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은행 중 가장 ‘세련된 서비스’로 각광…철저한 현지화로 고객 27만 명 달성 [자카르타(인도네시아) = 공인호 머니 기자] KEB하나은행이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바탕으로 인도네시아 내 최우수 외국계 은행에 올라섰다. 이달 중에는 인도네시아판 로보어드바이저 론칭을 앞두는 등 핀테크 전도사로서의 역할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9월 폐막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아시안게임이 열린 보름여의 기간 동안 국내 금융권에서 이목을 끈 금융 서비스가 있다. 바로 인도네시아 전용 글로벌 쿠폰몰이다. GLN(Global Loyalty Network)으로 이름 지어진 이 서비스는 KEB하나은행이 일본은 물론 태국·베트남 등 동남아 주요국과 연계해 현지 여행객들에게 다양한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특히 인도네시아 에디션은 현지 식당 예약 1위 애플리케이션(앱)인 큐레이브드, 자카르타 롯데면세점, 인도네시아 롯데리아 등과 제휴해 다양한 할인 쿠폰을 제공했다. GLN은 ‘글로벌 통합 디지털 플랫폼’을 염두에 두고 추진되는 글로벌 사업이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밑바탕이 됐고 국내 금융사의 해외 진출 혁신 사례이자 대표적인 글로벌 핀테크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 남부에 들어선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에 들어서면 깔끔하게 정돈된 은행 영업점과 함께 바로 옆 ‘하나 라운지’가 고객을 맞이한다. KEB하나은행이 국내에서도 선보인 카페형 영업점으로, 고객들과의 상담은 물론 직원들도 삼삼오오 모여 회의를 진행하는 곳이다.
◆KEB하나은행 글로벌 공략의 교두보로
이화수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장은 “하나 라운지에는 아무 커피 브랜드나 들어오는 곳이 아니다”며 “스타벅스와 같은 초대형 프렌차이즈보다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이 사랑하고 즐겨 찾는 브랜드를 엄선해 제휴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본점 영업점은 1층과 2층 사이에 ‘메자닌 플로어’라고 불리는 1.5층이 자리한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주로 기업 고객과 고액 자산가들을 위한 프라이빗 뱅커(PB)들이 메자닌 플로어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특히 2층에 자리한 고객 전용 엘리베이터는 KEB하나은행의 고객 우선 정책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은행 측은 건물 착공 단계에서부터 회의실과 은행장실이 마련된 고층(9~12층)까지 연결하는 엘리베이터를 별도로 주문했다.
각종 회의실의 독특한 콘셉트도 눈길을 끈다. 2층 회의실에는 주로 세계적인 강의 이름을 본뜬 ‘한’, ‘나일’, ‘미시시피’ 등이 들어서 있다, 11층에는 은행장실과 함께 몽블랑·킬리만자로·K2·에베레스트 등으로 명명된 회의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 본점 영업점에는 전체 직원 1200여 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600여 명이 근무하고 있고 본국에서 파견된 인원은 단 10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현지 토종 은행과 다를 바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현재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는 60여 개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쇼핑몰 등에 자리한 2곳은 탄력근무제를 적용해 주말 영업도 하고 있다. 또 인도네시아 전역에 걸쳐 210여 개에 달하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보유하고 있고 스마트존·컨테이너 뱅킹도 각각 5개씩 운영 중이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컨테이너 뱅킹은 부족한 영업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찾아가는 뱅킹 서비스’다. 컨테이너 안에 ATM 및 전산 장비를 구비해 한 달 정도 현지 기업 인근에서 뱅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다.
KEB하나은행이 인도네시아 시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하루가 멀다고 다시 그려지는 스카이라인에서 가늠해 볼 수 있다. 특히 자카르타 남부 지역에는 KEB하나은행을 비롯해 글로벌 기업들이 새롭게 마련된 고층 건물에 속속 둥지를 틀며 화려한 외관을 뽐내고 있다. KEB하나은행도 전체 해외 네트워크인 180여 개(24개국)의 3분의 1 정도를 집중할 정도로 인도네시아는 글로벌 사업의 전략적 요충지다. ◆외국계 1위 넘어 ‘톱20’ 목표
국내 은행 가운데서는 우리은행(우리소다라은행)과 신한은행(신한은행인도네시아) 등도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있지만 현지 시장의 선봉장 역할을 해온 KEB하나은행의 입지가 단연 돋보인다. 현재 인도네시아 인구는 2억6000만 명으로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이지만 이 중 절반 가까이는 은행 계좌가 없는 것으로 추산된다.
상대적으로 성숙도가 낮은 금융시장은 조기 안착 여부가 곧 시장 지배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KEB하나은행의 발 빠른 인도네시아 진출이 최대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앞서 옛 하나은행은 2007년 현지 은행인 빈탕 마능갈은행을 인수한 뒤 2014년 옛 외환은행 현지법인까지 합병해 30위권 은행으로 급성장했다.
현재 인도네시아에는 국내 시중은행 격인 상업은행이 120여 개에 달한다. 여기에 지방은행까지 포함하면 17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금융사들이 난립해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 금융 당국은 외국계 은행이 들어올 때 현지 은행 인수를 필수 조건으로 두고 있지만 중소 은행들의 잠재 부실 때문에 후발 주자들이 선뜻 나서기 힘들다는 전언이다.
그렇다고 조기 진출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국내 금융시장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은행들 역시 동남아 시장에 일찌감치 진출했지만 결국 현지화에 실패해 해당 법인을 매각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의 성공 요인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꼽힌다. 거의 100%에 가까운 현지인 인력 비율뿐만 아니라 9월 말 기준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의 현지인 고객 수는 전체의 90%에 이를 정도다.
성장 속도 역시 눈부시다. 합병 시점인 2014년 7만7000여 명에 불과했던 전체 고객 수는 올해 3월 말 4배 수준인 27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당기순이익도 7390억 루피아(551억2940만원)로 2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는 국내 핀테크 기술을 이전해 생체 인식과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뱅킹 분야에서도 선도 은행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오는 10월 중에는 인도네시아판 로보어드바이저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 같은 다양한 노력과 성과에 힘입어 인도네시아 법인은 올해 현지 금융 전문지인 ‘인베스터’가 뽑은 최우수 은행 및 중대형 은행그룹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는 현지 상업은행(BOOK1~4) 120여 개 가운데 중대형 은행인 ‘BOOK3’에 속해 있다.
이화수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장은 “2020년까지 자본금 기준 현재(27위)보다 10계단 가까이 오른 톱20 안착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인수·합병(M&A) 및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등을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며 조만간 결실을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하나금융은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외에도 그룹 계열사인 하나금융투자와 하나캐피탈 법인을 자카르타 현지에 두고 있고 지난해에는 정보기술 법인인 ‘PT. Next TI’를 설립하기도 했다. 현재 하나금융은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핵심 거점으로 인도·베트남·필리핀 등 5곳을 거점화해 아시아 금융 벨트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ball@hankyung.com
[인터뷰 이화수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장]
“인도네시아 현지의 산업 발전 공헌에 자부심…M&A 등 성장 위한 승부수 고민 중”
1200여 명의 인도네시아 현지 직원들을 이끌고 있는 이화수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장. 지난 9월 자카르타 남부에 자리 잡은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본점에서 만난 이 법인장은 때마침 외부 행사로 현지 전통 의상인 인도네시아 바틱(Indonesian Batik)을 차려입고 기자를 맞았다. “현지 직원 및 고객들과 격의 없이 지내려고 바틱을 즐겨 입다 보니 일상복처럼 편해졌다”는 그를 만나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의 성공 요인을 직접 들어봤다.
-인도네시아에 오랫동안 근무하고 있습니다. 법인장으로 있으면서 아쉬운 점은 없나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금융 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입니다. 사실 금융인들도 수출 역군입니다. 초창기에 가발과 섬유를 수출했고 이후에는 화학·자동차·반도체·휴대전화로 넘어왔는데 최종 단계가 금융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수출 산업이 부가가치가 높은 선진국형으로 도약하는 시기인 셈입니다. 특히 우리 법인은 한국계 금융사 가운데 2년 연속 가장 많은 수익을 냈습니다. 환산해 보면 한 해 중형차 20만 대를 수출한 효과와 맞먹습니다. 우리 법인 직원 1200여 명 가운데 단 10명만 한국 직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인당 생산성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지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로 주목받고 있는데 부담도 크실 것 같네요.
“얼마 안 되는 직원들끼리 가족과 멀리 타국에서 근무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도 벌어지고 특히 문화적 이질성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도네시아 특유의 국민성과 문화적 차이로 혼란스러웠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난해 올린 순이익의 78%가 현지 고객들로부터 나왔는데 직원들이 혼연일체가 돼 노력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우리의 성공 요인은 무엇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금융인이자 수출 역군이라는 자부심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룹(하나금융) 측은 2025년까지 해외 수익 비율을 40%로 제시했습니다. 가능할까요.
“물론 40%가 적은 수치는 아닙니다. 인도네시아 법인으로서는 해외 수익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 부담이 더욱 크고 그만큼 사명감도 강합니다. 우리가 세운 목표는 2020년까지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톱20’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불과 2년여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뾰족한 수가 필요합니다. 소형에서 중형은행으로 올라서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대형 은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승부수가 필요합니다. 같은 배경에서 인수·합병(M&A)을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조만간 결실을 볼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와 관련해 협상을 진행 중인 곳이 있나요.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얘기도 있던데요.
“현재 인도네시아 금융 당국은 은행 간 M&A를 적극 장려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산 부채 이전(P&A) 방식은 상대 은행이 완전히 망가졌을 때 가능합니다.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금융사는 P&A 방식으로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현재로서는 어떤 방식이 될지 단정하기 힘들지만 조만간 구체적인 성과물이 나올 것으로 봅니다. 이와 별도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이커머스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계획은 아직 공표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여러 방안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일단 그룹이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주고 있어 20위권 달성 목표가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추가 개점 계획은 있나요. 영업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요.
“매년 5곳 정도 추가 개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60여 개 네트워크로는 현지 로컬 은행과 경쟁하기 힘듭니다. 최소한 100개 정도까지는 늘려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당장 보완책으로 컨테이너 뱅킹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주로 활용되는 이동 점포라고 보면 됩니다. 종업원 계좌 개설이나 급여 이체, 카드 발급 등의 서비스가 필요한 회사 인근에 직접 컨테이너가 이동해 보름에서 한 달 정도 직원들이 상주하게 됩니다. 컨테이너에는 ATM은 물론 에어컨 시설까지 완비하고 있어 고객 이용에 불편이 거의 없습니다. 이와 별도로 주말 점포도 운영 중인데 이곳 직원들은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8시간씩 2교대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KEB하나은행의 성공 요인을 소개해 주세요.
“철저한 현지화입니다. 우리 법인은 본국 직원과 현지 직원의 권한과 위상에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특히 직원 복지만큼은 업계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자카르타는 지하철이 없고 버스 노선도 완벽하게 정비돼 있지 않아 장마철 오토바이 사고가 빈번합니다. 이 때문에 현지 기업 최초로 출퇴근 버스를 운영하게 됐는데 직원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습니다. 직원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인근 헬스클럽 비용도 절반을 부담하고 야간 MBA에 등록하면 등록금의 70%까지 지원해 줍니다. 해외 유학은 생활비까지 전액 회사 측이 부담합니다. 조직 문화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KEB하나은행의 주인은 나’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은행의 비전·미션·타깃·기업 문화를 담은 포스터를 만들어 주인정신을 북돋워 주고 있습니다.”
-서비스 측면에서의 강점도 있을 것 같은데.
“‘속도(Speed)·편의(Convenience)·스마트뱅킹(Smartbanking)’이 우리 서비스의 주축입니다. 특히 스마트뱅킹은 모바일로 기업금융까지 가능하도록 구현했습니다. 고객 편의를 위한 특별한 서비스도 있습니다. 전 지점에서 와이파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스타벅스 등 일부 커피숍 브랜드를 제외하고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합니다. 빠른 서비스는 심사 전결권이 본부와 독립돼 있어 가능합니다. 단적인 사례로 합병 전 옛 외환은행은 매년 5~10% 성장에 머물렀는데 옛 하나은행은 60~70%에 가까운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외환은행은 대출 승인을 받으려면 본국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그만큼 느리고 번거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하나은행은 현지에서 모든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마무리됩니다. 현지법인을 인수해 기존 룰을 그대로 적용해 온 것이 결국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화수 법인장은…
1991년 1월 입행. 2002년 미시간대 MBA. 1999년 하나은행 인터넷뱅킹 팀장. 2003년 경영컨설팅팀 팀장. 2005년 하나은행 임원부속실장. 2009년 하나은행 강남기업금융센터 지점장. 2012년 인도네시아 하나외환은행 부행장. 2016년 KEB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장(현).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3호(2018.10.08 ~ 2018.10.14) 기사입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