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 동영상 시대에 읽기형 콘텐츠로 고정팬 확보…크라우드 펀딩 방식 접고 구독 서비스에 집중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최근 유료 콘텐츠 시장이 커지고 있다. 수억 명의 유료 가입자를 모은 넷플릭스의 성공은 다양한 유료 콘텐츠 모델 확산에 불을 지폈다. 특히 월정액을 납부하고 무제한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넷플리스식 ‘유료 구독 모델’이 동영상과 음악뿐만 아니라 독서와 애니메이션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퍼블리(지식 콘텐츠), 밀리의 서재(전자책), 리디북스(전자책), 라프텔(애니메이션) 등이 서비스를 선보인다.
“일과 성장 고민에 지갑 연다” 지식 콘텐츠 유료화 성공한 퍼블리
퍼블리는 ‘일하는 사람들의 콘텐츠 플랫폼’으로, 2015년 출범한 스타트업이다. 디지털에서 다양한 지식 콘텐츠를 유료 모델로 선보이며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다. 올해 4월 15일 기준 멤버십을 유지하는 유료 구독자 수 6000명, 재결제율 85%, 누적 결제 고객 2만 명을 기록 중이다. 최근 38억원 규모의 시리즈 B 단계 투자로 받았다.

퍼블리는 눈과 귀를 잡아끄는 동영상도 음악 콘텐츠도 아닌 오직 글과 이미지로 어떻게 무료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유료 콘텐츠 모델을 구축해 왔을까. 그 배경에는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자기 성장의 욕구가 있다. 이와 같은 욕구를 건드리고 충족시키면 고객들은 주머니를 연다. 퍼블리의 성장 스토리에서 확인한 팔리는 콘텐츠의 비결은 일과 성장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고민 해결에 있었다.

진짜 배움의 장, 지식 콘텐츠
퍼블리의 초창기 모델은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구독자를 모집하는 방식이었다. 웹상에서 제작할 콘텐츠의 제목과 기획 의도, 저자 소개, 콘텐츠 목차 등을 적어 놓고 기한을 정해 예약 판매를 실시했다. 실제 제작이 이뤄지기까지 최소 목표 금액은 100만원. 현재까지 발행된 150여 개의 콘텐츠 가운데 단 5개만이 목표 금액에 미달해 실패했고 나머지는 모두 성공적으로 발행을 마쳤다.

퍼블리는 2017년 7월 구독 서비스를 론칭했다. 월 2만1900원의 구독료를 지불하면 퍼블리의 모든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그동안 크라우드 펀딩 모델도 병행하다가 4월 25일 ‘실리콘밸리에서 뜨는 스타트업, 그로스 전략이 다르다’ 콘텐츠를 끝으로 예약 판매를 완전히 종료했다. 앞으로는 구독 서비스에만 역량을 집중할 예정이다.

박소령 퍼블리 대표는 “크라우드 펀딩은 ‘얼리어답터 비즈니스’로 물건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받아 위험 부담이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양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어 구독 서비스로 전환했다”며 “구독 서비스는 일종의 시간을 파는 개념으로, 회사가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등 일하는 방식에서부터 모든 것이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신규 고객 유입 목적에서 운영해 온 크라우드 펀딩을 접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구독 서비스만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구독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실제 더 빠르게 성장했다. 퍼블리에 따르면 월순환매출(MRR : Monthly Recurring Revenue)은 월평균 성장률이 약 30%를 기록하고 있다. 또 신작 콘텐츠가 꾸준히 늘고 있다. 구독 서비스를 선보인 후 1년간 월평균 5개의 신작이 나왔다면 지난해 9월 이후 월평균 10개로 늘었다. 올해 1분기에는 12~15개의 콘텐츠가 발행됐고 2분기에 15~20개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콘텐츠 유료화 시장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던 때 읽기형 콘텐츠로 시장에 진입해 업계 선두주자로 올라선 퍼블리의 ‘타율’이 높았던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디지털 유료화 시장이라는 외부 환경의 변화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에서 일하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 진학한 박 대표는 미국의 미디어 환경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콘텐츠 유료화 시장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퍼블리에 투자한 투자자들도 이구동성으로 시장 가능성을 얘기했다. 박 대표는 “콘텐츠 유료화 시장이 부상하면서 옥석 가리기가 시작될 때 데이터 기반의 콘텐츠 회사이면서 일과 커리어라는 영역에서 확장 가능한 비즈니스라는 점에서 유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과 성장 고민에 지갑 연다” 지식 콘텐츠 유료화 성공한 퍼블리
처음부터 원칙은 분명했다. 그것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과 돈을 내는 납부자를 일치시키는 것’이었다. 박 대표는 기존 언론사를 비롯한 콘텐츠 산업의 문제점으로 소비자는 돈을 내지 않고 생산자는 정부나 기업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해 결과적으로 ‘콘텐츠 품질관리’가 잘되지 않는 점을 꼽았다. 이를 해결하기 ‘B2C 콘텐츠 유료화 모델’을 생각했다. 크라우드 펀딩이나 구독 서비스는 당시의 트렌드를 따른 것이었다. 관건은 실제 사용자가 주머니를 열 정도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다.

초창기에는 박 대표와 내부 리더십의 개인적인 관심사를 반영했다. 박 대표는 “특히 해외시장에서 큰 콘퍼런스 행사가 열리면 이를 한국어로 된 콘텐츠로 제공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며 “그중 ‘2016 칸 광고제’가 처음으로 대박이 난 콘텐츠”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실제 업계 종사자가 구체적으로 풀어내는 ‘해외 취재형 콘텐츠’들이 인기를 누렸다.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를 중계하기도 하고 유명 북페어나 글로벌 기업의 주주총회 참석기 등을 리포트 형식으로 보고하기도 했다. 케이스 스터디 형태의 콘텐츠도 인기였다. 모든 콘텐츠 실험은 철저히 고객들의 피드백을 따랐다.

‘일하는 사람의 콘텐츠 플랫폼’이라는 퍼블리의 슬로건은 지난해 여름 새롭게 변경된 것이다. 이전에는 ‘지적 자본’, ‘지적 즐거움’, ‘당신의 시간은 소중합니다’ 등의 슬로건을 사용했다. 핵심 고객을 뾰족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방향성은 ‘교양’에서 ‘지식’으로 바뀌었다. 박 대표는 “초기에는 교양이나 여가, 리버럴 아트 등의 콘텐츠도 선보였는데 점차 지식과 정보로 포커스가 맞춰졌다”고 말했다.

고객들은 경험과 배움을 원했다. 특히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 이야기(Lessons Learned Story)’에 돈을 지불했다. 성장과 성취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위기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핵심 타깃 고객이 됐다.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가 아닌 ‘일하는 사람들의 콘텐츠’인 이유는 고객이 플랫폼의 적극적인 주체가 되기를 바라는 의도의 표현이었다. 박 대표는 “타깃 고객에게 어떠한 가치를 줄 것인지가 기획 단계부터 명확하지 않으면 많은 이슈가 생긴다”며 “시대 흐름에 민감하고 위기의식을 빠르게 느끼는 사람들, 10년 후 쓸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싶은 사람들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찾아내는 게 팔리는 콘텐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업무 영역으로 보면 마케팅·기획 및 전략·신사업·디자인 등이 메인 콘텐츠에 해당했다.
“일과 성장 고민에 지갑 연다” 지식 콘텐츠 유료화 성공한 퍼블리
“일과 성장 고민에 지갑 연다” 지식 콘텐츠 유료화 성공한 퍼블리
예를 들어 가장 최근 발행한 ‘일잘러의 정리법-업무 효율 극대화의 기술’은 직장인들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콘텐츠다. 입소문을 통해 판교에서 정보기술(IT)업계에 종사하는 저자에게 러브콜을 보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여러 도구들을 ‘실용서(how-to)’ 관점에서 디테일하게 풀었다. 각 콘텐츠는 목차를 가지고 있고 적게는 10분에서 많게는 60분 분량으로 구성된다. 외부 전문가로 저자풀이 형성되지만 저자에게만 의존하지 않는다. 뒷단에서 기획·편집·디자인·마케팅 등의 팀이 붙는다. 콘텐츠 품질을 위해 퍼블리는 처음부터 저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오픈 플랫폼’이 아니라 일종의 큐레이션 서비스를 선보였다. 무형의 상품인 콘텐츠는 무엇보다 브랜드가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기획부터 편집·디자인·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상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에 공을 들여 왔다.

기획에서 팀원들의 ‘개인기’에 의지하지 않는 점도 독특한 부분이다. 박 대표는 “콘텐츠를 다루다 보니 팀원 개개인의 역량이 중요한데 사람의 손을 타는 기획은 어떤 때는 흥하고 어떤 때는 망할 수 있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며 “처음부터 인력의 반은 엔지니어로 구성해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하는 데 역량을 모았다”고 말했다. 아직은 정량적으로 데이터의 효과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웹사이트 안에서 소비자가 움직이는 행동 데이터를 들여다보면서 점차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퍼블리 측은 설명했다.

현재 퍼블리의 주 독자층은 25·35세대로 좁혀진다. 주요 저자들은 대부분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실무자들이다. 초창기엔 인맥으로 섭외했고 퍼블리가 점차 이름을 알리면서 먼저 연락하는 저자들이 늘었다고 한다. 저자를 선별할 때 첫째는 저자가 가진 재료를 본다. 본인이 직접 겪은 성공과 실패를 통해 메시지를 뽑아낼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글쓰기 능력이 없으면 녹취를 통해 정리하는 형태로 선보인다. 재밌는 점은 독자와 저자의 눈높이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부장·임원·최고경영자(CEO)가 아닌 대리·과장·차장 등 실무진을 선호하는 저자로 선호하는 이유는 2~3년 먼저 앞서간 ‘똑똑한 선배’의 관점에서 ‘이렇게 하면 성과가 나온다’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서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퍼블리는 동시대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퍼블리에서 발행하는 콘텐츠들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산업과 소비 트렌드, 일 잘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법, 일 잘하는 조직의 일하는 법 등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크게 ‘시장과 기업이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 ‘어떤 사람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에 대해 세밀하게 풀어내는 콘텐츠가 양 축을 형성한다. 퍼블리는 “진짜 배움은 학교 밖에서 이뤄진다. 그것은 콘텐츠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박 대표는 “‘콘텐츠가 나를 형성했다’고 말할 만큼 제게 좋은 선생님이었던 것처럼 또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25·35세대의 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과 성장과 커리어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와 배움이 있는 지식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더욱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과 성장 고민에 지갑 연다” 지식 콘텐츠 유료화 성공한 퍼블리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2호(2019.04.29 ~ 2019.05.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