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 따지는 오너 2·3세, 비핵심 사업 과감한 매각 …전장·화학, 초대형 해외 딜 이어질 것”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연초부터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이 뜨겁다. 유료방송·게임사·조선사 등 업종을 불문하고 굵직굵직한 M&A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대기업의 M&A는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주홍 글씨가 새겨졌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산업구조가 빠르게 재편되면서 대기업의 M&A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이 된 지 오래다. 글로벌 시장에서 핵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M&A 능력이 ‘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역량으로 부각되고 있다. 향후 국내 주요 기업들을 중심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M&A 열풍이 한층 뜨거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M&A 전문가인 김연수 NH투자증권 투자금융본부장, 남상욱 딜로이트안진 M&A그룹 전무로부터 국내 M&A 시장의 큰 흐름과 전망을 짚어봤다. 지난 3월 7일 유병연 한국경제 마켓인사이트부장이 사회를 맡아 대담을 이끌었다.
◆ 한국 M&A 시장, 글로벌 자금 몰린다
유병연 한국경제 마켓인사트부장(사회, 이하 유병연)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국내 기업들의 M&A 건수가 2007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많았습니다. 최근 이렇게 기업들의 M&A가 활발해진 배경을 먼저 짚어주십시오.”
김연수 NH투자증권 투자금융본부장(이하 김연수) “먼저 거시적인 흐름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처럼 경제가 고성장하던 시기에는 기업들도 신규 투자가 유리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경제가 성숙 단계에 이르면 처음부터 모든 걸 새롭게 세팅해야 하는 신규 투자보다 이미 다 갖춰진 것을 사고파는 M&A 시장이 활성화됩니다. 미국도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고요. 우리 또한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단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상욱 딜로이트안진 M&A그룹 전무(이하 남상욱) “매각의 관점에서도 변화가 있습니다. 국내 기업의 오너들도 2·3세로 세대교체가 되고 있잖아요.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이들이 많아졌고 M&A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경제적인 효율을 철저하게 따져보고 비핵심 사업이라면 과감하게 매각을 선택하는 거죠. 최근에는 경제성장에 따라 국내 시장에도 사모펀드(PEF) 등으로부터 자금이 굉장히 많이 유입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기술력이나 브랜드를 보유한 회사도 많지만 베트남·인도 등과 비교해 재무 상태가 투명한 편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한국을 굉장히 좋은 투자처로 생각하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 예전에 비해 대규모 M&A가 늘고 있습니다.”
유병연 “시장 확장, 신기술 확보 등 기업들이 M&A를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 또한 상당히 다양합니다. 최근 국내 기업들의 M&A를 살펴보면 눈에 띄는 트렌드가 있나요.”
김연수 “최근 대기업들의 M&A를 보면 ‘핵심 역량’에 집중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업의 미래를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과 상시적으로 치열한 논의를 거쳐 그 결과에 따라 ‘비핵심 사업’이라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매각을 진행합니다. 공정위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매각을 고려하는 곳도 많아졌습니다. 현재 대기업들의 M&A는 이 두 가지 측면이 모두 함께 작동된 성격이 많습니다.”
◆ ‘플랫폼 비즈니스’ 대형 딜 주목
남상욱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M&A가 가장 많죠. 구체적으로 요즘에는 대기업이 직접 신성장을 이끌 수 있는 사업에 직접 투자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그 대신 관련 사업 부문을 분할한 뒤 신설 법인을 세워 PEF의 자금을 받아 함께 사업을 키워 나가는 트렌드가 감지됩니다. 기업과 PEF의 협업이죠. SK그룹에서 분사한 11번가에 5000억원을 베팅한 H&Q코리아가 대표적입니다. 기업에도 PEF는 단순히 자금만 대는 투자자가 아니라 사업을 함께 키워 나가는 동반자로 인식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김연수 “맞습니다. 예전에는 PEF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PEF들이 기업 인수 후 통합 관리(PMI)하는 과정만 보더라도 변화가 느껴집니다. 예전처럼 기업 구조조정 후 사업 매각으로 수익만 좇는 게 아니라 요즘에는 기존에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포트폴리오 회사와 시너지를 내는 데 더 집중합니다. 투자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밸류업 전략이죠.”
유병연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SK텔레콤의 ADT캡스 인수 등 최근에는 국내 주요 그룹들의 과감한 M&A 행보 또한 눈에 띕니다. 국내 주요 그룹가운데 향후 M&A 시장에서 활약이 클 것으로 기대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김연수 “SK그룹은 기존에도 M&A를 활발히 진행해 왔어요. LG그룹과 롯데그룹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LG그룹은 사업 재편이나 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제 막 본격적인 M&A 행보를 시작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비핵심 사업 부문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매각을 준비 중인 곳들이 있기도 하고 또 LG화학이나 LG전자 쪽에서 핵심 역량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사업 부문의 인수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롯데그룹도 최근 동남아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추세입니다. 또 유통업이 이커머스로 다 넘어가면서 기존 유통업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인식도 있고요. 두 기업 모두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거나 새로운 시장으로 나가거나 두 개의 방향에서 M&A가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남상욱 “최근 2~3년간을 보면 SK그룹·CJ그룹·한화그룹이 M&A 시장에서 굉장히 활발하게 움직였죠. 저도 LG그룹과 롯데그룹의 보폭이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두 그룹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결국은 유통이나 화학 쪽을 주력으로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서 화학 업종과 관련한 M&A 투자는 쉽지 않은 상황이거든요. 그러면 롯데·한화·LG 모두 크로스보더 딜(국경 간 거래)에 좀 더 집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삼성그룹도 지배구조 이슈가 있어 계열사 매각 시도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2016년 놀라움을 줬던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처럼 앞으로도 ‘전장 사업’에 중점을 둔 대규모 M&A들이 있을 겁니다.”
유병연 “최근 2~3년 안에 눈에 띄는 M&A를 보면 유통업에서 특히 경쟁이 치열했어요. 올 연초에는 유료방송 시장에서도 M&A가 잇따랐습니다. 넥슨이 매물로 나와 있는 만큼 게임업계도 들썩이고 있고요. 올해 M&A 시장에서 가장 주목되는 업종은 어딘가요.”
남상욱 “원래 유통업의 트렌드는 10년 주기로 바뀐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유통 트렌드 변화의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중국만 해도 대형마트를 아예 건너뛰고 모바일로 모두 넘어갔습니다. 글로벌 대기업이나 PEF들도 이런 변화를 다 지켜보고 있잖아요. 국내에서도 오픈 마켓 기업들에 자금이 지속적으로 수혈되는 중인데 국내시장의 크기에 한계가 있는 만큼 어느 시점에 가면 결국 재편이 일어날 겁니다. 이런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M&A 매물이 쏟아져 나올 수 있어요. 또 하나 주목하는 곳은 자동차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하는 전장 사업입니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의 흐름도 전장이나 2차전지 등에 대한 투자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삼성의 하만 인수 외에 LG전자도 지난해 오스트리아 전장부품 회사인 ZKW를 인수했잖아요. 다만 아쉬운 것은 국내에는 관련 기술을 보유한 회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대기업들이 크로스보더 딜에 관심을 둘 가능성이 높습니다.”
◆ PEF, 기업 가치 키우는 파트너 역할
김연수 “플랫폼 비즈니스 측면에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에는 업종별로 경계가 명확했던 반면 최근에는 갈수록 업종 구분이 흐릿해지는 대신 시장 내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업들 간의 합종연횡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예를 들어 유로방송 사업자가 대표적인 플랫폼 사업자이고 게임 업체 넷마블, 텐센트와 같은 퍼블리싱을 중심으로 하는 플랫폼 사업자들끼리의 M&A가 활발해질 것입니다. 또 하나, 에너지 분야도 국내 대기업들이 M&A 시도를 굉장히 많이 하는 분야 중 하나예요. SK·롯데 등의 기업들을 중심으로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해외의 에너지 상품을 확보하기 위한 크로스보더 딜에 관심을 보이는 곳이 늘고 있습니다.”
유병연 “국내 M&A 시장에서 PEF가 메인 플레이어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만큼이나 부정적인 시선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남상욱 “2005년 PEF가 처음 도입된 것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PEF는 이제 14년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실제 전문화되지 못했고 진통을 겪기도 했죠. 그때를 돌아보면 외국계 PEF가 국내에 많이 들어왔었는데 실제 이런 PEF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 운영의 노하우나 자원들이 많거든요. 이를 통해 기업의 가치가 두 세 배로 높아진 곳들이 적지 않고요. 결국 기업 자체는 한국 기업이잖아요. 대표적으로 한화L&C는 한화그룹 내에서 굉장히 오래된 사업 분야고 내재 가치가 높은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한화가 신소재 부문에 집중하면서 내부적으로 투자 지원을 많이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모건스탠리 사모펀드가 인수한 이후 공격적인 인력 투자와 마케팅 연구·개발을 거쳐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성공했고 현대백화점그룹에 성공적으로 인수됐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이들이 시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부분이 분명 존재하죠. 최근에는 국내 PEF들 역시 역량이 많이 높아지고 있어요.”
김연수 “저는 국내시장에서 PEF의 역할을 저수지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국내 사모펀드인 MBK가 인수했다가 매각한 ING생명(현 오렌지라이프)을 볼 수 있습니다. MBK가 인수할 때만 하더라도 당시 국내 금융지주사들 중 ING생명에 관심을 두는 곳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MBK가 3~4년 보유한 뒤 이번에 신한그룹에 성공적으로 매각했잖아요. 국내시장에 가뭄이 들었을 때(수요가 없을 때) PEF가 저수지처럼 물(물량)을 보유해 뒀다가 수요가 있을 때 적정 수익을 내고 공급해 주는 거죠. 2015년 ADT캡스를 인수한 후 3년 만에 SK텔레콤에 매각한 칼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이 비핵심 사업을 매각하면 누군가는 인수 해 줘야 하는데 적절한 수요자가 나타날 때까지 시차를 채워 주는 역할을 PEF가 하고 있는 겁니다.”
유병연 “M&A 시장의 메인 플레이어들만큼이나 회계법인이나 투자은행(IB)과 같은 자문사들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현재 국내 자문사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김연수 “M&A 거래는 늘고 있지만 자문과 관련한 시장은 많이 줄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의 M&A가 활발해지면서 자체적으로 인력을 갖추는 곳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국내 IB들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향이 장기적으로 국내 M&A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됩니다. IB들의 역할이 자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M&A 딜과 관련한 정보를 모으고 중개하는 역할도 큽니다. 지금처럼 IB 부문이 지속적으로 위축된다면 생태계 측면에서 볼 때 벌·나비를 죽이는 것과 똑같을 수 있습니다.”
남상욱 “실제로 대기업 기준으로 자체적으로 M&A팀을 꾸리는 등 내재화를 많이 했죠. 그러다 보니 크로스보더 딜이나 일부 대규모의 딜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관련 수요가 줄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다만 그중에서도 실사와 회계 실사 등 실사와 관련한 부분은 예전과 비교해 훨씬 더 깊이 있는 실사를 원하고 있거든요. 기업들이 M&A 인력을 내재화한다고 해도 기업 실사와 관련한 부분을 내재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실사와 관련한 부분에서는 시장이 조금 더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실사뿐만 아니라 협상도 같이 하길 원하는 등 복합적인 서비스를 원하는 경향도 짙어지고 있고요. 이 때문에 IB 자문 기능을 하는 곳들은 2~3년 전부터는 딜을 개발하거나 네트워크를 활용해 플레이어들을 연결해 주는 역량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 M&A 성공 열쇠, ‘기업 통합’에 달렸다
유병연 “M&A가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실패 사례 또한 무수히 많죠. 국내 기업들이 M&A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연수 “답은 하나예요. PMI에 실패하는 경우입니다. 사실 M&A 거래 가격을 싸게 샀다, 비싸게 샀다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업 가치를 높임으로써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니까요. 그런데 기업 통합에 실패하면 치명적입니다. M&A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업적으로 맞는 회사인지, 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지 철저하게 따져야 합니다. 결국 ‘사람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남상욱 “기업을 인수한 후 100일 동안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계획을 설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흔히 ‘100일 플랜’이라고 하는데 기업을 인수하기 전에 숫자를 보는 실사뿐만 아니라 숫자로 보이지 않는 실사도 중요합니다. 장기적인 산업 트렌드에 대한 판단은 물론이고 우리 회사와 인수 기업이 어떤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어떻게 시너지를 낼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한 전략이 세밀하게 짜인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은 결과의 차이가 굉장히 큽니다. 저 또한 사람 관리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투자 실적이 가장 높다는 어피니티PE만 보더라도 이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기업의 가치를 키울 수 있는 경영진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강력한 동기부여를 해주는 겁니다. 결국 비즈니스는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요.”
유병연 “국내 M&A 시장이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 개선돼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김연수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나 국내 기업들의 오너들이 회사를 본인과 동일시하는 등의 정서적인 문제들이 국내 M&A 시장이 성장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하죠. 하지만 이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해결될 문제라고 봅니다. 규제 문제도 예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개선됐습니다. 국내에서 M&A를 원활히 진행하는 데 문제가 없을 만큼 제도도 잘 뒷받침돼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M&A를 진행할 때 소액주주에 대한 보호 장치는 조금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남상욱 “국내 경제 규모에 비해 PEF가 너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외국계 펀드들도 국내 M&A 딜에 참여하는 곳이 상당히 많고요. 이런 PEF까지 포함하면 시장에 자금이 굉장히 풍부하다고 볼 수 있죠. 다만 우려되는 것은 5~6년 뒤의 상황입니다. 10여 년 만에 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과열 경쟁으로 M&A 가격을 지나치게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PEF의 정리가 필요하고요, M&A 시장에서 수급의 균형이 맞춰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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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5호(2019.03.11 ~ 2019.03.1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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