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자동차·SK·LG 등 4대 그룹이 지난해 말부터 내놓은 중·장기 투자 금액은 302조원 규모다. 한국의 한 해 국내총생산(약 1800조원)의 16.7%에 달한다. 기업의 잇단 투자 발표가 부진에 빠진 국내 경기를 되살리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투자가 경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규제 개혁으로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현대차는 로봇, 인공지능(AI), 미래 에너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육성 등에 5년간 2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SK는 반도체·소재, 차세대 정보통신기술(ICT) 등에 3년간 80조원, LG는 전기자동차 부품과 자율주행 센서, 카메라 모듈, 바이오 등에 올해 19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4대 그룹이 향후 5년 이내에 새로 뽑기로 한 인력은 10만 명이 넘는다. 현대차는 2022년까지 4만5000명을 신규 채용하고 SK는 2020년까지 2만8000명을 고용하기로 했다. LG는 올해에만 1만 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투자 확대가 극도로 침체된 경제 상황에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미 계획을 짜놓고 실행하는 투자라면 바로 올해 하반기부터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0.1~0.2%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기대한다. 오정근 건국대 IT금융학과 교수는 “투자 집행에 따른 일자리, 소비 증가에 따라 현재 2.8%로 전망되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2.9~3.0%로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주요 기업이 로봇·AI·헬스케어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고부가가치 신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것도 미래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 신성장 사업에만 25조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LG그룹도 올해 투자액의 절반 이상을 차세대 디스플레이와 혁신성장 분야에 집중하기로 했다. 현대차 역시 투자의 초점을 차량 전동화, 스마트카, 로봇, 미래 에너지 등 미래 산업 분야에 맞췄다. SK그룹은 반도체 투자비용 49조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5세대(5G) 통신이나 지능형 전력 시스템에 쏟아붓는다.
하지만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업을 방문하면 해당 기업들이 숙제를 하듯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현재까지의 패턴이 고착화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4개 그룹 모두 김 부총리와의 간담회 당시나 직후 투자와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1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투자 확대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데, 이를 공표하는 시점에 대해 정부 경제팀의 방문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의 압박으로 무리한 투자를 집행하면 미래의 부실로 이어질 위험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hawlli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5호(2018.08.13 ~ 2018.08.1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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