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중심에서 업무 중심으로 변한 경영 환경...일본도 연공서열 없애는 중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Q = 회사가 외부에서 업무 능력과 성과가 탁월한 인재를 영입하려고 합니다. 현재 외국의 명문 대학을 졸업한 뒤 다국적 기업에서 일해 온 7~8명의 유력한 후보자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입사한다면 회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후보자들 역시 회사의 비전과 최고경영자(CEO)의 경영 철학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 입사하는 데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걱정하는 것은 이들의 직책과 직급입니다. 우리 회사는 오랫동안 연공서열 위주로 조직을 운영해 왔습니다. 창업자 사장을 중심으로 한 임원들의 연령이 가장 많고 직급이 낮아질수록 젊어지는 전형적인 연공서열형 조직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영입할 사람들에게 조직의 책임자 자리를 맡기기가 어렵습니다. 기존 조직원들보다 상당히 젊은 사람들을 부서의 책임자로 영입하는 것에 대해 벌써부터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업무 역량과 기대하는 역할, 현재 재직 회사에서의 직책을 감안하면 부서의 책임자로 배치해야 합니다. 그들 역시 책임자 자리를 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 얼마 전 글로벌 컨설팅 회사의 한 컨설턴트로부터 한국의 대기업을 접촉했다가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컨설팅을 진행했던 대기업의 핵심 인사 기준 중 하나가 놀랍게도 나이와 재직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업은 승진 인사를 할 때 철저하게 나이와 근속 연수를 따졌습니다. 나이가 어리고 재직 기간이 짧으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승진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일본이나 아시아 지역의 기업들이 대체로 연공서열을 중시하지만 한국 기업들이 유독 연공서열에 얽매여 있는 것 같다”며 놀라워했습니다.
연공서열 시스템은 세계의 기업들 가운데 한국 기업에서 가장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이 연공서열 시스템을 중시하는 것은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임금 연공성에 관한 국제 비교 조사 결과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조사에서 한국 기업의 20~30년 장기근속자의 임금수준은 신입 사원의 3.1배로 나타났습니다. 유럽(1.1~1.9배)과 일본(2.4배)보다 훨씬 높은 것은 물론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습니다.
연공서열 시스템은 이 시스템의 본고장처럼 여겨지고 있는 일본에서조차 작동을 멈춰 폐기 처분하고 있는 한물간 시스템입니다. 연공서열이 작동하지 않는 것은 연공서열의 기반이 모두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업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계기로 연공서열 시스템의 한 축인 종신고용 관행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연공서열 시스템은 여전히 대기업을 중심으로 작동되고 있습니다.
연공서열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직원들의 근무연한이 늘어날수록 업무 능력이 향상되고 기여도가 높아진다는 전제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을 가동하는 회사는 입사 초기의 젊은 직원에게 기여도보다 적은 임금을 준 뒤 근속 기간이 길어질수록 임금수준을 높여 나갑니다. 이 때문에 40대 이후 기여도가 더 이상 높아지지 않아도 임금은 계속 오릅니다. 그 결과 재직 기간 전체로 볼 때 직원에게 주는 임금 총액이 적정액에 이르게 됩니다. 직원들이 일생 동안 받는 임금 총액이 결과적으로 일생 동안 회사에 기여한 양과 맞도록 하는 것입니다.
연공서열 시스템은 조직 충성도를 강화하고 유지해 주기 때문에 그동안 기업들이 선호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줄여주고 직장에 대한 안정감을 심어 줬으니까요. 직원들 역시 젊었을 때 당장은 괴로워도 참고 견디면 10~20년 뒤에는 연봉이 오르고 직급도 높아지기 때문에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미래의 즐거움을 위해 지금 땀을 흘리고 미래의 큰 행복을 위해 현재의 작은 행복을 포기한다”는 게 연공서열의 기본 개념입니다.
- 충성도를 강화한 연공서열
연공서열 시스템은 이렇게 직원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주고 직원의 노력에 대해 연봉이 아니라 업무로 보상하는 인사 시스템입니다. 연공서열 시스템은 그동안 외부 환경의 강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인구는 계속 늘었고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으며 기업은 계속 사업을 확장하면서 조직을 키워 나갔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이런 모든 전제 조건이 바뀌었습니다. 인구 증가는 멈췄고 경제의 고도성장은 사라진 지 오래됐습니다. 성장이 정체되거나 심지어 후퇴하기까지 합니다. 계속 성장할 것만 같았던 기업도 정체를 겪기 시작했고 일부 기업들은 허망하게 무너졌습니다. 이제 아무리 탄탄한 사업구조를 갖고 있는 대기업이라고 해도 10년 뒤 존속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에 따라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정년을 기약하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이렇게 경영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연공서열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면 기업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첫째, 인재 확보를 어렵게 만든다는 겁니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젊은이들은 이제 장래에 대한 가능성보다 현재의 직무와 직급이나 근무 조건에 관심을 둡니다. 이들은 특히 당장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회사를 선호합니다. 회사가 제시하는 미래의 비전만 믿고 지루하고 힘든 일을 참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회사가 제시하는 비전조차 이제 믿기가 어려워져 10년, 20년 뒤를 보고 희생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연공서열 시스템을 유지하는 기업들은 인재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연공서열 문화에 답답함을 느끼는 젊은이들은 벤처기업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젊은 직원들의 이탈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2016년 한국경영자총연합회가 306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신입 사원의 27.7%가 1년 안에 퇴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구나 신입 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2014년보다 2.5%포인트, 2012년보다 4.1%포인트 높아졌습니다. 3년 안에 입사자의 절반 이상이 회사를 떠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남보다 능력이 뛰어나도 사원 때 연봉이 작은 데다 최소 근무연한을 채우지 않으면 승진할 수 없는 구조를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둘째, 연공서열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면 생산성이 낮아지게 됩니다. 성과나 역할이 아니라 나이에 따라 자동으로 급여가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제성장이 둔화돼 기업의 성장이 지속되지 못하면 기업은 임금 상승 부담을 견디기가 힘들어집니다.
특히 연공서열형 임금구조는 입사 초기에 임금이 기여도보다 낮지 않으면 처음부터 작동이 불가능합니다. 초기에 적게 준 것을 나중에 보상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초기에 많이 주면 나중에 줘야 할 임금이 너무 많아집니다. 요즈음 기업들이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입사 초기 연봉을 높이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연공서열 시스템을 지속하면 기업은 관리 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의 임금피크제나 일본 기업들의 시니어 사원 제도는 연공형 임금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궁여지책입니다. 직원들이 일정 연령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연공서열 시스템이 안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못합니다. 퇴직을 앞둔 직원들의 업무 의욕과 생산성이 낮아지면서 조직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 과감하고 시급하게 개선하라
셋째, 회사가 직원의 역량을 제대로 쓰기 어렵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임원으로 가장 선호하는 연령대는 젊고 패기가 넘치는 35~44세입니다. 하지만 연공서열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의 대기업에서 35~44세는 과장~차장이 주류를 이룹니다. 대기업에서 임원이 되려면 최소한 40대 중반, 일반적으로 50대 이후여야 합니다.
특히 연공서열 시스템은 직원들의 잠재 역량을 조기에 현실화하는 데 장해물이 됩니다. 요즘 글로벌 기업들이 인재를 등용할 때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것 중 하나는 잠재 역량입니다. 직원들의 잠재 역량이 발휘될 때 기업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은 현재의 역량뿐만 아니라 잠재 역량까지 감안해 사람을 뽑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잠재 역량은 나이나 근속 연수와 관련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잠재 역량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연공서열 중심의 인재 등용은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 일본 기업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사 제도나 조직의 혁신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모두 연공서열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이제 누구나 나이나 근속 연수와 비례해 경험이 많아지고 능력이 커질 것이라는 그동안의 막연한 가설을 폐기 처분했습니다.
그동안 기업들은 ‘급여를 연령·경험·능력에 따라 지급해야 할지’, ‘아니면 업무 성격이나 성과에 따라 지급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전자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 임금체계이고 후자는 업무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연공서열을 중시했던 일본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전자의 방식을 취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일본 기업들은 기준을 사람에서 업무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연공서열 시스템은 시급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개선해야 합니다. 인재의 유출을 막으려면 나이나 근속 연수와 관계없이 개인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합니다. 연공서열 시스템이 지속되는 한 기업의 경쟁력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재가 들어오지 않고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기업이 경쟁력을 잃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삼성전자는 2016년 과감하게 직책을 없앴습니다. 조직 내 연공서열에 따른 경직성과 상명하복의 관료주의 문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입니다. 귀하의 회사도 연공이 아니라 실력이나 성과로 승진과 연봉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나이나 근속 연수 대신 역량이나 업무 성과로 조직을 운영하도록 시스템을 바꾸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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