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 드림어스컴퍼니로 사명 변경…2대 주주 SM과 손잡고 음원 유통·서비스 확대
‘잊힌 MP3 강자’ 아이리버, 콘텐츠 플랫폼 기업으로 부활 노린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아이리버가 지난 3월 말 ‘드림어스컴퍼니’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기존의 사명인 아이리버는 ‘인터넷의 강’이란 뜻이었다. 인터넷과 연동 가능한 휴대용 음향기기(MP3) 출시를 통해 세계시장을 제패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


새 이름인 드림어스컴퍼니는 ‘꿈꾸는 사람(dreamer)’과 ‘우리(us)’를 결합해 만들었다. ‘창작자와 사용자가 다채로운 세상을 함께 꿈꾼다’는 의미다. 음악·영상·공연 등 문화 콘텐츠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콘텐츠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겠다는 새 비전이 함축된 이름이다.

그간 음향 기기 디바이스가 사업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콘텐츠 플랫폼으로 그 무게 추를 완전히 이동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결정된 것은 아니다. 2014년 SK텔레콤에 인수된 이후부터 차츰 콘텐츠 사업의 비중을 강화하며 변신을 준비해 왔다.


이번에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앨범 유통을 맡게 된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지난해 말에는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플로’를 출시하며 사업 재편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사명까지 변경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아이리버의 변신을 바라보는 시장은 벌써부터 기대감을 내비친다. SK텔레콤이라는 거대 통신 기업의 든든한 지원을 무기로 콘텐츠 사업에서의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 나갈 것이란 예상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이리버’의 ‘쓸쓸한 퇴장’을 바라보는 아쉬운 시각도 존재한다. 음향 기기 제품은 여전히 아이리버란 이름으로 출시되고 시중에 판매되지만 사실상 명맥을 유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드림어스컴퍼니 관계자는 “해당 사업의 성장세가 무뎌진 만큼 ‘확장’보다 이를 유지하는 데 보다 중점을 둘 방침”이라고 전했다. 2000년대 초반 세계시장을 제패했던 혁신적인 제품 출시를 사실상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된 셈이다.

◆IT 기기로 세계시장 제패했던 아이리버

약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런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아이리버가 우리 산업계에 던졌던 ‘신선한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국내 기업 중 최초로 일본 소니를 누른 주인공이었고 해외에서도 대표적인 혁신 기업을 꼽을 때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던 기업이 아이리버였다.

출발부터 남달랐다. 아이리버의 전신은 1999년 삼성전자를 퇴사한 양덕준 대표가 만든 ‘레인콤’이다. 2000년 초 그가 처음으로 ‘아이리버’란 이름의 MP3 플레이어를 내놓았을 때 그는 이미 같은 제품을 출시하고 있었던 소니나 삼성전자가 아닌 아르마니를 경쟁 상대로 꼽았다.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선망의 대상인 아르마니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들에게 꿈과 이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아이리버 역시 이런 브랜드가 되는 것이 목표다.” 그가 남겼던 말이다.

물론 기술력에도 자신이 있었다. 당시 시중에 판매되는 MP3 플레이어는 일반 오디오 CD를 재생하거나 MP3 포맷 정도만 재생할 수 있었다. 아이리버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여러 형태의 음원 포맷을 소리로 전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세계 최초였다. 그렇게 성공 신화가 시작됐다.
‘잊힌 MP3 강자’ 아이리버, 콘텐츠 플랫폼 기업으로 부활 노린다
2000년대 초반은 MP3 시장이 차츰 만들어지는 형성기였다. 아이리버의 첫 MP3 제품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는 물론 미국 시장에서 빠르게 팔려 나가며 초기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이후 행보는 순탄했다.

쌓아올린 평판을 바탕으로 새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자신감을 갖고 새로운 디자인과 기술력을 제품에 적용했고 어느덧 ‘혁신’ 기업으로까지 불리게 됐다.

당시 제품 생산에 관여했던 이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아이리버는 ‘정보기술(IT)계의 아르마니’를 목표로 작은 것 하나부터 고객 관점에서 출발하고 과감하게 ‘혁신’했다.

제품을 디자인할 때 버튼 위치부터 ‘그립감’까지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기본이었다. 아이리버의 혁신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례는 제품에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MP3 제조사 중 가장 먼저 적용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펌웨어 업그레이드가 그리 특별하지 않은 것이 됐지만 당시엔 개념조차 잡혀 있지 않았다. 경쟁사 제품들은 제품을 출시하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수 없었지만 아이리버는 달랐다. 새로운 포맷이 나오면 이를 적용할 수 있도록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적용했고 매번 새로운 제품을 갖게 하는 느낌을 고객에게 안겨줬다.

또 만약 제품에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아이리버가 이를 조만간 고쳐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 고객들은 아이리버 게시판을 통해 다양한 문제점들을 올렸고 엔지니어들은 이를 보고 시스템을 개선해 나갔다.

이런 혁신을 무기로 아이리버는 MP3 출시 약 4년 만인 2004년 업계 최강자로 부상했다. 국내시장 점유율은 70%. 삼성전자의 MP3 브랜드였던 ‘옙(yepp)’마저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사실상 독점 체제를 구축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5% 정도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국내 기업들에 ‘넘사벽’ 같은 존재였던 소니 역시 MP3 시장에서 아이리버의 혁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2000년 약 80억원이었던 벤처기업 아이리버의 매출은 2004년 4500억원까지 늘어나며 국내를 대표하는 IT 기업으로 우뚝 섰다.

특히 2005년은 지금도 아이리버 역사를 얘기할 때 두고두고 무용담처럼 회자되는 순간이다. 2005년 1월 열린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아이리버는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로 떠올랐다.


기조연설을 맡았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손에는 아이리버의 제품이 들려 있었다. 그는 “디지털 라이프 시대가 왔다”며 아이리버를 소개했다.

◆애플과의 전쟁에서 참패하며 기울어

물론 빌 게이츠 창업자가 아무 이유 없이 아이리버 제품을 들고 나온 것은 아니다. 당시 애플은 MP3 제품인 ‘아이팟’과 함께 ‘아이튠즈’를 내놓으며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점차 확대하던 시기였다.


여기에 맞서 아이리버는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손잡고 애플의 공세에 대응하기로 한 상태였다. 일종의 전략적인 홍보였던 셈이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시 아이리버의 위상이 대단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를 발판 삼아 아이리버는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사과를 씹어 먹는 광고까지 선보이며 애플과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전에 없던 디자인을 선보인 아이팟, 여기에 더해 자체적으로 음원을 공급하는 플랫폼 아이튠즈가가 더해진 애플의 ‘새로운 혁신’에 전 세계가 열광했다.
‘잊힌 MP3 강자’ 아이리버, 콘텐츠 플랫폼 기업으로 부활 노린다
그렇게 아이리버가 세운 왕국은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지나친 자만도 문제였다. 소니도 눌렀던 아이리버였다. 내부적으로 애플도 적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수요 예측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공장을 돌린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재고가 쌓였고 잘나가던 아이리버는 2005년 설립 이후 첫 적자에 직면했다.

이후에도 시련은 이어졌다. 애플은 아이팟에 이어 ‘아이폰’을 내놓으며 스마트폰 시장까지 열었다. 음악을 듣는 방식이나 소비하는 패턴마저 전부 바꾼 것이다. MP3 수요가 급격하게 줄었고 아이리버가 설 땅이 점점 좁아졌다. 추락을 거듭한 끝에 2007년 결국 국내 사모펀드인 ‘보고펀드’에 매각되고 창업자인 양 대표 역시 경영에서 물러났다.

사모펀드 체제에서도 아리리버는 생존을 위해 다양한 전략을 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는 데 실패했다. MP3 기기 제조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 게임기 사업과 고음질 MP3 브랜드 ‘아스텔앤컨(Astell & Kern)’ 등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결국 보고펀드도 백기를 들고 2014년 아이리버를 팔았다. 7년 전 인수 가격은 약 600억원. 이 금액에 절반인 300억원에 아이리버를 SK텔레콤에 매각했다.


SK텔레콤은 그간 쌓아 온 브랜드 평판과 기술력을 인정받아 아이리버 인수를 결정했다. 통신과 연계해 다양한 디지털 디바이스 사업을 벌이겠다는 목적에서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기대했던 시너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리버의 역사는 계속된다

아이리버는 적자를 이어 가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결국 SK텔레콤도 기존의 방향을 다소 수정해 ‘콘텐츠 플랫폼 사업 강화’를 앞세우며 내부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을 이끌고 있는 연예 기획사와 손잡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17년 SM엔터테인먼트를 2대 주주(지분율 약 15%)로 참여시키며 다양한 사업을 펼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또 지난해에는 JYP엔터테인먼트에 이어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음원 유통 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냈다. 이를 토대로 콘텐츠 플랫폼 사업 매출이 급성장하며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현재 전체 매출의 약 30%가 여기에서 창출되고 있고 그 덕분에 적자 폭도 크게 개선됐다. 불과 1년여 만에 거둔 성과다. 업계 관계자는 “여기에 고무돼 올해 아이리버의 사명까지 바꾸고 대대적인 조직 개편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드림어스컴퍼니의 내부 조직은 3개 부서로 나눠진 상태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플로’를 총괄하는 ‘플랫폼 사업부’, 음원 유통이나 굿즈를 판매하는 ‘미디어콘텐츠 사업부’, 아이리버 제품을 판매하는 ‘디바이스 사업부’ 등이다.


콘텐츠 플랫폼 기업으로 재도약을 노리는 만큼 대표도 새로 선임했다. SK텔레콤에서 뮤직사업TF장을 맡았던 이기영 대표가 조직을 이끈다.

드림어스컴퍼니 관계자는 “콘텐츠 강화 전략에 따라 아이리버가 포함된 디바이스사업부의 비율이 점차 줄어들겠지만 브랜드를 이어 가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며 “한류 스타들의 캐릭터를 입힌 다양한 제품을 출시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세상을 뒤흔들 혁신적인 제품을 기대하기 어렵고 주식시장에서도 자취를 감췄지만 IT 기업으로 한 획을 그었던 아이리버의 역사는 드림어스컴퍼니를 통해 계속 이어지는 셈이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0호(2019.04.15 ~ 2019.04.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