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세계가 놀란 개성회계의 비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개성상인의 ‘합리적 사고와 정직한 경제활동’
현대의 전문가도 깜짝 놀란 ‘고려시대 재무제표’
[한경비즈니스=노민정 한경BP 출판편집자] 그동안 ‘회계’는 베네치아의 상인이 사용하는 장부 기록 방식으로 상징돼 서양의 지식으로만 여겨져 왔다.

그런데 실은 고려 개성상인의 복식부기가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개성상인들은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복식부기 장부를 사용했고 장부 속에 합리적인 사고와 정직한 경제활동을 고스란히 담았다.

‘세계가 놀란 개성회계의 비밀’은 개성상인들의 복식부기, 즉 ‘사개송도치부법’을 스토리텔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고 그들의 철학과 윤리 그리고 상도와 상술에 대해서도 소상히 이야기하고 있다.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섰던 지혜

개성상인들은 오늘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소프트파워 3가지를 유산으로 남겨줬다. 하나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보다 200년이나 앞선 과학적이고 선진적인 최초의 복식부기 ‘사개송도치부법’이다.

또 하나는 최근 인터넷상의 위조와 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망처럼 은행을 방문하지 않고도 회계장부의 계정 처리만으로 금융거래를 수행하는 ‘시변제도’이며 나머지 하나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천한 전문경영인 제도인 ‘차인제도’다.

사개송도치부법에서 사개는 한자로 ‘넉 사(四)’에 ‘낄 개(介)’자를 쓴다. 복식부기의 대변과 차변에 해당하는 계정을 음양사상에 입각해 ‘주는 자, 받는 자, 주는 것, 받는 것’ 이렇게 4가지 요소로 나눠 기록한 것을 말한다.

개성상인들은 대표적 재무제표인 재무상태표를 ‘받자질(捧次秩)’과 ‘주자질(給次秩)’로 양분해 대조했다. 자산 계정의 위치에 받는 자와 받는 것, 즉 받자질을 놓고 부채와 자본 계정에 주는 자와 주는 것, 즉 주자질을 배치해 자본을 부채로 인식한 것이다. 오늘날 서양의 재무상태표가 받을 권리 계정(receivable a/c)과 갚을 책임 계정(payable a/s)으로 단순히 양분하는 형태로 돼 있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시변제도는 회계와 신용을 연결한 제도로, 은행을 설립하지 않고 회계장부상에 가상의 은행 계정을 설정하고 처리하는 것만으로 신용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즉, 시변제도는 신용만 확실하다면 아무것도 보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개성상인만의 고유한 금융제도였다.

차인제도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특징으로, 개성상인들은 자신의 가게에서 10년 이상 잘 양성된 점원이 믿음직스럽게 성장하면 그 점원을 차인으로 등용했다. 그리고 차인에게 무담보로 자금을 대여하고 스스로 상업 활동을 하도록 했다. 이때 주인은 차인의 경영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고 이윤이 생기면 공평하게 나눴으며 훗날 차인이 점점 큰 자본을 조성하게 되면 차인을 완전히 독립시켜 줬다.

남다른 상술과 철학을 가지고 자본을 축적하며 오랜 세월 상인 집단으로 활약해 온 개성상인들의 이 세 제도는 유목민족이 도시에 정주해 이룩한 문명이다. 개성상인들은 개성에 정주하면서 원격지 무역을 수행하는 차인들을 회계장부와 금융으로 연결해 회계 금융 네트워크를 개발했다.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며 세계사의 중심에 우뚝 서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정직한 회계를 바탕으로 성숙한 자본주의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의 모델은 천 년 전 이 땅을 살다 간 개성상인들이다. 그들은 후손에게 다른 나라 국민이 한국을 존경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지적 유산을 남겨 줬다.

우리 선조의 놀라운 회계 기술 및 독창성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정교하게 다듬어지면서 일제강점기에도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개성상인들의 고유한 철학과 상도야말로 세계 어느 나라와 견줘도 손색이 없는 높은 수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서 현대인들이 반드시 본받고 따라야 할 길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8호(2018.11.12 ~ 2018.11.1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