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저렴한 비용과 빠른 전송속도 가능케 해…‘탈중앙화 이념’ 맞느냐 논란

[오태민 크립토비트코인연구소장, ‘스마트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구글 엔지니어 출신이자 라이트코인(LTC) 창시자인 찰리 리와 비트코인캐시(BCH)의 대변인 격인 로저 버 비트코인닷컴 대표가 라이트닝 네트워크(Lighting Network)의 성공 여부를 놓고 공개적으로 내기를 걸었다. 2020년 3월 9일까지 앞으로 18개월 동안 라이트닝 네트워크의 사업자가 1000명을 넘어서면 찰리 리 창시자의 승리, 그렇지 않으면 로저 버 대표의 승리다. 내기에서 진 사람은 상대방 코인의 유니폼을 입고 자신이 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동영상을 제작하기로 했다.

비트코인의 비싼 수수료 때문에 ‘비트코인으로는 커피 한 잔 사먹을 수 없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로 2017년 말과 같이 암호화폐 열풍이 불어 거래량 자체가 넘칠 때 비트코인에서는 1달러를 보내기 위해 5달러를 써야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블록체인 밖에서 거래를 기록한다. 이론적으로는 수수료 제로가 가능하다.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비트코인의 블록을 확장하지 않고 수수료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채굴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높은 분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솔루션으로 제안됐다. 하지만 이에 승복하지 않고 블록의 용량을 늘려 문제를 해결하자는 버 대표와 같은 비트코이너들이 비트코인캐시라는 깃발 아래 따로 살림을 차렸다.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여러모로 은행을 닮았다. 중세시대 기사들은 군자금으로 쓸 금괴를 고향의 은행에 맡기고 원정을 나간 현지에서 금괴를 인출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기사들은 먼 거리까지 싸우러 나가는 게 가능했다. 이것이 현대 은행의 모델이라고 한다.

은행은 ‘건물이나 금고’가 아니라 은행들 간의 ‘신뢰 네트워크’가 핵심이다. 실제로 은행들은 서로간의 채무와 채권을 바로바로 정산하지 않는다. 그래서 금을 멀리까지 직접 보내는 수고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은행과 정부가 대중으로 하여금 서로간의 불신 상태를 극복하고 협력하도록 할 수 있는 이유는 대중이 엘리트들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창기 비트코인에 열광했던 이들은 이 교리를 거부한다. 엘리트들은 결국에 대중의 신뢰를 남용한다는 것이 이들이 말하는 인류의 경험칙이다.

이와 같이 은행을 닮은 라이트닝 네트워크를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들은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결국 신뢰의 구심점을 창출해 무신뢰 기반 신뢰 시스템의 철학을 오염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암호화폐 두 거물이 내기 건 ‘라이트닝 네트워크’
(사진)라이트코인 창시자인 찰리 리(위)와 비트코인캐시의 대변인 격인 로저 버(아래).

대안으로 거론되는 ‘잠수함 스와프’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자신과 직접 오프체인 장부가 없는 사람과도 거래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여러 사람과 각각 오프체인 장부를 유지해야 가능하다. 장부가 많을수록 특정인에게 도달하기 위해 건너는 단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프체인 장부를 유지하려면 자기 마음대로 빼 쓸 수 없는 담보금을 묶어 놓은 공동 계좌를 터야 한다. 즉 여러 참여자와 각각 공동 계좌를 유지하려면 일단 비트코인이 많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빈부의 격차가 존재하며 성실하게 잔액을 유지하지 못하는 참여자들 때문에 라이트닝 네트워크를 이용하고자 하는 실사용자들의 재정 부담이 더욱 증가한다. 결국 여러 사용자들과 공동 계좌를 만든 재력가들이 신뢰망의 구심점으로 부각해야만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다.

‘비트코인, 블록체인과 금융혁신’의 저자 안드레아스 안토노풀로스는 라이트닝 네트워크에 대한 오해들을 반박하는 유튜브를 만들었다. 비관적인 상상이 익숙한 관념에서 파생된 오류라는 것이다.

라이트닝 네트워크에서 많은 사람들과 공동 계좌를 유지하는 신뢰의 구심점들과 은행은 다르다. 공동 계좌 하나하나가 독립적이기 때문에 해커가 노릴 만한 큰 금액이 모여 있지도 않다. 또 라이트닝 네트워크에서의 거래는 모두 무신뢰 기반이다. 아무리 자금이 풍부하다고 하더라도 그가 라이트닝 네트워크에서 나와 공동 계좌를 유지하려면 나와 동일한 금액으로 함께 묶여야 한다. 시간 잠금이나 비밀 키 공유와 같은 기술로 상대의 배반을 응징할 수 있으니 상대의 인격을 믿을 필요가 없다. 은행이 일방적으로 자신을 믿으라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은행 고객이 자기 정보를 은행에 제출하더라도 은행의 비밀 장부를 열람하는 일은 없지 않은가.

오히려 라이트닝 네트워크에서 신뢰의 거점이 되는 미들맨들을 활용하면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도약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 대표적인 제안이 잠수함 스와프(submarine swap)다. 잠수함은 비트코인과 라이트닝 네트워크에 모두 계좌를 가지고 약간의 수수료를 받으며 미들맨을 하겠다는 이들을 가리킨다.

잠수함을 통해 라이트닝 네트워크에서 공동 계좌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용자도 라이트닝 네트워크를 이용해 돈을 보낼 수 있다. 그 역도 성립한다.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의뢰인의 지시 사항을 잠수함이 수행해야만 자신에게 입금된 비트코인의 비밀 키를 얻을 수 있도록 디자인돼 있다. 이 때문에 의뢰인은 잠수함의 신원을 확보하거나 이들이 신뢰할 만한 품성을 갖췄는지 고려하지 않는다.

이것이 다는 아니다. 이더리움을 잠수함에 실어 보내고 비트코인으로 수신하게 할 수도 있다. 즉 잠수함이 비트코인의 라이트닝 네트워크에 계좌를 유지하기만 하면 잠수함에 어떤 코인을 보내도 수령자는 비트코인으로 받는다.

다만 잠수함은 적절성을 판단하지 않는다. 지불자와 수령자가 사전에 합의한 코인 간 교환 비율에 따라 만들어진 스마트 콘트랙트를 이행할 뿐이다. 판단하지 않지만 이행하는 심판이다.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하지만 잠수함 스와프 같은 실험은 미들맨의 존재 방식에 대해 인문학적 논쟁도 촉발할 것이다. 코인 간 거래를 중재하는 분산 거래 지갑으로까지 잠수함 스와프가 발전된다면 ‘중재자는 믿기 어렵다’는 명제는 오류로 판명 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명제가 새롭게 대두될 것이다.

‘믿어야만 하는 중재자는 믿기 어렵지만 믿지 않아도 되는 중재자는 믿을 수 있다.’


[돋보기] 라이트닝 네트워크의 기본 개념
갑수와 영희가 빈번하게 거래하는 사이라면 구멍가게에서 쓸 만한 장부에 거래를 기록하다가 일정한 시점에 정산 금액만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게 이익이다. 변경할 수 없는 블록체인에 기록하면 온체인(on-chain)이라고 하고 블록체인 밖에서 기록하면 오프체인(off-chain)이라고 한다. 오프체인 방식으로 이뤄지는 거래는 채굴에 참여하는 컴퓨터들에 부담을 주지 않아 채굴자들에게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는다.

갑수와 첼시 사이에는 오프체인 장부가 없지만 영희와 첼시가 공동 계좌가 있다면 갑수는 영희와의 관계를 이용해 첼시에게 비트코인을 주거나 받을 수 있다. 비트코인의 다중 키(multi-signature) 주소와 시간 잠금장치를 활용하므로 중간에 있는 영희를 믿지 않아도 된다. 2of2 다중 키 주소는 둘 모두의 동의가 있을 때에만 비트코인을 인출할 수 있다. 둘의 공동 계좌를 다중 키 주소로 만들어 비트코인을 저장한다. 둘 사이의 합의에 의해 오프체인 장부를 계속 갱신하다가 다중 키를 이용해 온체인한다. 둘 사이에 합의된 거래들은 모두 시간 잠금이라는 조건 값에 묶이고 최신 거래일수록 시간 잠금이 빨리 풀리게 설계된다. 한 사람이 최신 거래를 누락하고 일방적으로 이전의 장부를 온체인하면 그는 최신 거래보다 더 오랫동안 시간에 묶이고 상대에게 응징 당한다. ‘상대의 선의를 믿지 않을 때에야 상대가 선량하게 행동한다’는 금언(金言)에 따라 블록체인 신뢰 프로세스의 핵심은 불신과 응징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7호(2018.11.05 ~ 2018.11.1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