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폴 크루그먼의 경고 : 전경련 주최 양극화 해법 특별대담 ②]
-특별 대담
"최저임금 인상, 생산성 뒷받침 돼야"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방한 기간 중 크루그먼 교수는 전경련 콘퍼런스센터에서 6월 27일 국내 경제학자들과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 ‘양극화, 빈곤의 덫 해법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특별 대담은 무려 두 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의 사회로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대담자로 나서 양극화의 현황과 해법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을 비롯해 글로벌 양극화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한국에서 논의 중인 관련 정책들에도 촌철살인의 조언을 더했다.

크루그먼 교수의 강연에 뒤이어 토론이 진행됐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의 사회로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한국 경제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과 관련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고 크루그먼 교수는 이를 경청한 뒤 신중하게 자신의 의견을 보탰다.

◆ 최저임금 인상, 52시간 근로 "언제나 균형이 중요하다"

권태신 부회장 : 미국은 부자들이 먼저 나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가 국민들의 뜻에 맞게 세금을 쓰는지, 민간보다 더 효율적으로 세금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폴 크루그먼 교수 : 먼저 민간이 정부보다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전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분야인지에 따라 정부가 더 효율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민간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운영하는 공장이라는 개념은 어디에서도 성공한 적이 없지만 의료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는 정부가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사람들이 빈곤해지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제공해야 하지만 문제는 어디에서 끝을 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더. 이를 위해서는 많은 세수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유럽 국가들을 보면 미국에 비해 세금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0% 정도 높지만 여전히 상당히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다. 세금을 GDP 대비 50% 올리는 것은 나쁜 아이디어지만 GDP 대비 35%까지 세금을 올리는 것은 지속 가능하다.

권 부회장 : 최근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 추이를 보면 지난 10년간 2배 가까이 올랐다.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에 따른 것이다. 이와 같은 소득 주도 성장이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나.

크루그먼 교수 : 현재 양극화 해소를 위해 미국에서 논의 중인 방안은 세 가지다. 첫째는 인적자원의 훈련이다. 모두가 원칙적으로 이것을 지지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면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특히 하위 50%에 대한 교육은 분명 어느 정도 개선 효과를 낼 것이다. 하지만 ‘소득 불평등의 구조’를 바꿀 정도의 큰 성과는 만들어 낼 수 없다.

둘째는 ‘사전 분배’, 즉 소득(임금)을 조정한다든지 노조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셋째는 ‘재분배’로, 이는 세수를 활용해 하위 계층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방안을 통해 이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안 역시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이들 방안이 병행돼야 하며 각 나라마다 정치$경제적 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라 ‘정교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인상’만 하더라도 같은 미국 내에서도 지역마다 그 성과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시애틀은 최저임금 인상을 단행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앨라배마 주였다면 이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 차이는 ‘생산성’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생산성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광두 부의장 : 현재의 흐름을 보면 한국은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빨랐다는 판단이다.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임금 격차를 해소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최저임금을 인상한 것이라면 정부가 이 사안을 ‘실질임금’ 측면에서 접근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권 부의장 : 미국은 금융업과 정보기술(IT)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소득을 독식하고 있다. 연봉 격차가 심각해지고 있어 과거에 비해 노조의 힘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는데, 한국의 노조 문제는 상황이 다르다. 목적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소수의 기득권자들만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크루그먼 교수 :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미국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자면 현재 민간 부문의 8%만이 노조에 참여하고 있다. 내가 어린 시절인 1960년대만 하더라도 미국에 노조는 굉장히 강력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노조가 더 많이 활동할 필요가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는 균형이다. 여러 기관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덴마크는 70%의 노동자들이 노조에 참여하고 있지만 과도한 임금 인상이라든지 지나친 요구는 없다. 과세도 GDP의 40%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 이와 같은 것들이 모든 국민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는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언제나 극단적인 상황들은 존재할 수 있다. 미국은 노동자들의 권한을 축소한 것, 사회 안전망을 너무 약화시킨 것 등과 관련한 실수가 있었다. 그러도 다른 나라들에서는 이와는 반대의 방향으로도 실수가 있었고 또 그와 같은 실수를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핵심은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면밀하게 증거를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정책이 어떤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권 부회장 : 한국은 7월 1일부터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그런데 업종마다 융통성 없이 지나치게 일괄적으로 적용해 비판을 받고 있다.

김 부의장 : 정부가 52시간 근로의 처벌을 6개월 유예한 것은 그 기간 중에 보완책을 찾겠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각 노동자마다 욕구가 다르기 때문에 업종에 따라, 개인에 따라 유연하게 노동시간을 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정교한 직무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크루그먼 교수 : 미국의 주당 노동시간은 40시간이다. 52시간이면 선진국 중에서도 한국이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지 놀랍다.

이와 관련한 논문들이 있는데, 먼저 개인마다 자신의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짧은 시간 일하는 대신 임금을 적게 받길 선호하는 사람과 더 오랜 시간 일하고 높은 임금을 받길 원하는 사람 등 각자의 요구가 다르다는 것을 감안한 방안이다.

하지만 이는 의사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고용주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여지가 있다. 삶의 질을 위해 노동시간을 짧게 원하는 직원이 ‘업무 태도가 나쁜 문제아’로 낙인찍힐 수 있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국가 차원에서 사람들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하는 게 좋을 수 있다.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시장의 선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노동시간의 상한선을 정하는 것이 긍정적일 수 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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