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폴 크루그먼의 경고 : 전경련 주최 양극화 해법 특별대담①]
-폴 크루그먼 교수 기조 발제
"미 노동계층, 1970년대 이후 소득 제자리"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이 세상이 점점 더 불평등해지고 있습니까. 답은 ‘그렇다’입니다. 동시에 점점 더 평등해지고 있기도 합니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이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렸던 때는 없으니까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방한 기간 중 크루그먼 교수는 전경련 콘퍼런스센터에서 6월 27일 국내 경제학자들과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 ‘양극화, 빈곤의 덫 해법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특별 대담은 무려 두 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의 사회로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대담자로 나서 양극화의 현황과 해법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을 비롯해 글로벌 양극화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한국에서 논의 중인 관련 정책들에도 촌철살인의 조언을 더했다.

이날 대담은 크루그먼 교수의 ‘글로벌 양극화’에 대한 강연으로 시작됐다.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 45년 전 자신의 추억을 끄집어내며 그동안 이 세계가 얼마나 많은 ‘성공 신화’를 만들어 왔는지 상기시켰다. 먼저 크루그먼 교수의 강연 내용을 옮겼다.

◆세계 경제가 직면한 세 가지 덫

지난 45년간 이 세계는 정말 많은 진전을 이뤄 왔다. 45년 전 나는 대학원생이었는데 경제학과 관련해 전공 분야를 정하는 시기였다. 그때 내게는 빈곤한 국가를 부유하게 만드는 ‘경제 발전’이 매우 중요한 주제였다. 하지만 이 분야가 매우 우울하다고 생각해 선택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빈곤국과 선진국의 운명은 정해져 있고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그 후 세계는 ‘역사상 가장 눈부신 성공 신화’를 써왔다. 그저 생계를 유지하는 데 그쳤던 국가들이 지금은 굉장한 선진국으로 발전했다.

지금의 경제적 불평등은 이와 같은 성공 신화의 배경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성공을 보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문제들에 맞닥뜨리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미국의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코끼리 곡선’이다. 이 곡선은 세계화가 활발히 진행된 1988~2011년 전 세계인을 소득수준에 따라 100개의 분위(가로축)로 줄 세웠을 때 실질소득 증가율(세로축)이 얼마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미 노동계층, 1970년대 이후 소득 제자리"
코끼리의 옆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코끼리 곡선’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그래프는 우리에게 지금의 경제적 불평등이 얼마나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 차트에는 중간에 두 개의 ‘혹’이 있는데 이들이 세계화로 인해 더 많은 소득 증대를 경험한 수혜층이다. 이 사람들과 하위층의 격차는 더 높아졌고 특히 가장 부유한 최상위층과의 격차는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그래프가 항상 이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40~50년 전만 하더라도 그래프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상위층과 하위층의 격차가 상당히 평평한 모습이다. 그러면 세상은 왜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일까. 이는 ‘글로벌 경제의 변화’와 연관이 깊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국가들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세계무역기구(WTO) 등을 통해 굉장히 오랫동안 ‘글로벌 자유무역’의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글로벌 경제는 ‘복잡한 가치 사슬’로 얽히고설킨 국제 교역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면 지금 내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은 중국에서 완제품이 된다. 하지만나 이 제품의 내부에 들어가 있는 부품은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다. 세계 각지에서 만들어진 완제품이 중국을 거쳐 완성돼 미국 시장의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글로벌 경제가 이처럼 변화하는 과정에서 ‘수출 주도형 국가’로 변모하며 성장의 기회를 잡았다. 복잡한 가치 사슬의 일부를 확보하고 새로운 수출 능력을 개발하며 경제성장을 구가해 왔고 그 나라의 중산층이 그 수혜를 봤다.

이를 나타내는 것이 코끼리 곡선의 A지점이다. 대부분이 중국$인도와 같은 신흥국의 중산층들이다. 10억 명 이상의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빈곤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부유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훌륭한 삶의 질을 누리고 있다. 이는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 코끼리 곡선은 지금 이 세계가 겪고 있는 심각한 ‘세 가지 덫’도 보여준다. 첫째는 이 코끼리 곡선의 가장 왼쪽에 자리한 사람들, 세계 최빈국의 빈곤층이다. 아직도 이 세계에는 빈곤한 국가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이 경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말 먼 길을 가야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아직 경제 성장의 기적을 본 적이 없다.

둘째 덫은 ‘중위 소득의 덫(middle income trap)’이다. 코끼리 곡선이 고꾸라지는 B지점이다. 미국 등 선진국의 중하위층의 실질소득 증가율을 보여주는 지점인데, 세계 최하위 빈곤층보다 낮다.

미국의 일반적인 생산직 노동자, 그러니까 관리직이 아닌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굉장히 행복한 시기를 보냈다. 미국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이들의 소득 또한 꾸준히 증가했다. 적어도 25년간 이들의 삶의 질은 2배 이상 개선됐다. 그런데 1973년을 전후로 이들의 실질소득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있다.
"미 노동계층, 1970년대 이후 소득 제자리"
왜 그럴까. 197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성장이 멈춰서가 아니다. 미국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히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을 해왔다. 지금도 1970년대와 비교하면 여전히 많은 부를 창출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부의 과실’을 미국의 노동계층은 하나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부’는 어디로 갔을까. 그 답은 코끼리 곡선의 가장 오른쪽 지점(C)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최상위 1% 계층의 실질소득 증가율이다.

물론 예전에도 글로벌 엘리트 계층에는 다른 계층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많은 소득을 가져갔다. 하지만 지금과 당시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예전에는 한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고위 임원의 소득이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삶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의 경제성장에 따른 부가 아주 최상위 계층의 극소수에게만 집중되고 있다. 미국이 극단적인 예다. 내가 뉴욕에 살고 있기 때문에, 뉴욕의 최상위층의 삶은 그야말로 ‘우리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 모두와 분리된 그들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극단적인 소득의 불평등은 굉장히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미국이 그 선봉에 서 있다. 미국 경제가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노동자들의 평균수명은 계속 단축되고 있다. 마약$자살$알코올 등으로 인해 특히 일부 노동계층에서 사망률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일부 ‘임금의 정체’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제가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와 유사한 현상이 일부 다른 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후퇴하고 있다고 느낄수록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큰소리치는 인물을 찾게 된다. 정치적으로 극단주의가 나오는 배경 또한 이와 연관이 있다.

셋째는 ‘중위 소득 국가의 덫’이다. 이 문제는 그렇게 극단적인 결과를 일으키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1990년대는 아시아 국가에 대한 ‘낙관주의’가 세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1997년 금융 위기 이후 이들은 ‘중위 소득 국가의 덫’에서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아시아의 국가들은 1997년 금융 위기 이후 2008년 이후 서구의 국가들이 금융 위기에서 회복한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하지만 이 외환위기로 인해 경제개발의 성장세에 타격을 받았다.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는 1970년대와 비교해 생활수준이 훨씬 높아졌다. 하지만 1970년대 이들 국가는 2018년이 되면 선진국 대열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지금도 여전히 개발도상국에 머물러 있다. 이 중위 소득의 덫을 빠져나가는 데 가장 근접한 국가는 한국이지만 그렇다고 예외는 아니다.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이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양극화의 덫’을 빠져나가기 위한 답은 무엇일까. 아무도 모른다. 아직까지도 미국에서는 이와 관련한 대규모의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노동자들의 힘을 더 실어주기 위한 방안,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비롯해 보다 다양한 접근과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세계적으로 몇몇 국가들은 정말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여전히 뒤처진 사람들이 남아 있다. 이들을 글로벌 경제에 편입시키지 못한다면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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