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배달에서 물류까지 영역 확대...‘오픈 플랫폼’ 전략으로 기업 가치 키운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정채희 기자] ‘동남아의 우버’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다. 베트남과 미얀마 등 8개 국가, 225개 도시에서 무려 1억 명이 이용 중인 그랩은 동남아 시장에서 이미 우버를 뛰어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그랩은 지난 3월 우버의 동남아 사업을 인수하며 현재 기업 가치가 6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남아 지역의 유일한 ‘유니콘(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이다.
그랩의 야망은 단지 ‘승차 공유’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음식 배달 서비스 ‘그랩푸드’, 물류 배달 서비스 ‘그랩 익스프레스’, 모바일 결제 시스템 ‘그랩 페이’ 등 모든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슈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스타트업 그랩의 성공 비결과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2016년 10월 그랩에 합류한 밍 마 사장을 e메일로 인터뷰했다.
밍 마 사장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학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3년간 골드만삭스, 소프트뱅크 등 미국과 아시아 기업에서 재무 및 투자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다. 2000부터 2012년까지 골드만삭스 머천트은행(Merchant Banking Division)의 부사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그랩의 싱가포르 본사에서 전략적 파트너십 투자, 신규 시장 전략 개발과 실행, 그랩의 전체 자본 구조 관리 등을 총괄하고 있다.
-그랩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요.
“그랩은 동남아 지역에 뿌리를 둔 테크 기업 중 ‘첫 성공 사례’입니다. 우리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각 지역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하이퍼 로컬(지역 밀착형)’ 전략이었습니다. 같은 그랩 앱이라고 해도 225개 도시마다 각기 다른 앱을 운영하죠. 각각의 시장마다 구체적인 특성을 파악해 이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탄탄한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해요. 엔지니어와 연구$개발(R&D)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현재 그랩은 인도 방갈로, 중국 베이징, 베트남 호찌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미국 시애틀 그리고 싱가포르 등 6개 도시에 글로벌 R&D센터를 운영 중입니다. 이는 동남아에 기반을 둔 다른 승차 공유 업체들에는 없는 우리만의 경쟁력이죠.”
-그랩이 추진 중인 ‘오픈 플랫폼’ 전략은 무엇입니까.
“그랩은 현재 동남아 시장의 O2O 모바일 플랫폼 선두주자입니다. 최근에 오픈한 오픈 플랫폼 전략인 ‘그랩 플랫폼’은 보다 다양한 파트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우리의 소비자들에게 더 풍성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거예요.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개방함으로써 교통$물류 등 무궁무진한 서비스들이 결합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이를 통해 지역민들 공통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용자 개개인의 특성에 더욱 맞춰진 ‘하이퍼 로컬’, ‘하이퍼 퍼스널’ 서비스가 가능해질 겁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공동체의 사람들을 서로 연결함으로써 그들의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오픈 플랫폼’ 전략은 더 많은 파트너사들이 효과적으로 사업을 키워 나가는 데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랩의 가장 큰 경쟁력은 동남아 지역 전반을 아우르는 1억 명의 사용자와 700만 명의 운전자라는 강력한 네트워크인데, 파트너사들 또한 오픈 플랫폼을 통해 이와 같은 그랩의 장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택시 운전사들을 비롯한 우리의 고객들 역시 다양한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질 수 있고 궁극적으로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포함해 많은 글로벌 기업이 그랩에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동남아 시장에서 그랩은 단지 승차 공유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일상 앱’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택시나 오토바이 공유뿐만 아니라 음식 배달, 모바일 결제 등 일상생활 속에서 수시로 그랩을 이용하고 있는 겁니다. 특히 지역의 특성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반영하고 있는 그랩의 ‘하이퍼 로컬’ 전략이 파트너사들에도 매력적으로 다가갔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동남아 시장의 디지털 경제를 함께 키워 나가면서 그 성장의 수혜를 같이 누릴 수 있으니까요. 한국 업체들에도 그랩은 동남아 시장 진출을 위한 ‘게이트웨이’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랩은 향후 한국 기업들을 포함해 더 많은 기업들에 문을 활짝 열어두고 지속적인 협업을 이어 나갈 계획입니다.”
-동남아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이 있나요.
“우리는 동남아 시장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동남아 시장만 해도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랩은 현재 동남아인 6명 중 1명이 사용하는 승차 공유 서비스로 성장했어요. 다음 목표는 동남아 시장을 이끌어 가는 O2O 플랫폼이 되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그랩의 다양한 서비스를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게 먼저겠죠. 운전사들을 포함해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개인사업자)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는 데 집중할 겁니다.”
-기업공개(IPO) 계획은 없나요.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최근에도 2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자본금이 충분히 잘 갖춰져 있습니다. 현재는 택시$오토바이 등 승차 공유 시장을 키워 가면서 음식$결제$금융 등 서비스를 다각화하는 데도 집중할 방침입니다.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것도 현재의 우리의 우선순위입니다. 올해 상반기 그랩은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장을 이뤄 냈습니다. 자카르타에서 시작한 그랩푸드 서비스가 인도네시아 28개 지역으로 확대됐고요. 총거래액(GMV)도 4배 정도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그랩익스프레스의 총거래액도 두 배로 늘었고요. 이와 함께 기술력을 강화해 더 많은 지역에 서비스를 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그랩 플랫폼에도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한국은 승차 공유 업체들이 각종 규제, 기존 사업자와의 갈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나요.
“규제 당국 또한 우리의 중요한 이해관계인이고 따라서 지속적으로 논의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랩은 6년 전 말레이시아의 택시와 같은 교통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랩은 고객들이 겪고 있는 일상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 당국과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공공 문제와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는 것이 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는 택시와 버스 등 기존의 대중교통 업체들과도 마찬가지고요. 이를 위해 수년에 걸쳐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데 매우 공을 많이 들여 왔습니다. 그 덕분에 동남아 시장에서 ‘저스트그랩(그랩카 또는 그랩 택시 중 주변에 있는 가장 가까운 차와 매칭해 주는 서비스)’, ‘그랩나우(가장 가까이 있는 오토바이를 잡아 탈 수 있는 서비스)’, ‘그랩셔틀(공유 셔틀버스 서비스)’ 등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일 때마다 각국 정부로부터 승인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랩의 2018년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랩의 성장 곡선을 보면 2017년은 성장을 위한 밑바탕을 다졌다는 점에서 매우 결정적인 한 해였습니다. 모바일 결제 서비스와 기술력을 강화하기 위해 각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인재를 영입했고 R&D센터 3개를 오픈했습니다. 모바일 결제 서비스 사업을 위해 두 개의 주요 전자 상거래 업체를 인수하기도 했고요. 또 서비스 지역 또한 약 40개에서 225개 도시로 확대할 수 있었고요. 2018년은 아마도 ‘실행력’과 ‘시장 확대’에 집중하는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의 그랩은 그저 단순한 승차 공유 서비스가 아닙니다. 동남아 지역에서 꼭 필요한 일상생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온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랩 플랫폼’의 도입이 아마 우리가 꿈꾸는 다음 발걸음을 만들어 나가는 데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겁니다. 6억4000만 동남아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파트너사들의 도움이 필요하니까요.”
-한국의 승차 공유 스타트업들에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각각의 시장에 따라 포지셔닝을 잘해야 합니다. 고객들의 목소리와 시장의 변화를 반영하는 데 민첩해야겠죠. 지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 시장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시장 참여자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기반을 쌓아 나가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고객들과 그 지역공동체에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지역 밀착형(하이퍼 로컬)’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아 나갈 수 있으니까요. 바로 이것이 회사의 성장을 도모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될 겁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8호(2018.09.03 ~ 2018.09.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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