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삼성그룹에서 분리 후 무리한 투자 등으로 1000억원대 부채…배우 이영애 구원투수 될까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국내 첫 산부인과 전문 병원인 제일병원이 사실상 폐원 수순을 밟고 있다.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매각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배우 이영애 씨가 제일병원 인수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목이 쏠리고 있다.

◆눈덩이 부채에 매각 협상 난항
벼랑 끝 제일병원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서울 중구 묵정동에 있는 제일병원은 1963년 문을 연 국내 첫 산부인과 전문 병원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신생아의 2%가 제일병원에서 태어났을 정도로 분만 진료를 가장 많이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가 3~4세가 대부분 제일병원에서 태어났다. 영화배우 이영애·고현정 씨 등도 이곳에서 출산했다. 새해가 되면 전국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아기를 찍기 위해 사진기자들이 모여들던 곳이다.

제일병원 창업자는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조카인 고 이동희 이사장이다. 1996년 이 이사장이 폐암으로 사망할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제일병원을 맡아줄 것을 간곡히 청한다”는 유언을 남기면서 이 이사장의 사촌 동생인 이 회장이 경영을 맡았다.

제일병원은 이후 2005년 삼성그룹 계열 병원에서 분리됐고 이 이사장의 장남인 이재곤 이사장이 병원 운영을 맡았다. 이름도 삼성제일병원에서 제일병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삼성의 그늘은 컸다. 제일병원은 삼성그룹에서 독립한 직후부터 경영난에 시달려야 했다. 경영난 속에서 이뤄진 무리한 투자도 화근이었다.

제일병원 경영진은 독립 이후 낙후된 병원 건물을 리모델링하기 시작했고 2009년 국내 최초로 여성암센터를 설립했다. 제일의학연구소를 중심으로 기초의학과 임상 연구에 대한 투자도 했다. 이 과정에서 1100억원에 이르는 과도한 부동산 매입비용 등이 발목을 잡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이사장은 현재 횡령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이사장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병원 증·개축 공사비 명목 등으로 3차례에 걸쳐 1000억원대 담보대출을 받았고 이 중 수백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는 상태다.

저출산 여파도 병원 운영을 어렵게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65년 104만 명, 1970년 100만 명, 1980년 80만 명이던 신생아 수는 2005년 43만 명, 2017년 35만 명 선으로 줄었다.

제일병원의 분만 건수도 2014년 5490건, 2015년 5294건, 2016년 4496건, 2017년 4202건으로 매년 감소했다.
벼랑 끝 제일병원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제일병원 경영진은 결국 경영 정상화를 위해 2018년 초 직원 임금을 삭감했다. 노동조합이 이에 반발해 2018년 6월 전면 파업에 들어가면서 경영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같은 달 취임한 신임 병원장은 한 달이 못 돼 사퇴했다.

제일병원 경영진은 2018년 10월부터 일반 직원은 물론 의사들의 임금도 지급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간호사 등 의료진이 연이어 병원을 그만뒀다. 현재는 대부분의 의료진과 직원이 퇴직한 상태다. 병원노조 등에 따르면 제일병원의 부채는 은행 빚 900억원을 포함해 1280억원에 달한다.

제일병원은 결국 2018년 12월 24일 외래 환자 등에게 휴진 결정을 통보했다. 12월 29일부터 응급실만 축소 운영하고 있고 평일 야간과 토요일·휴일에는 아예 문을 열지 않고 있다. 현재 최소한의 인원으로 의무 기록 발급 업무 등만 유지 중인 상태다.
벼랑 끝 제일병원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이영애, 제일병원 인수 참여해 눈길

제일병원 경영진은 상황이 악화하자 이사회 구성권 매각 등을 통해 자금 마련에 나섰다. 국내 의료법인은 의료법에 따라 외부 투자를 받거나 인수·합병(M&A)할 수 없어 병원 운영권을 넘기는 방식으로 매각이 이뤄진다.

제일병원 측은 그동안 동국대와 인수 협상을 벌였지만 막대한 부채 규모와 복잡한 병원 자산 소유권 문제 등으로 협상이 무산됐다. 2018년 11월부터 다른 투자자와 매각 논의를 했지만 이마저도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관계자는 “1월 중 법원에 회생을 위한 법정 관리 신청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수차례 갈등을 빚어 왔던 노사 관계가 더욱 악화해 법정 관리에 들어가는 방식 등을 놓고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가운데 배우 이영애 씨가 제일병원 인수 컨소시엄에 참여하기로 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씨 측 관계자는 “제일병원이 법정 관리 신청을 통해 회생 절차에 들어가게 되면 이 씨 등 몇몇이 병원을 인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벼랑 끝 제일병원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이 씨는 쌍둥이 자녀를 제일병원에서 출산했다. 이후 제일병원에 1억5000만원을 기부하며 다문화가정 산모 등을 후원한 바 있다. 또한 2018년 4~5월부터 병원 사정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도울 방법을 모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이기원 서울대 식품·동물생명공학부 교수, 바이오 기업, 병원 운영 관련 회사 등과 함께 제일병원 인수를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6호(2019.01.07 ~ 2019.01.1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