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영입은 ‘사람’이 아니라 ‘성공 레시피’를 사는 것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Q. = 우리 회사는 몇 년 전부터 각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뒀던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해 왔습니다. 회사의 연구·개발과 생산 기술, 마케팅, 영업, 관리 분야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 이름이 잘 알려진 임원급부터 중간 간부, 석박사급 연구 인력까지 꽤 많은 사람들이 입사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회사가 기대했던 수준의 성과를 만들어내 직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들여 영입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도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칩니다. 특히 일부 사람들의 성과는 실망스러울 정도여서 주위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내부에서 영입 대상자를 잘못 고른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업무 역량이나 성과가 실제보다 부풀려진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영입을 담당했던 직원들은 이런 지적에 몹시 곤혹스러워합니다. 나름대로 꼼꼼히 검증했는데 결과가 이러다 보니 하소연조차 어려운 실정이니까요. 영입한 사람들의 성과가 이렇게 들쑥날쑥한 이유는 뭘까요.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걸까요, 아니면 이들의 적응 과정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사진)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조직의 체질 개선에는 실패했던 페테르 뢰셔 지멘스 전 회장
A. = 인재 영입은 기본적으로 어떤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공 경험을 영입하는 것입니다. 인재를 영입하려는 목적은 그 사람이 이전 회사에서 성과를 냈던 경험을 토대로 기업이 원하는 성과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인재를 영입할 때 사전에 후보자의 성공 경험을 꼼꼼히 분석해 봐야 합니다. 후보자의 경험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영입 결정이 바뀔 수 있고 영입한 이후 회사의 지원이나 활용 방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인재 영입의 효과를 제대로 거두려면 첫째, 영입한 사람이 이룩한 과거의 성과가 현재도 재현 가능해야 합니다. 만약 영입 대상자의 성과가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면 재현할 가능성이 적다고 봐야 합니다. 반복할 수 있는 성과는 대체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입니다. 마치 상세한 레시피에 따라 요리해 내놓은 음식과 같습니다. 레시피가 있다면 다음에도 맛과 향 그리고 색깔이 비슷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성과도 성과 창출 공식이 있다면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성공의 결과보다 성공의 과정을 봐야
하지만 아무리 위대한 성공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지 못한다면 그 성공은 재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재현이 불가능한 성공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을 영입하는 것 역시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가 ‘성공 레시피’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비록 신화 같은 놀라운 성과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재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재를 영입할 때는 영입 대상자가 어떤 환경에서 성과를 거뒀는지 자세히 파악해야 합니다. 회사가 그에게 성과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없다면 그를 영입해도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대기업 같은 환경을 만들 수 없는 중소기업이라면 대기업에서 거둔 성과를 기대하면서 대기업 출신 임원을 영입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글로벌 기업 같은 업무 환경을 조성하기 어렵다면 글로벌 기업 출신 임원을 영입해 그가 글로벌 기업에서 거둔 성과를 재현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둘째, 후보자가 새로운 환경에서도 과거의 성공을 재현할 의지가 강력해야 합니다. 후보자가 다른 회사에서 자신의 성공 경험을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후보자가 성공할 당시와 똑같은 환경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업에서 어떤 사람이 큰 성공을 거두려면 많은 것들이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조직 구성원, 기업 브랜드, 시스템과 프로세스, 상품 기획력, 생산 기술, 자금, 마케팅과 영업 능력 등이 각각 질적 수준이 높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서로 잘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대기업에서 탁월한 성과를 냈던 사람이 중소기업에 와서 맥을 못 추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입니다. 대기업에서 성과를 냈을 때의 업무 환경을 중소기업에 들어와 똑같이 조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소기업의 조직 구성원이나 브랜드·시스템·자금·기술이 대기업과 같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중소기업에 영입된 대기업 출신 임원들이 초기에 대기업과 비슷한 업무 환경을 조성하려고 애를 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은 중소기업에 영입돼 직원을 채용해 훈련하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프로세스를 정비하는데 대부분의 시간과 비용을 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자신이 일하던 대기업과 같은 업무 환경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영입한 사람의 의지입니다. 영입한 사람은 과거의 성공 경험을 토대로 성과 창출이 가능한 업무 환경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런데 업무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과거와 똑같은 것은 거의 없습니다. 어떤 요소는 양이나 질이, 어떤 것은 요소를 확보하는 시기가 달라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결합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각각의 요소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다 보면 원하는 결과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영입한 사람이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절을 넘어서려는 의지가 없다면 성과 환경 구축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셋째, 회사도 영입하려는 사람이 성과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영입한 사람이 과거의 성과를 재현하기 위한 환경은 그 사람이 혼자 만들 수 없습니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에 회사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많습니다.
인재 영입 경험이 많은 기업들이 최대한 비슷하게 그리고 최대한 빨리 영입한 사람의 과거 성과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형 게임 회사의 탁월한 게임 개발자를 영입하는 중소 게임 회사들은 마케팅 역량이 뛰어난 회사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거나 선발 대기업에 퍼블리싱을 맡깁니다. 영입한 사람이 좋은 게임을 만들고도 흥행에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겁니다.
-CEO가 영입한 인재 직접 챙겨야
어떤 기업은 영입한 임원의 사내 입지가 약할 것으로 보고 초기 일정 기간 동안 대표이사 직속으로 배치해 힘을 실어주기도 합니다. 또 어떤 기업은 임원을 영입할 때 아예 같이 일했던 팀원들을 통째로 영입합니다. 그를 뒷받침하는 조직을 새로 구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입 대상자가 이전 회사에서 거둔 성과의 상당 부분이 자기 혼자가 아니라 그가 속하고 이끌던 조직이 만든 것이 많습니다. 이때 영입하려는 사람은 그 조직의 대표이긴 하지만 그의 역할은 조직원 중 한 명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대표 한 명만 영입해선 성공을 재현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조직원을 영입해야 합니다.
전기전자 기기를 제조하는 독일 기업 지멘스는 2007년 페테르 뢰셔를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습니다. 지멘스는 160년 동안 내부 인사를 승진시켜 CEO를 맡기는 전통을 지켜 왔습니다. 그런데 뢰셔 CEO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제약 업체인 머크에서 글로벌 보건부문 대표로 일하던 사람입니다. 지멘스가 이렇게 오랜 전통을 깨고 CEO를 외부에서 영입한 것은 회사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당시 회사는 지멘스 역사상 최대의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있었습니다. 지멘스 이사회는 CEO의 외부 영입을 통해 대대적인 혁신을 추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뢰셔 전 CEO는 재임 6년 동안 다섯 번이나 수익 전망을 맞추지 못해 투자자들의 거센 비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급기야 분기 수익이 30%나 넘게 급감하면서 10년 임기를 채우지 못 하고 해임당하고 말았습니다. 한때 ‘지멘스의 구세주’라는 칭송까지 받았던 뛰어난 경영자였지만 외부 영입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입니다.
그가 실적 부진으로 악전고투가 거듭되자 회사 안팎에서 내부 출신에게 경영 책임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외부 영입 인사는 내부 소통과 회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조직과 사업을 제대로 이끌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사회는 격론 끝에 결국 내부 출신 정통 ‘지멘스맨’에게 회사의 운전대를 다시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40년이 넘게 지멘스에 재직하면서 7년째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던 조 카이저를 새로운 CEO로 추대한 겁니다.
-뛰어난 경영자도 새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
물론 뢰셔 전 CEO가 혁신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취임 이후 지멘스의 디지털화를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스마트 공장을 중심으로 디지털 기업의 선두주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이를 위해 1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어 소프트웨어 회사를 줄줄이 인수했습니다. 그는 또 통신 계약을 따내려고 비자금을 조성해 러시아 정부 관료에게 뇌물을 준 ‘뇌물 스캔들’을 수습하고 직원들의 윤리 의식을 강화했습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비핵심 자산도 매각했습니다.
뢰셔 전 CEO는 이렇게 지멘스를 바꾸려고 했습니다. 구닥다리 공장을 운영하는 제조 기업에서 벗어나 첨단 기술 중심의 기업으로 전환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멘스는 그가 오랫동안 일했던 제약회사 머크가 아니었습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브랜드나 인력, 시스템, 업무 프로세스, 기업 문화에서 제조 기업의 뿌리가 너무 깊었습니다. 이 때문에 디지털 회사로의 변신이 더뎠고 이 과정에서 기존 제품과 서비스가 경쟁력을 잃었습니다. 그의 혁신에 찬사를 보내던 주주와 이사회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대한 지지를 거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입한 인재가 성과를 거두려면 그가 누구든지 과거에 성공했던 당시와 같은 환경이 구축돼야 합니다. 뢰셔 전 CEO처럼 아무리 뛰어난 혁신적 경영자라도 업무 환경이 바뀌면 자기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귀하의 회사도 인재를 영입할 때 영입 대상자가 주도적으로 업무 환경을 바꿀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회사도 영입한 인재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업무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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