴 특화 칩이 효과가 있다면 테라해시당 채굴 보상의 점근선을 더 낮출 것이다. 현재의 점근선이 0.5달러라면 새로운 칩은 0.4달러나 0.3달러까지 끌어내릴 것이다. 참고로 비트코인의 가격 하락기에는 채굴 보상의 한계 값인 점근선이 얼마인지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투자자들에게 서로의 상태를 확인한 다음 행동을 조정할 수 있는 암묵적인 준거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