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이전 차량 거래 매년 꾸준히 늘어…1위는 닷지 ‘램 픽업’ 1세대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한 국내 ‘클래식 카’ 시장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 보통 중고차는 시간이 갈수록 가격이 떨어진다. 하지만 세월과 함께 가치가 더해진 일부 차들은 희소성을 인정받으며 출시 당시 가격보다 수배에서 수십배에 이르는 가격에 거래된다.

실제로 세상에서 가장 비싼 클래식 카로 불리는 1953~1964년에 생산된 페라리 250 GTO의 1963년 모델은 출시 당시 1만8000만 달러(약 2100만원)였지만 지난해 개인 간 거래에서 7000만 달러(약 783억원)에 매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250 GTO는 페라리 모델 중에서도 특히 높은 가치와 명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며 1953~1964년 사이 총 36대만 제작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클래식 카는 자산가들의 중요한 투자 상품이 되고 있다. 지난해 영국 부동산 컨설팅 회사 나이트프랭크가 발표한 ‘지역별 데미 빌리어네어(5억 달러 이상 자산을 가진 부자) 인구’ 보고서의 ‘사치품투자지수(Luxury Investment Index)’ 분석에 따르면 부호들의 주요 투자 대상 가운데 클래식 카는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자동차보험 회사 해거티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클래식 카 거래 시장은 300%가 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도 미약하긴 하지만 클래식 카 시장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클래식 카 시장이 잘 형성돼 있는 유럽·북미·일본 등의 나라처럼 시장 규모가 크거나 통용되는 기준이 잘 정립된 상황은 아니지만 마니아 층이 늘면서 조금씩 기준이 정해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클래식 카의 기준은 1990년 이전 출시된 차들이다. SK엔카닷컴과 보배드림 등 중고차 쇼핑몰을 중심으로 거래 시장이 형성되고 있고 클래식카코리아와 같은 동호회를 통해 시세 등과 같은 정보들이 공유되고 있다.

거래 건수도 조금씩 늘고 있다. SK엔카닷컴에 따르면 자사를 통해 거래된 1990년 이전 자동차 모델 건수는 20016년 35건, 2017년 49건, 2018년 56건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가장 오래된 연식은 1981년 생산된 자동차로 2017년 거래됐다. 연식에 따른 거래 건수는 오래될수록 물량이 적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한 국내 ‘클래식 카’ 시장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한 국내 ‘클래식 카’ 시장
해외에서 통용되고 있는 1975년 이전에 생산된 클래식 카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하지만 클래식 카 마니아들에 따르면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명차들이 한두 대 존재하지만 누가 언제 어떻게 구입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차들은 일반적인 중고차로 거래되지 않고 소수 마니아 사이에서만 조용히 거래될 뿐이다.

국내 기준인 1990년 이전의 클래식 카 중 SK엔카닷컴을 통해 거래되는 차량 중 가장 비싼 차는 닷지 ‘램 픽업’ 1세대 모델이다. 연식에 따라 가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평균 가격은 8100만원 선이다. 2016년 출시된 램 픽업 차량 가격(약 6000만원)보다 비싸다.

2위는 포드 ‘F150’ 7·8세대(1980~1991년) 모델이다. 거래 평균 가격은 6874만원으로 현재 출시되는 차량 가격과 비슷한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3위는 일본 브랜드인 마쓰다 ‘MX-5 미아타’로 4600만원대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이 차량은 1989년 생산된 경량 스포츠카로 국내에서는 매물 자체가 희귀하다. 4위는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W463(4090만원대)가 차지하고 있고 5위에는 BMW 3시리즈 2세대(3197만원대)가 자리해 있다.

◆클래식 카를 보존하려는 제조사들


최첨단 차량 개발이 가속화되는 가운데서도 자동차 제조사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온 클래식 카를 보존하고 그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단종된 클래식 카의 부품을 공급하기 위해 별도로 센터를 건립하기도 하고 아예 단종된 클래식 카를 다시 생산하기도 한다. 또한 많은 자동차 브랜드들이 그동안 생산해 온 클래식 카를 한데 모아 소비자들에게 소개하며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포르쉐다. 포르쉐는 2017년 5월 독일 주펜하우젠에서 1963년 출시된 스포츠카 ‘Ur-911’의 특징을 그대로 복원한 ‘911 카레라 S’ 모델을 생산했다. 2도어 스포츠카인 포르쉐 911 시리즈는 지난 54년간 3만 번 이상의 모터 스포츠 대회 우승을 일궈낸 것은 물론 현존하는 911 모델의 70% 이상이 여전히 정상 주행이 가능할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난 차량이다.

재규어랜드로버 역시 클래식 카의 복원과 유지를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2013년 ‘스페셜 비히클 오퍼레이션(SVO)’ 부서를 신설하고 영국 코번트리 지역에 2000만 파운드(약 289억원)를 투자해 SVO 테크니컬센터를 건립했다. 2만㎡ 규모의 부지에 설립된 SVO센터에선 150명의 전문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배치돼 차량 개발과 복원에 매달리고 있다.

SVO는 대표적으로 1960년대 영국의 전설적 스포츠카인 ‘재규어 E타입’을 50년 만에 복원하기도 했다. 1963년 당시 18대의 생산 계획이 잡혔던 E타입은 공정상 차질을 빚으면서 단 12대만이 생산됐는데 SVO는 최근 ‘스페셜 GT E타입’이란 이름으로 나머지 6대를 생산해 약속을 지킨 것이다.

벤츠도 자신들의 브랜드 유산을 보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3년 출범한 ‘메르세데스-벤츠 클래식센터’는 더 생산되지 않는 자동차 모델의 순정 부품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제공하고 있는 부품 수만 4만여 종류가 넘고 20년 이상 된 자동차의 부품은 물론 부품 제조업체가 문을 닫아 더 생산할 수 없는 부품들은 아예 새로 만든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지난해 본사의 첨단 복원 능력과 부품 수급 능력을 바탕으로 ‘추억도 애프터서비스가 되나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클래식 카 복원 과정 공개를 통해 클래식 차량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자 했던 이 프로젝트에서 차범근 전 국가대표 축구 감독이 독일에서 선수로 뛰던 시절 소유했던 ‘지바겐(GE 230, 1989년형 모델)’을 복원해 국내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이 밖에 미국 포드가 최근 출시한 ‘GT 66 헤리티지 에디션’은 1966년 열린 국제 모터 스포츠 대회에서 1~3위를 모두 휩쓸어 유명세를 떨친 ‘포드 GT40 마크 2’를 복원한 모델이다. 1996년 대회 당시 레이스 카의 등번호인 ‘2’를 보닛과 문짝에 새겼고 GT40 마크 2에 적용됐던 이중 줄무늬 문양 등의 디자인 요소도 가미해 외장과 특징을 고스란히 재현했다는 평가다.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한 국내 ‘클래식 카’ 시장

◆돋보기 - 클래식 카를 한눈에 보고 싶다면 ‘이곳’으로

국내에도 세계 유명 클래식 카를 만나볼 수 있는 장소들이 있다. 인제스피디움 클래식 카 박물관이 대표적이다. 2017년 12월 개관된 이 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클래식 카 박물관으로, 1960~1990년대의 네오 클래식 자동차를 전문으로 전시한다.

박물관은 약 991㎡(300평) 규모로 꾸며져 있고 딱정벌레 차로 불리는 독일 국민차 폭스바겐 ‘비틀’, 피에스타 옐로 색상의 ‘로버 미니’, 영국을 상징하는 색상인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로버 미니’ 등 소형 클래식 카들이 전시돼 있고 미니 탄생의 자극제가 된 BMW ‘이세타’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빨간색 컨버터블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 1세대 ‘듀에토고’, 3세대에서 가장 적게 생산된 ‘콰드리폴리오 베르데’ 등 영화 등장으로 익숙한 명차는 물론 영국 스포츠카 명문 로터스의 ‘에스프리’와 미국 캐딜락의 최상위 럭셔리 쿠페 ‘엘도라도’, 다임러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100대 한정으로 생산된 희소 차량 ‘더블 식스’ 등을 실물로 볼 수 있다.
제주도에서도 프랑스의 역사를 품은 클래식 카들을 만날 수 있다.

2018년 문을 연 푸조시트로엥 제주도 자동차 박물관인데, 이곳은 국내 자동차업계에서 최초로 지은 자동차 관련 박물관이다. 게다가 두 브랜드의 본국인 프랑스 이외의 지역에 처음 세워진 자동차 박물관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이곳에는 약 80년 전인 1934년 생산된 시트로엥의 ‘트락시옹아방’ 실물이 전시돼 있고 세계 최초로 대량생산된 전륜구동 자동차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또한 푸조의 자동차 역사를 품고 있는 ‘153BR 토르피도’, ‘201C 세단’, ‘401D 리무진’, ‘601세단’ 등 지금은 쉽게 보기 힘든 모델이 한데 모여 있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2호(2019.04.29 ~ 2019.05.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