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가계 부채 부담도 위험수위, 경기 둔화시 대응 수단 마땅치 않아


통상 압력·신3고 현상 ‘적신호’…경제 관료는 경기 논쟁만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양대 국인 미국과 중국 간 통상 마찰이 좀처럼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첫해에는 달러 약세에 위안화 약세로 맞서는 ‘환율 전쟁’에 이어 올 들어 ‘관세 전쟁’, 최근에는 미래 국부 주도권을 놓고 ‘첨단 기술 전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간 중간자 위치에 있어 더욱 문제다.


◆미·중 갈등 쉽게 해소되기 어려워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역 적자 확대 여부에 따라 국가별로 ‘이원적 전략(two track)’을 추진하고 있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 적자를 성장과 고용을 빼앗기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 이 때문에 무역 적자 확대국에 대해서는 통상 압력을 집중시키고 다른 국가와는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든 통상 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종전과 다른 점이다. 반덤핑 관세, 상계관세 등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서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수단뿐만 아니라 미국 법에 근거한 수단까지 동원하고 있다. 심지어 새로운 상호 호혜세를 부과한다든가 미국 의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명령으로 발동할 수 있는 슈퍼 301조까지 동원할 태세다.


통상정책을 다른 목적과 결부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미국 통상법 232조에 근거해 통상을 안보와 연계한다든가 대북한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한국에 대해 집중적으로 통상 압력을 높이고 있다. 한국 등 해당 국가가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에 쉽게 대처하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에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면서 부담과 책임만 지는 국제 규범과 협상은 우선순위가 밀리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WTO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의사, 파리신기후체제 불참 통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혹은 폐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앞으로 미·중 간 통상 마찰은 쉽게 타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경제의 주도권 싸움인데다 경제 발전 단계 차이가 워낙 커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가 쉽게 줄어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트롱 맨’인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도 여기에서 밀리면 정치 생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미·중 간 통상 마찰이 지속됨에 따라 많은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부작용은 세계 가치 사슬(GVC)이 약화되고 있는 점이다. GVC는 ‘기업 간 무역(Inter Firm Trade)’과 ‘기업 내 무역(Intra Firm Trade)’을 말한다. GVC가 약화되면 세계 교역량이 위축돼 한국과 같은 수출 지향적인 국가일수록 타격을 받는다.


지난 10년 동안 지속돼 왔던 세계경기 장기 호황 국면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관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일본·유럽 등 주요국 경기는 작년 3분기를 정점으로 성장률이 낮아지는 추세다. 미국 경제만 하더라도 작년 3분기 3.2%를 기록한 후 같은 해 4분기에 2.9%, 올해 1분기에 2.3%로 떨어졌다.


◆유독 위기설에 민감한 한국 경제


올해 하반기를 앞두고 수정 전망치를 발표한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국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올해와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금융 위기 이후 수정 전망치를 내놓을 때마다 세계경제 성장률을 상향 조정해 오던 추세가 10년 만에 종료되는 셈이다.


최근 들어 한국 경제 내부에서도 경기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그것도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 각료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어 정책 수용층인 기업과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보다 우려가 앞선다. 종전에 경기 둔화 논쟁이 있을 때 민간이 제기하고 정책 당국이 반박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관행이었다.


한국 경기에 대한 우려는 나라 밖에서 먼저 제기됐다. 금융 위기 이후 경기 진단과 예측 지표로 가장 정확하다고 평가받는 OECD의 복합선행지수(CLI)를 보면 한국은 작년 11월 이후 3개월 연속 하락해 ‘100’ 밑으로 떨어졌다. 이 지수가 ‘100’을 밑돌 때는 ‘경기 둔화’ 혹은 ‘침체’를 의미한다.


경기 예측력이 가장 높은 IMF의 경제 전망에서도 주요 교역국 성장률은 상향 조정되고 있지만 한국만 3%에서 정체되고 있다. 오히려 지난 4월 이후 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는 예측 기관도 나오기 시작했다. ‘성장률의 차별화(decoupling)’ 문제다. 그 어느 국가보다 대외 환경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특성상 교역국 성장률이 상향 조정되면 한국의 성장률 상향 조정 폭은 더 컸었다.


한국 경제의 앞날에 놓인 변수는 녹록하지 않다. 대외적으로 각국의 보호주의 물결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는 가운데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력이 한국에 집중되고 있다. 일본·유럽을 중심으로 선진국 경기 성장세도 한풀 꺾였다. 아르헨티나·인도네시아·터키·러시아·브라질 등 신흥국은 금융 위기 재연 조짐도 감지된다.


채산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국제 금리와 유가, 달러 가치가 동시에 올라가는 ‘신3고’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달러 강세(원화 약세)를 한국 수출과 경기에 긍정적인 변수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미국 국채 금리 상승에 수반되는 달러 강세는 자금 이탈, 달러 부채 부담 증가 등의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게 우려된다. 가계 부채 부담도 위험수위를 넘은 지 오래됐다.


거시(성장률과 고용)와 미시(상장기업 실적) 차원에서 삼성전자 쏠림과 착시 현상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 이후 후속 조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테일 리스크(꼬리 위험)’도 언제든지 도사리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경기가 둔화(혹은 침체)되면 이를 살릴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통화정책은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을 추진하기 어렵다. 재정정책은 아직까지 여유가 있지만 재정수지가 너무 빨리 악화되고 있다. 외환 정책은 외화 거래 내역을 공개해야 돼 실질적으로 ‘개입’하기가 어려워졌다.


한국 경제는 유독 위기설에 민감하다. 정책 당국자가 알아둬야 할 것은 대내외 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위기설이 곧바로 판치는 것은 ‘통계 수치상의 위기’가 아니라 정부의 경제 운용 체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 시스템상의 위기’에 연유된다는 점이다. 정책 책임자는 경기 논쟁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책 마련에 몰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