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투수 역할 끝나자 ‘경영 실패’ 낙인…2020년 업황 회복 앞두고 전격 교체
비정한 산업은행?…최악 넘기고 중도 하차하는 대우조선·현대상선 CEO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해운·조선업계의 수장들이 연이어 회사를 떠난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2월 14일 사임 의사를 밝혔고 1주일도 안 돼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도 물러날 뜻을 밝혔다. 대주주인 KDB산업은행의 압박을 피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비정한 산업은행?…최악 넘기고 중도 하차하는 대우조선·현대상선 CEO
◆1주일 사이 연이어 사의 표명한 구원투수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2월 14일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 관리위원회 측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 2015년 대우조선 사장으로 부임한 정 사장의 임기는 2021년까지다.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 또한 2021년까지 임기를 남겨 놓은 상태였지만 사의를 표명했다. 유 사장은 2016년 현대상선 대표에 취임했고 지난해 3월 3년 연임이 결정된 상황이었다.

임기가 2년이나 남은 두 최고경영자(CEO)가 스스로 물러난 데는 대주주인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이 큰 영향을 미쳤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 현대상선 지분 13.13%를 가진 최대 주주다. 하지만 두 회사의 실적은 좋지 않았다. 특히 현대상선은 지속적으로 산업은행의 압박을 받아 왔다.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2조원의 자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부터 8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해 11월 현대상선을 향해 “모럴 해저드가 만연해 있다”며 “안일한 임직원은 즉시 퇴출할 것”이라는 강경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7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산업은행의 생각은 달랐다. 이동걸 회장은 2월 26일 “대우조선해양은 가까스로 손익분기점 수준이고 약간의 변동 요인만 있으면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회장은 “물러난 CEO들의 역할은 끝났고 미래 지향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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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두 회사의 위기 상황은 경영진의 능력 부족이라기보다는 시황 부진의 영향이 더 컸다는 분석도 있다. 2008년 금융 위기로 한 차례 위기를 겪었던 한국 해운업계는 2016년 한진해운의 도산으로 큰 고비를 넘어야만 했다.

여기에 해운 선사의 매출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운임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3월 1일 기준 상하이~북유럽 운임은 지난주보다 35달러 하락한 796달러로 집계됐다. 상하이~지중해 운임은 47달러 하락한 810달러다. 선사들은 아시아~유럽 항로의 운임이 1000달러는 돼야만 안정적 운임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선사들이 잇달아 초대형 선박을 투입하면서 화물 채우기에 급급해지자 화주들의 입김이 세졌고 운임은 내리막길을 탔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로 수주 절벽에 부딪친 조선사도 10년 동안 좀처럼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선사들이 어려움을 겪자 조선사들의 신규 선박 발주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다소 회복됐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2860만CGT로 2017년 2813만CGT와 큰 차이가 없었다. 국내 조선사들이 앞다퉈 진출했던 해양 플랜트 발주도 저유가의 영향으로 지지부진했다.

두 CEO는 최악의 상황에 등판했던 ‘구원투수’와 같았다. 2015년 부임한 정 사장은 당시 부진을 겪던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며 2017년 흑자 전환을 이끌었다.

2016년 9월 취임한 유 사장은 한진해운의 파산 이후 실추된 한국 해운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글로벌 화주들을 상대로 신뢰 회복에 매진했다. 유 사장의 취임 후 2016년 30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하나)였던 물동량은 지난해 450만TEU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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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황 회복 기미 보이는데…아쉬운 퇴진 시점

업계에서는 두 CEO의 용퇴 시기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0년간 불황을 겪고 이제야 조금씩 회복의 기미가 보이던 시점이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해운과 조선업 모두 그 시기를 2020년 즈음으로 보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76척 중 무려 66척을 수주했다. 이는 한국 조선사가 해외 조선사보다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선에 뛰어난 건조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향후 LNG선은 국제해사기구(IMO) 해사 규제에 따라 LNG 수요가 점차 증가해 조선사들의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월 28일 열린 한국·카타르 정상회담에서 카타르가 LNG 운반선 60척을 발주할 계획이 있다고 밝히면서 한국 조선사들은 ‘수주 대박’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또 2020년부터 IMO의 해사 규제에 따라 바다를 오가는 선박들은 스크러버(황산화물 저감 장치)를 설치하거나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하나의 대안인 저유황유는 원활한 공급을 장담할 수 없어 가격이 고가로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선사들은 장기적으로 스크러버를 설치해야만 하는데 글로벌 시장에서 탈황 장치를 부착한 선박은 전체의 5% 남짓에 불과하다. 조선업계는 향후 친환경 컨테이너선의 수주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상선도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에 따라 발주한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투입되는 2020년을 흑자 전환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지난해 9월 발주한 2만3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척)급 컨테이너선 12척은 2020년 2분기에, 1만5000TEU급 컨테이너선 8척은 2021년 2분기에 인도될 예정이다.

특히 2만3000TEU급 컨테이너선은 경쟁력이 약화된 것으로 평가받았던 유럽 노선에 투입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선사들이 IMO 해사 규제에 따른 비용 증가를 우려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현대상선이 준비를 빠르게 마친다면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2020년 현대상선과 세계 1·2위 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라인과 스위스의 MSC가 참여한 얼라이언스 ‘2M’과의 협력 관계가 종료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시기라는 평이 나온다.

한편 정 사장은 대우조선해양의 매각 과정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2월 26일 기자들과 만나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가 이번 거래에 끼어야 할 필요는 없다”며 “정 사장은 현업에 매진하느라 바빴으니 역할을 분담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산업은행은 3월 7일 현대상선 새 대표이사로 배재훈 범한판토스 전 대표를 내정했다. 배 내정자는 LG반도체 미주지역 법인장과 MC해외마케팅 담당 부사장을 거쳐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범한판토스 대표를 지냈다. 배 내정자는 3월 27일 주주총회에서 선임 안건이 통과되면 정식으로 취임한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5호(2019.03.11 ~ 2019.03.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