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정치인이 쓰는 ‘최후의 수단’…성공 여부는 국민적 공감대와 수용 가능성에서 갈려


[김형호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요즘 여의도 정치권의 관심사는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군소 야3당의 단식 농성의 성공 여부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12월 7일부터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원내 1, 2당을 상대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조건 수용하라’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청와대 항의 방문 등에 주력하던 민주평화당은 단식 농성에 이목이 쏠리자 뒤늦게 의원들의 릴레이 단식 방식으로 농성에 합류했다.

단식 농성의 ‘스포트라이트’는 손 대표에게 쏠리는 모습이다. 우리 나이로 72세인 고령인 점과 과거 민주당과 한국당을 오가며 쌓은 인연 때문인지 유독 손 대표의 건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바로 옆자리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는 이 대표는 손 대표보다 열아홉 살 아래다. 민주당에서도 “어떻게든 손 대표의 단식을 풀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크다. 한국당도 “손 대표의 단식을 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나온다.

그렇다면 손 대표를 포함한 야3당의 단식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성공 여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해 당사자인 3당과 외부의 시각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국회 농성장에서 12월 13일 만난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은 “손학규 대표의 단식이 사태를 풀어낼 것이다. 저 나이의 대표가 오랜 기간 단식하도록 방치할 수 있겠느냐”며 기대를 걸었다. 천 의원은 과거 열린우리당 의원 시절이던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졸속 타결에 반대해 25일간 단식 농성을 벌인 적이 있다. 단식으로 몸이 크게 상했던 터라 이후 주변에 “단식하면 몸이 망가질 것”이라고 만류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번에 단식에 동참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저는 안 하죠”라고 답했다.

같은 당 박지원 의원의 표현은 보다 직설적이다. “손 대표는 쇼를 해도 독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춘천에서 칩거도 하고 강진 토굴에서도 살았다. 그런데 그때는 ‘손학규 징크스’ 때문에 별로 주목받지 못했는데 이번에 기회를 제대로 잡았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권 인사는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은 과거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왕적 총재를 맡고 있을 때도 쉽지 않았는데 소수 야당 대표들의 단식 정도로 바꾸겠느냐. 결국 소득 없이 병원으로 실려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활용

곡기를 끊는 단식은 정치인이 사용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last resort)’이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 야당 대표였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단식을 통해 정치적 목표를 상당 부분 관철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민당 총재 시절인 1990년 정치 사찰 중단과 지방자치제 전면 시행 등을 요구하며 13일 동안 단식을 벌였다. 이후 정치권은 기초 및 광역 지방의회를 구성하고 기초 및 광역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시행하는 데 합의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3년 전두환 정권에 맞서 23일이나 곡기를 끊는 단식투쟁 끝에 가택연금 해제를 이끌어 냈다. 이는 민주화 투쟁의 기폭제가 되면서 직선제 개헌의 발판이 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정치인들의 농성은 적지 않았다. 2016년 9월 당시 여당 대표였던 이정현 의원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 통과에 항의해 단식에 벌인 것은 집권 여당 대표 최초의 단식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에서 여러 뒷말을 낳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단식에 참여한 적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시절이던 2014년 8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중인 ‘유민 아빠’ 김영오 씨의 단식을 막기 위한 동조 단식을 10일간 벌였다. 김 씨가 8월 28일 46일간의 단식을 중단하자 함께 농성을 철회했다. 가장 최근에는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5월 국회에서 천막을 치고 단식투쟁에 나섰다. 김 전 원내대표는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9일간 단식 시위를 벌인 끝에 특검 요구를 관철시켰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성공 가능성 ‘갸우뚱’

정치권에서는 단식투쟁의 성공 요인으로 메시지의 선명성과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협상 대상의 수용 가능성 등을 크게 꼽고 있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 야당 대표들의 단식이나 최근의 세월호특별법, 드루킹 특검 역시 이들 3가지 기준에 부합했던 덕분에 최소한의 결실을 볼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현재 소수 야당들이 요구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민적 공감대나 협상 대상의 수용 가능성 부문에서 회의적인 상황이다. 국회의원의 선출 방식을 변경하는 선거구제 개편은 여야 5당 가운데 단 한 개의 정당이라도 반대하면 국회 통과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역 국회의원들의 사활이 걸린 사안이다 보니 당 지도부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철저하게 여야 5당의 ‘컨센서스’를 기반으로 논의를 진행하지 않으면 최종 단계에서 결렬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민주당은 최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원칙으로 하는 선거구제 개편안을 1월까지 마련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자고 야3당을 설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야당들은 “한국당과 손잡고 예산안을 처리한 것처럼 민주당이 한국당을 설득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합의안을 만들어 오라”고 압박하고 있다. 우선 여야 4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기반으로 한 안을 만들어 한국당을 설득하자는 제안에도 요지부동이다. 손학규 대표는 “거대 2당이 합의안을 만들어 오기 전까지는 단식을 풀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다.

이 같은 반응에 민주당은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다. 정치개혁특위 소속 한 의원은 “솔직히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부정적인 민주당 내 의원들을 설득하기도 버거운 마당에 당 차원에서 반대 쪽인 한국당과 합의안을 먼저 만들어 오라는 얘기는 논의를 하지 말자는 얘기나 다름없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보였다.

한국당의 새 원내 사령탑에 친박근혜계와 잔류파의 지원을 받은 나경원 의원이 당선된 것도 새로운 변수다. 김성태 전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에는 동의한다”는 방침이었지만 나 신임 원내대표는 “의석수를 늘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국민의 반대 여론이 높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선거구제 개편은 권력 구도와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까지 말했다. 선거구제 개편보다 더 어려운 권력 구도 문제까지 거론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사실상 안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당 정개특위 간사인 정유섭 의원 역시 12월 12일 열린 회의에서 “개인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한국당 내 대구·경북 지역구 소속이 많은 친박계 의원들은 현재의 소선구제 유지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국당은 아직까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비롯한 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의원총회도 갖지 않은 만큼 사실상 ‘당론’은 없다는 게 공식 의견이다.

여의도 정가에선 이런 정치 환경과 구도를 고려할 때 야3당 대표들의 단식이 실제 선거구제 개편으로 이어질 것인지를 두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여야 5당 간 합의안을 도출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의석수를 늘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한 국민적 반대 여론을 돌파해 낼 정치적 동력 마련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예산국회에서 세비를 1.8% 인상한 문제를 두고도 청와대에 국민청원이 쏟아지고 있는 마당에 의석수를 지금보다 50~60명 늘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국민이 찬성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선거구제 개편은 대통령이나 여당이 ‘받겠다’고 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어서 단식 농성이 해법이 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chsa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3호(2018.12.17 ~ 2018.12.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