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화 논의로 ‘원조 비트코이너들’ 투매에 폭락…대중화 계기 되며 가격 상승 개시 [오태민 크립토비트코인연구소장, ‘스마트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2018년 한 해 동안 비트코인 가격은 80% 이상 떨어졌다. 비트코인의 10주년을 한 달 앞두고 불과 몇 주 사이에 비트코인당 3000달러나 가치가 증발했다. 비트코인 캐시의 내전으로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가격 하락 속도와 폭이 워낙 가팔라 비트코인 거품이 드디어 꺼지는 중이라는 보도가 줄을 잇는다. 횡재를 노리는 욕망이 철퇴를 맞는 중이고 정부와 지식인들의 경고를 무시한 때문이라는 훈계도 빠지지 않는다.
가격의 가파른 하락은 생태계의 불안을 가속화한다. 채굴자들이 전기라도 아끼려고 스위치를 끄기 시작했고 채굴 파워가 급격하게 줄어들자 난이도와의 균형이 깨졌다. 10분당 한 번씩 이뤄져야 할 컨펌이 한 시간 넘게 이뤄지지 않다가 순식간에 여러 차례 이뤄지기도 한다. 암호화폐 중에서 가장 안정적이던 비트코인의 상황이 이 정도이고 다른 코인이나 토큰들은 차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자들의 바람과 달리 가격의 급락이 이번에도 비트코인의 종말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비트코인은 폭등과 폭락을 거치면서 더욱 강건해지고 있다. 사실 어떤 자산도 오르기만 하거나 내리기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경제학자들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현실과의 괴리를 해결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번 일을 겪고 나면 암호화폐 세계에서 추앙 받았던 몇몇의 거인들이 자기만의 소왕국으로 퇴장할 것이다. 남보다 일찍 발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재력과 영향력을 손쉽게 얻은 이들의 지배력이 줄어들어야만 생태계는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내분의 계기 된 ‘비트라이선스 법안’
비트코인 생태계는 이런 과정을 몇 차례 겪었다. 2014년 하반기 비트코인은 심각한 내분에 휩싸였고 그 결과 가격이 폭락했다. 당시만 해도 투자자들이 많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가격 그래프는 지금보다 더 과격하게 꺾였다.
내분의 계기는 미국 뉴욕 주에서 발의한 비트라이선스 법안이었다. 비트코인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거래소나 취급자에게 자격증을 준다는 것이 법안의 취지였다. 하지만 비트코인 규제의 핵심인 자금 세탁을 방지하기 위해 거래소에 거래 보고 의무를 지우며 투자자가 맡긴 비트코인으로 금융을 파생시키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만 보면 가혹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비트코인 취급을 합법화하는 것이므로 비트코인이 주류화되는 데 결정적인 계기라는 의미를 부여할 만도 했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제도권과 손잡고 투명하게 운영된다는 생각 자체가 초창기 비트코이너들의 반골 성향을 자극했다.
이들은 유튜브에 다큐멘터리 동영상까지 올리며 규제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초창기 투자자들이라 재원도 넉넉했다. 항의의 표시로 비트코인을 몇 천 개씩 시장에 던져 가격을 끌어내리는 방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 비트코인은 끝났다고 외치며 수만 개의 비트코인을 주고 인도네시아의 섬과 캐나다의 호수를 사들이는 이들도 있었다. 비트코인 가격은 맥없이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고 폭락 전의 가격을 회복하는 데 2년이나 걸렸다.
이들과 반대편에 섰던 대표적인 인물들이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였다. 그들은 비트라이선스 법안이 비트코인 생태계 전체를 키워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들은 미국 증권거래감독위원회(SEC)에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를 신청해 변호사 비용을 퍼부어 공을 들이기도 했다. 비트코인은 주류 금융권과 만나야만 한다는 소신의 연장선에서 추진한 비즈니스였다.
과격한 이념을 추구하는 이들이 떠나자 비트코인은 좀 더 대중화될 수 있었다. 적어도 비트코인 내부에서만큼은 비트코인 주류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그 열매가 바로 2017년 4월 일본의 지급 결제 인정과 그해 7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비트코인 선물 시장 승인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비트코인 주류화에 대한 낙관론은 비트코인 커뮤니티를 넘어 월가에까지 전파됐다. 분열이라는 시련을 거치며 응축된 에너지가 터져 나온 것이 2017년의 상승장이다. 문제는 아직 준비가 덜된 한국에까지 그 힘이 밀어닥쳤다는 것이다. 정부는 물론 지식사회 전체가 우왕좌왕했다. 돌이켜 보면 아무 코인이나 사고 보는 열풍도 일종의 지적 공허의 발로였다.
이제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열풍이 잦아들었고 가격은 고꾸라졌다. 튤립 거품이 꺼진다는 주장을 반박할 근거가 도무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이것은 주류 사회와 정부가 지적인 대비를 할 수 있도록 허락된 시간으로 봐야 한다. 지적인 작업은 아무 가치도 없다고 여겨지던 비트코인이 3000달러가 넘어 거래되는 것이 진짜 뉴스인지 몇 주 만에 반 토막 날 수도 있는 투기판이 10년이나 지속된 것이 진짜 뉴스인지를 선택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번만큼은 특별하다’는 발상은 낙관론자들만의 무덤이 아니다. 비관론자도 이 주문에 걸리면 사실과 희망을 혼동하고 결국 자기만의 세계에 감금돼 버린다.
[돋보기] 주류 경제학의 미묘한 변화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가디언지의 기고문에서 비트코인은 복권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각국 정부는 범죄와 탈세, 자금 세탁 때문에 비트코인을 규제할 수밖에 없고 규제 때문에 비트코인이 익명성을 잃어버리면 매력이 사라지기 때문에 가격이 오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트코인이 완전히 가치를 잃어버리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100달러 정도에 수렴할 수 있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일로 10만 달러가 될 수도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오랜 기간 비트코인 가격이 0이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외쳐 왔다. 하지만 이제 그런 자신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비트코인의 10년 역사가 그들의 확신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경제학자들은 비트코인보다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이들의 비이성을 비난했다. 경제학이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는 과학에서 대중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요구하는 윤리학으로 변질된 지는 오래됐으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로고프 교수의 논리에는 자칫 간과하기 쉬운 비트코인 현상의 핵심이 담겨 있다. 생태계 자체의 강건성을 평가할 때 비트코인 가격이 100달러인지 10만 달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 가격이 제로가 아니고 앞으로도 제로가 될 가능성이 없다면 비트코인은 쓸모를 갖는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예언이 맞으려면 비트코인 가격은 제로여야만 한다. 비트코인 단가가 존재하기만 하면 옹호론자들이 주장해 온 핵심 기능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로고프 교수의 표현을 빌려 탈세나 자금 세탁이라는 나쁜 용도로 사용하는 데도 비트코인 단가는 상관없다. 무게마저 없으니 잔돈의 번거로움조차 없다. 즉 주류 경제학자들은 너무 이기기 어려운 논쟁을 시작했던 셈이다. 관찰을 거부하고 연역적 이론 틀만 고집한 때문에 이념적 색채를 진하게 띤 주장을 남발하고 말았다. 냉정한 심판자라면 지난 10년의 논쟁에서 비트코인이 주류 경제학자들을 가볍게 이겼다고 판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3호(2018.12.17 ~ 2018.12.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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