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열전]
-K뷰티의 핵심’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CJ헬스케어 인수로 제약 매출 1조 만든다
“차별 받고 싶지 않다면 나의 사업’을 하라”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올해 2월 화장품·제약·금융투자업계에 모두가 깜짝 놀랄 만한 ‘빅딜’이 있었다. 국내 1위 화장품 제조업자 개발 생산(ODM) 기업인 한국콜마가 CJ그룹의 제약사 CJ헬스케어를 1조3100억원에 인수한 일이다. 제약업계 10위권인 CJ헬스케어를 인수하며 한국콜마는 단숨에 계열사 콜마파마와 합쳐 제약 부문에서만 매출 1조원을 넘보는 최상위권 제약사로 발돋움하게 됐다.

사실 CJ헬스케어의 덩치가 워낙 컸기 때문에 그 어느 기업도 쉽게 넘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인수 후보군에 올라 있는 제약 기업들은 ‘사업 영역이 중복된다’는 평가가 많아 CJ헬스케어 매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콜마를 이끄는 윤동한 회장은 과감한 선택을 했다. 냉정하게 따져 ‘숫자 계산기’만 두드려 본다면 한국콜마가 CJ헬스케어를 인수한 가격은 좀 부담스럽다. CJ헬스케어의 작년 영업이익은 816억원(매출액 5137억)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기업 인수 가격을 영업이익의 15배 정도로 본다. 그래서 영업이익의 16배 이상을 주고 산 이번 인수 가격은 보통의 딜보다 1000억원 이상 높은 가격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 딜에 대해 한국콜마를 잘 알고 있는 기업인들은 “역시 윤동한 회장다운 결정”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여기에 한마디 더 덧붙인다. “아마도 윤 회장은 제약 사업 역시 잘 키워 나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왜 그럴까.
“차별 받고 싶지 않다면 나의 사업’을 하라”
◆제약업체 “역시 윤동한다운 결정”

업계에선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기업가 정신’에서 그 답을 찾는다. 윤 회장이 2016년 내놓은 경영 에세이 ‘인문학이 경영안으로 들어왔다’를 보면 ‘꿈’을 향해 달려온 그의 기업가 정신을 잘 읽을 수 있다.

윤 회장은 경남 창녕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원래 역사 교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 시험을 50여 일 앞두고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담임선생님은 생계를 위해 돈을 벌 수 있는 학과를 권했다. 방향을 틀어 영남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1970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성과도 좋았다. 윤 회장은 지방대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간부 사원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수입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이어졌다. ‘기업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윤 회장은 “기업가는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만 대접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업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업의 메커니즘을 잘 알아야 한다. 현장은 물론 인사·회계·전략 등 여러 방면에 대한 수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거대 조직에서는 기업의 여러 분야를 배우기가 어렵다. 설사 여러 분야를 배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그는 농협을 나와 대웅제약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대웅제약은 중소기업이었다. 대웅제약 시절 그는 모든 결정을 내릴 때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다. “내가 회장, 사장이라면 어떤 결정을 할까.”

윤 회장은 대웅제약에서 15년간 일하면서 승승장구했다. ‘기업가’의 마음가짐으로 직장 생활을 하니 모든 일이 잘 풀렸다. 결국 능력을 인정받아 40대 초반에 최연소 부사장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윤 회장은 안정된 직장을 선택하는 대신 20대에 품었던 ‘꿈’을 실행에 옮겼다. 이제 ‘기업의 메커니즘’은 어느 정도 꿰뚫었다고 생각해서다. 차별 없이 모두가 같은 출발 선상에서 시작하는 기업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제약회사와 겹치지 않으면서 비슷한 분야를 찾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화장품이었다. 화학을 기반으로 하는 화장품은 제약과 많은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그는 1990년 화장품 ODM·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전문 기업 한국콜마를 설립했다.

한국콜마가 설립될 당시 태평양·한국화장품·코리아나 등 화장품 기업들은 모두 기획·제조·유통 모두를 직접 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에선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제조와 판매가 구분돼 있었다. 윤 회장은 선진국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국내에 없는 화장품 제조 기업을 만든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화장품 제조 사업을 구상한 윤 회장은 미국콜마를 찾아가 기술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하지만 일본콜마가 한국 투자자를 찾는다는 얘기를 들었고 윤 회장은 곧바로 일본을 찾아가 합작을 제의했다. 당시 한국산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콜마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수차례 일본에 건너가 일본콜마를 설득했고
1990년 결국 합작에 이르렀다.

다른 어려움도 많았다. 화장품 회사들의 세금계산서 없는 무자료 거래 요구에 윤 회장이 이를 거절해 주문을 따내기 힘들었다. 주문을 받아내지 못하다 보니 전기요금을 제때 못 내 단전 통보를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윤 회장은 꾸준히 기술 개발에 투자했다.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분부터 제조 기술까지 개발해 화장품 회사에 제시하는 ODM 시스템을 밀어붙여 1993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한국 최초의 ODM 비즈니스 모델의 시작이었다.
“차별 받고 싶지 않다면 나의 사업’을 하라”
연구 인력만 전체 직원의 30%

ODM 사업이 제자리를 잡으면서 자본금 5억원으로 시작한 한국콜마는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질 좋은 화장품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성장세를 이어 갔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여기에 미샤·더페이스샵·네이처리퍼블릭 등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급부상하면서 더 크게 성장했다. 이들 업체들은 대부분이 유통과 마케팅만 담당하고 기술 개발 및 제품 제조는 모두 한국콜마와 같은 ODM 회사들이 담당했다. 여기에 2010년대 후반부터 중국을 중심으로 K뷰티 열풍이 확산되면서 한국콜마는 매년 20% 이상 매출 성장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써 나갔다.

윤 회장이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던 중심엔 누가 뭐래도 연구·개발(R&D)이 있다. 실제로 한국콜마는 전체 직원 중 연구 인력 비율만 30%에 달한다. 매출의 5% 이상을 R&D에 투자하고 있다. 등록 특허만 300개에 육박한다.

R&D를 통한 대표적인 성공작은 자외선 차단제다. 국내 화장품 자외선 차단제 시장 중 ODM 제품의 50% 이상은 한국콜마 제품이다. 한국콜마는 화장품 기술에 제약 기술을 융합해 우수한 품질의 자외선 차단제를 선보였다. 기존 제약 산업에서 활용되는 위장약 제제 기술을 자외선 차단제에 도입해 위장약 제제의 유효 물질을 고분자 속에 삽입하는 층간 삽입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자외선 차단 효과와 지속력을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윤 회장이 성공할 수 있던 또 다른 비결은 ‘신뢰’다. 한국콜마의 거래처는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등 600여 곳에 달한다. 한국콜마는 이들 거래처를 유지하기 위해 △일사 일처방 △처방 비공개 △거래처 비밀 보호 등 3원칙을 경영 철칙으로 삼고 있다.

일사 일처방 원칙은 다양하고 독특한 처방을 오직 한 기업에 한 가지 제품만으로 제공, 납품 업체가 충분한 마케팅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처방 비공개는 제품에 대한 노하우와 정보를 상대 기업에 노출하지 않음으로써 거래처와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제약·건기식 보강해 ‘별’만든다

거래처 비밀 보호는 납품 업체가 공개를 원하지 않는 한 거래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한국콜마로부터 납품받는 업체들이 안심하고 마케팅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다. 실제로 피테라 성분이 함유된 미샤의 히트 상품인 ‘더 퍼스트 트리트먼트 에센스’는 다른 기업들이 자사 제품에도 피테라 성분을 넣어 달라고 한국콜마에 요청했지만 단번에 거절했다. ‘일사 일처방’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한국콜마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선 ‘스타 비즈니스’가 완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각 의식주 3가지 영역이 꼭짓점을 이루는 삼각형과 화장품·제약·건강기능식품의 삼각형을 합치면 만들어지는 별 모양의 비즈니스 모델을 의미하는 것이다.
“차별 받고 싶지 않다면 나의 사업’을 하라”
윤 회장은 CJ헬스케어의 인수가 ‘스타 비즈니스’를 완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한국콜마의 매출 중 70%는 화장품 ODM 사업에서 발생한다. 나머지 30% 제약과 건강기능식품에서 발생한다.

한국콜마의 가장 큰 경쟁력은 ‘융합 기술’이다. 한국콜마는 창립 초기부터 제약 연구원을 화장품 연구소에, 화장품 연구원을 제약 연구소에 배치해 꾸준히 융합 기술에 매진해 왔다.

융·복합 제품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계획하고 있는 것은 통합기술원이다. 내년 9월 서울 내곡동에 완공 예정인 통합기술원은 기존 서울과 세종·오송·제천 등 전국 13개의 화장품·제약·건강기능식품 연구소를 한데 모은 통합 연구의 메카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부문별로 특화됐던 R&D센터를 통합해 각 영역을 넘나드는 시너지 효과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술별 인재 통합은 물론 인프라 일원화로 더 높은 차원의 융합 기술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CJ헬스케어 인수를 통해 제약 부문 강화에 성공한 한국콜마는 더 높은 수준의 융합 기술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그간 쌓아 온 융합 기술 노하우를 CJ헬스케어의 새로운 파이프라인에 적용해 전에 없던 신기술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콜마가 지향하는 신약 개발에도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한국콜마의 앞날이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현재 가장 우려되는 것은 유동성이다. 한국콜마는 ‘대어’ CJ헬스케어 인수로 금융비용과 투자비용 등을 합하면 올해부터 내년까지 연간 1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콜마가 경험하지 못했던 규모다. 한국콜마와 CJ헬스케어의 합산 영업이익은 1600억원 수준이다. 회사가 지금처럼 안정적인 실적을 내준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현금 압박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윤 회장은 새로운 영역의 먹거리를 찾아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유전체 사업을 기반으로 한 일대일 맞춤형 서비스다. 한국콜마는 유전체 분석 개발 전문 기업인 이원다이애그노믹스의 지분을 인수해 유전체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이는 국내 헬스 케어 기업과 유전체 분석 전문 기업이 비즈니스 전반에 대해 파트너십을 맺은 최초의 사례다. 유전체 사업은 소비자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 미용·의료·식품 등 산업에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콜마는 타액으로 유전체 정보를 분석해 건강검진을 할 수 있는 키트를 병원과 연계해 출시하거나 개인 체질에 맞는 건강기능식품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또 한국콜마는 화장품업계 최초로 ‘3차원(3D) 프린팅’을 활용한 화장품 제조에 뛰어들기도 했다. 한국콜마는 삼영기계와 함께 화장품 제조용 3D 프린터를 개발하고 본격적인 화장품 소재 연구에 착수했다.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면 기존 화장품 제조 방식으로는 생산할 수 없었던 차별화된 모양과 재질의 신개념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해외시장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윤 회장은 “한반도를 R&D 허브로 삼고 해외 각지에 생산 기지를 둬 세계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미 한국콜마는 2007년 중국 베이징에 북경콜마를 설립해 1억200만 개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또 2018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중국 장쑤성 우시시에 무석콜마를 설립했다. 이는 중국 단일 공장 중 최대 규모가 될 예정이며 최대 4억 개 정도의 생산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북미 사업 확대도 진행 중이다. 2016년 미국 화장품 ODM 업체 PTP와 캐나다 화장품 OEM·ODM 업체 CSR을 인수했고 최근 미국 펜실베이니아 화장품 공장 옆에 13만8843㎡(약 4만2000평) 규모의 부지를 확보했다.hawlling@hankyung.com


[돋보기] 한국콜마의 지배구조
-한국콜마홀딩스가 중심…윤동한 회장 등 오너 지분 49.07%


한국콜마그룹은 화장품 제조·판매를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한국콜마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한국콜마홀딩스는 윤동한 회장을 포함한 오너 일가가 49.07%의 지분을 갖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기준 윤 회장이 30.18%, 부인 김성애 씨가 0.16%, 장남 윤상현 한국콜마홀딩스 대표가 18.67%, 딸 윤여원 한국콜마 전무가 0.0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콜마홀딩스는 지주사로 각 계열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한국콜마홀딩스는 지난해 하반기 기준 한국콜마(22.4%)와 콜마비엔에이치(56.2%) 등 상장사 2곳과 비상장사 18곳(국외 비상장 6곳 포함)을 지배하고 있다. 비상장사는 콜마파마(77.1%)·씨엔아이개발(77.9%)·콜마비앤에이치(56.2%)·석오캐나다(Seokoh Canada, 100%)·콜마스크(50.5%)·한국크라시에약품(50%)·파마사이언스코리아(50%) 등이다. 최근 인수한 CJ헬스케어는 한국콜마가 50.7%의 지분을 보유하는 특수목적회사(SPC) CKM이 지배하는 구조다.

단 지주사가 주력 기업인 한국콜마의 지분을 비교적 적게 가지고 있는 점은 지배구조상의 약점으로 지적된다. 이에 따라 한국콜마홀딩스는 지분 매입을 통해 한국콜마에 대한 지배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현재 지주회사의 사업회사 지분 보유 요건을 기존 20%에서 30%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지금은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율은 20% 이상이면 되지만 앞으로는 30% 이상을 확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