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10대 그룹이 올해 발표한 신년사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키워드 10개와 빈도수를 분석한 결과 성장(30)·미래(30)·고객(28)·글로벌(20)·기회(19)·기술(18)·혁신(18)·위기(17)·변화(15)·인공지능(AI·16)으로 나타났다.
주요 그룹 총수들은 복합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도 미래 기술 경쟁력을 갖춘다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경쟁력(13)·안전(12)·경쟁(8)·도전(4)이라는 키워드도 많이 등장했다.
주요 그룹은 신년사에서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중국의 추격에 대한 위기의식도 드러냈다. 삼성·SK·LG·롯데·두산그룹은 AI를 공통적으로 언급, AI 리더십 확보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경영 키워드임을 강조했다.
삼성·SK “대세는 AI, 리더십 경쟁서 앞서가자”
삼성전자는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대표이사 부회장)과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 공동명의로 신년사를 내고 “지금은 인공지능(AI) 기술의 변곡점을 맞이해 기존 성공 방식을 초월한 과감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고도화된 인텔리전스로 올해는 확실한 디바이스 AI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자”고 했다.
이들은 “AI가 만들어가는 미래는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새로운 제품과 사업,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조기에 발굴하고 미래 기술과 인재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신년 메시지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왔으나 올해도 이 회장은 신년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제시한 화두는 AI였다. 최 회장은 “AI 산업의 급성장에 따른 글로벌 산업구조와 시장 재편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AI를 활용해 본원적 사업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AI를 실제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AI 반도체 기술, 글로벌 AI 서비스 사업자와의 협업 역량, 에너지 솔루션 등 우리가 가진 강점은 AI 시장의 주요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며 “‘따로 또 같이’ 정신 아래 각 멤버사가 새 사업 기회를 함께 만들고 고객에게 제공하면 AI 밸류체인 리더십 확보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LG 창업 초기부터 이어 온 도전과 변화의 DNA를 강조했다. 구 회장은 취임 이듬해인 2019년 신년사부터 ‘LG가 더 나아갈 방향은 고객’임을 강조한 후 해마다 신년사를 통해 고객가치 경영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진화·발전시키고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고객’ 키워드를 13번 언급했다.
구 회장은 “고객을 위한 도전과 변화의 DNA로 LG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미래를 세우자”고 당부했다. 구 회장은 미래 먹거리인 AI·바이오·클린테크 등 이른바 ‘ABC’를 언급하며 “고객의 시간 가치를 높이고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AI와 스마트솔루션, 건강한 삶과 깨끗한 지구를 만드는 바이오, 클린테크까지 그룹 곳곳에서 싹트고 있는 많은 혁신의 씨앗들이 미래의 고객을 미소 짓게 할 가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은 “전고체 전지와 같은 차세대 기술 표준을 선점하고 인도·북미 등 글로벌 성장 시장에서 소재부터 제품에 이르는 완결형 현지화 전략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고 했다. 장 회장은 트럼프 2.0 시대의 관세 전쟁과 중국의 공급과잉 등을 언급한 뒤 “현재의 난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롯데·한화, 고강도 체질 개선·실행력 강조
2024년 유동성 위기설로 홍역을 치른 롯데그룹은 강도 높은 쇄신으로 핵심 사업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올해 불확실성 확대와 내수시장 침체 장기화 등으로 경제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이라며 “혁신 없이는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체질 개선을 통해 재도약의 토대를 다져야 한다”며 “재무전략을 선제로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재무건전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시장과 관련해서는 “롯데만이 제시할 수 있는 혁신과 차별화된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우리의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자”고 주문했다. 본격적인 AI 시대를 맞아 “비즈니스 모델 창출과 비용 절감 등 유의미한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AI 내재화에 집중하자”고 당부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글로벌’을 8번 언급하며 “흔들림 없는 실행력과 대한민국 국격을 높인다는 책임감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김 회장은 “우호적이고 희망적인 상황이라도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위기의식과 절박함으로 어떠한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을 한화만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며 “인사, 생산, 안전과 같은 경영의 기본활동부터 다시 살펴보고 빈틈없는 계획과 차질 없는 실행으로 단단히 채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방산, 해양, 금융, 기계 등 그룹의 주력사업에 대해 “다양한 산업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상황에 맞게 우리 전략도 변화할 때”라며 “우리의 기술력과 인적 역량이 곧 대한민국의 경쟁력이며 실력이 된다는 생각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중국’을 4번 언급하며 중국의 추격에 철저하게 대비할 것을 강조했다. 권 회장은 “조선사업은 3대 핵심 분야를 더욱 최적화해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는 최첨단 선박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하고 동시에 중국에 잠식당한 기존 시장을 되찾아 오기 위한 전략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한국 조선업 협력 요청과 관련해 “미국과의 조선 분야 협력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 회장은 전 세계적인 경제안보와 보호무역주의 강화 기조 속에서 HD현대가 나아갈 방향을 기술과 혁신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유지에 뒀다.
안전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권 회장은 ‘우리 회사에는 당신이 다치면서까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단 하나도 없다’는 회사의 안전 슬로건을 언급하며 “새해에는 안전사고로 회사 이름이 거론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CJ “글로벌 확장”, 두산 “어려워도 기회 온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위기를 정면 돌파할 핵심 무기로 ‘1등 고객을 만족시키는 본업 경쟁력’을 강조했다. 정 회장은 “늘 새로움을 갈망하는 1등 고객을 제대로 아는 것이 우리의 본업이고 1등 고객이 우리를 아는 게 경쟁력”이라고 진단했다.
정 회장은 “2025년은 신세계가 또다시 혁신하고 변화할 적기”라고 못박았다. 이어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스타필드, 트레이더스 등이 그랬던 것처럼 신세계그룹은 혁신 DNA로 고객 삶의 변화를 이끌었다”며 “1등 고객의 갈증에 먼저 반응하고 집요하게 실행하는 신세계 본연의 DNA를 실행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졌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CJ그룹이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성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것은 각 사업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밝혔다. 손 회장은 특히 “트럼프 정부 2기 출범과 함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전 세계 경제와 안보 지형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손 회장은 “글로벌 영토 확장을 통한 성장동력 확보를 적극 추진해 주기 바란다”며 “국내 사업에서 내실을 다지며 글로벌 사업을 통해 본격적인 미래 성장의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향후 기업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며 “두산 고유의 AI 생태계 구축에 가용한 역량을 모두 모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회장은 올해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져 예측불가(Unpredictable)하고 불안정(Unstable), 불확실(Uncertain)한 ‘3U’ 상태의 경영환경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AI 관련 수요 급증과 세계 전력시장 확대 기회 속에서 대형원전·소형모듈원전(SMR)·수소연료전지·전자소재 사업에서 더욱 속도를 높여 시장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박 회장은 “당장은 시장 여건이 어려워도 기회는 반드시 온다”며 “130여 년의 역사 속에서 단련한 자신감으로 현재를 단단히 하면서 미래를 준비해 나가자”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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