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한국 증시 급락은 ‘약세장 초반’ 전형적 현상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시장 전반의 큰 흐름을 읽어내는 데 탁월한 강점을 갖추고 있다. 요즘과 같은 변동성 장세일수록 이코노미스트의 냉철한 분석은 더욱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미·중 무역 분쟁, 금리 인상 등 도처에 변수가 널려 있는 경제 재편기에 투자자들은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 “글로벌 경기 이미 고점 지났다”
지난 10월 한국 증시는 큰 홍역을 치렀다. 코스피지수가 2000 아래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11월 초엔 아슬아슬하게 2000선을 유지 중이다. 추락은 멈춘 듯하지만 시장을 짓누르는 긴장감은 여전하다. 글로벌 증시 하락장 속에서도 유독 한국 증시의 낙폭이 커 ‘한국 경제 위기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IBK투자증권은 증권가에서도 대표적인 ‘베어(bear) 하우스’로 통한다. 지난 4월 새롭게 리서치본부를 책임지게 된 정 본부장은 경기의 흐름에 대해선 최대한 객관적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소신이다.
정 본부장은 “글로벌 경기가 정점을 찍고 둔화되고 있는 것은 맞다”며 “사실상 미국만 변곡점에서 버티는 중이고 특히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대부분의 경기는 이미 고점을 지났다”고 분석했다.
6~9개월 뒤 경기 흐름을 예측하는 지표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기선행지수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중 한국과 중국 등 일부 국가는 2017년에 이미 고점을 형성한 뒤 꾸준히 하락해 기준점(100)을 큰 폭으로 밑돌고 있다.
현재 글로벌 경기를 지탱하고 있는 미국 또한 OECD 경기선행지수상으로 상대적으로 늦게 고점을 형성하며 아직 기준점 주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미 곳곳에서 경기 둔화 시그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장단기 금리 차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장단기 금리 차는 미국 경기선행지수의 구성 항목일 뿐만 아니라 미국 중앙은행(Fed)이 향후 미국 경기의 침체 확률을 구하는 지표로도 활용된다. 미국의 장단기 금리 차(10년물-2년물)는 지난해 말 52bp(1bp=0.01%포인트)에서 지난 8월 19bp까지 축소됐다.
정 본부장은 “앞으로 기준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지만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장기금리를 얼마나 올릴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에 장단기 금리 차는 하향 추세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증시가 최근 상대적으로 더 크게 하락한 것에 대해서도 이와 관련해 설명했다. 글로벌 증시가 약세장에 진입할 때 보이는 전형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정 본부장은 “대개 약세장 초반에는 유동성이 풍부한 한국에서 외국인 매도세가 더 강해지는 특성이 보인다”며 “오히려 약세장 중후반으로 가면 한국 증시의 성과는 상대적으로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기 사이클이 둔화에 진입했고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유동성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산 가격이 전반적으로 조정에 들어가면서 약세장에 진입했다는 분석이다.
이 가운데 심화되는 미·중 무역 갈등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리스크를 한층 높이는 요소가 되고 있다. 정 본부장은 “미·중 무역 갈등의 본질적인 고민은 미국이 기축통화국이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종의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다. 기축통화국의 국제수지가 흑자가 되면 다른 나라들의 통화 공급이 막히게 되고 전 세계는 글로벌 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높다. 반대로 기축통화국의 국제수지가 적자가 되면 국제통화로서의 신뢰도를 해칠 수 있다.
정 본부장은 “미국의 의도대로 중국과 합의가 이뤄지고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축소된다면 이는 글로벌 교역 및 성장률이 위축되는 쪽으로 움직일 확률이 높다”며 “결국 가장 중요하게 지켜봐야 할 것은 ‘달러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라고 설명했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와 감세 정책은 그만의 정책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1970년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등 공화당이 강력한 힘을 지녔던 당시와 비슷한 흐름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정 본부장은 “감세와 같은 재정지출 확대 조치는 단기간만 효과를 보일 뿐 보호무역 조치 시행 이후 오히려 무역수지가 악화되는 흐름을 보인 경우가 많았다”며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보호무역 조치로 인해 의도하지 않게 유도된 ‘달러 강세의 흐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결국은 ‘달러 강세’가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이고 있는 보호무역주의를 무력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 나타나는 경기 흐름으로 보면 예전과 달리 사이클이 사라지고 있다. 따라서 경기가 고점을 지나더라도 완만한 하강 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경기 사이클이 없어지는 데 비해 자산 가격의 변동성이 더 커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경기가 아주 조금만 나빠지더라도 자산 가격은 더 크게 출렁거릴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정 본부장은 “글로벌 유동성이 자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력이 예전에 비해 훨씬 커졌다”며 “글로벌 유동성의 출발점은 결국 달러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미·중 ‘새 합의’ 이후 자산시장 버블 가능성도
같은 맥락에서 정 본부장은 결국은 트럼프 대통령 역시 과거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달러 가치의 인위적인 조정에 나설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닉슨 전 대통령 역시 고정환율제를 변동환율제로 바꾸며 달러 가치를 절하했고 레이건 전 대통령은 그 유명한 ‘플라자 합의’를 통해 환율 문제로 인한 부담을 일본에 넘겨 버렸다.
정 본부장은 “결국은 중국의 위안화를 강세로 만들고 달러를 약세로 전환하기 위한 ‘새로운 플라자 합의’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그 시기를 2020년쯤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중국은 왜 이런 새로운 합의에 응할 수밖에 없을까. 정 본부장은 ‘중국의 위기론’을 그 이유로 들었다. 뻔히 보이는 위험이지만 이를 간과해 위험성을 더 키우는 것을 흔히 ‘회색 코뿔소’에 비유한다. 정 본부장은 지금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중국의 ‘신용 리스크(크레디트 리스크)’가 바로 이 회색 코뿔소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부채가 201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256%에서 2022년 290%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본부장은 “중국 시장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들 대부분은 중국의 외화 유동성이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있지만 현재 지켜본 바로는 중국의 외화 유동성이 얼마나 넉넉한지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는 중국의 외화보유액이 감소 추세에 있기는 하지만 당장 위기로 연결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다만 감소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Fed가 금리를 지속적으로 인상한다면 위안화는 지금보다 훨씬 절하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 본부장은 “지금으로선 ‘새로운 합의’가 만들어질 때까지 불안한 시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지금처럼 대외변수에 출렁이는 장세에는 ‘지키는 투자’가 좋은 전략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달러 강세 국면에서는 원자재나 신흥국에 대한 투자는 되도록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달러·금·채권과 같은 안전 자산에 대한 투자심리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 ‘새로운 합의’를 기점으로 자산시장 또한 전환점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정 본부장은 “1980년대 플라자 합의 이후 한국은 이른바 ‘3저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며 “직접적인 환율 조정국들에 가려져 있던 후발 주자들이 큰 호황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다만 펀더멘털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버블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 또한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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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8호(2018.11.12 ~ 2018.11.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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