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증시에 비해 항상 낮게 평가 받는 한국 증시…두 가지 원인 모두 해소 중
[정리 =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기자]
따뜻한 북풍은 뜨거운 얼음만큼이나 낯설었다. ‘종전 가능성’이 회자될 만큼 사상 초유의 남북 해빙 무드가 예견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분위기는 낯선 경험이어서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하기가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항상 내재돼 왔던 위험 요소, 즉 남북 간의 대립이 본질적으로 제거될 수 있다는 점을 따져본다면 이는 분명 증시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그 논의가 이제 ‘시작’ 단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때 이른 수혜주 탐색은 실익이 별로 없다고 본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지정학적 위험 외에 한국 증시가 할인돼 평가되는 다른 요소의 존재를 다시 한 번 고민해 보는 것이 옳다. -선진국 증시의 절반에 불과한 PER
한국 기업의 급격한 이익 성장은 주가에 늘 더디게 반영돼 왔다. 그래서 한국 증시의 주가수익률(PER)은 여전히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MSCI 코리아 인덱스 기준 12개월 선행 PER은 현재 8.7배 수준으로 최근 수년래의 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PER 8.7배는 신흥시장의 3분의 2 수준 그리고 선진 시장의 2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 같은 할인의 배경에 가장 크게 자리하는 것은 한국 기업의 이익이 정보기술(IT) 특히 반도체 업종의 이익에 좌지우지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제로 2018년 상장기업 예상 순이익의 대부분을 IT 기업이 차지하고 있고 IT 기업의 PER 역시 다른 업종에 비해 낮게 적용되고 있다. 이 같은 국내 IT 업종에 대한 저평가는 IT 업종이 경기 순환에 따라 높은 이익 변동성을 보여 온 것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 산업의 전방 수요는 4차 산업혁명과 같은 구조적 성장이 예상됨에 따라 이전과 같은 부침의 가능성이 상당히 줄어들고 있다. 삼성전자의 1분기 어닝서프라이즈에서 보듯 국내 IT 기업들의 이익 안정성은 상장 기업에 대한 재평가를 가능하게 할 주요 요소다.
한국 기업의 낮은 PER이 안정적이지 못한 이익 창출 능력에 따른 것이라면 한국 증시의 낮은 주가순자산배율(PBR)은 비효율적인 자기자본이익률(ROE)로 설명할 수 있다. PBR과 ROE는 매우 유의미한 관계를 가진다. 자기자본의 효율성이 높을수록 기업의 가치는 높게 평가 받기 마련이다.
낮은 ROE의 원인은 소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IT 중심의 산업구조와 중국이라는 지정학적 위험을 가지고 있는 대만 증시는 한국 증시보다 높은 밸류에이션을 적용받고 있다. 한국과 비슷한 경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배경은 다름 아닌 높은 배당수익률이다.
대외 변수에 매우 취약한 한국 경제의 구조상 기업은 비상시를 대비해 항상 자금을 쌓아 두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축적 규모가 임계점을 통과하면서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고 결국 한국 증시의 할인 요소로 자리 잡은 것이다. 최근 대내외적으로 주주 환원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시금석 역할을 하게 될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결권 행사 지침)가 이른 시일 내에 도입될 예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요소는 경감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내 증시를 할인하는 다양한 요소에는 지정학적 위험과 함께 경제 구조상의 문제가 있다. 따라서 남북 간의 화해 무드 그 자체만으로 한국 증시의 펀더멘털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시점이다. -IT·산업재·금융 주목하라
최근 글로벌 증시가 대내외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다는 점과 2월 변동성 장세를 통과하면서 밸류에이션 부담이 현격히 줄어들었다는 점, 그간 경험하지 못한 사상 초유의 외교 이벤트라는 것을 감안하면 4월 말 남북정상회담부터 계속 이어지는 다자간 회담의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예상할 수 있는 시장 반응은 남북 경협 수혜주의 주가 상승보다 국내 증시 전반에 대한 시각 변화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다자간 회담에서의 주된 논의 대상은 비핵화 프로세스 합의가 우선이고 경제 협력과 같은 각론은 추후 진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긍정적 회담 결과가 연속되면 시장 전반의 위험 선호 확대로 귀결될 것이고 이는 인덱스 비율 상위를 차지하는 대형주에 유리한 환경이 될 전망이다. 또한 새로운 섹터의 선호가 회담으로 도출되기보다 기존 모멘텀 보유 영역에 대한 탄력이 더 제고되는 방향으로 시장의 무게추가 기울 가능성이 높다. 특히 6월 말까지 이어지는 다자 회담에서 최선의 결과가 나오면 코스피지수 레벨의 상단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 위기 이후 평균 PER 레벨인 9.5~10배 내외를 1차적인 목표로 상정할 수 있다.
실제로 미·중 무역 분쟁 이슈가 줄어들기 시작한 4월 중순 이후부터 매도로만 일관하던 외국인 수급이 반전 신호를 나타내고 있다. 연초 이후 누적 기준 순매도였던 외국인 수급은 현재 다시 순매수로의 전환을 시도 중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포함한 IT 업종은 아직 2조원에 달하는 누적 순매도를 유지하고 있다. 즉 외국인의 자금이 IT 업종에 더 투자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가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 이후 감익 우려가 해소됐다는 점과 4월 말 액면 분할 이후 유동성 모멘텀 등을 고려한다면 주가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타이트한 공급 조절, 중국과 인도의 수입량 증대, 달러화 약세 등 3박자의 지원을 받고 있는 국제 유가에 주목해 보자. 유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적극적인 부양 의지에 힘입어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다. 유가에 민감한 산업재에 대한 관심을 더 키워야 한다. 유가와 동반 상승세를 지속 중인 기초금속 가격도 국내 철강 및 비철금속 업종에 온기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잇단 어닝서프라이즈 소식과 함께 미국의 국채 수익률 2.9% 재탈환은 금융주에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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