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 커피 등 블록체인 활용 생산, 유통 이력 제공 늘어…문제는 기록이 아니라 식품 자체
블록체인이 식품 안전의 완벽한 해결책 될까?
(사진) 스타벅스는 커피콩의 유통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의장. / 한국경제신문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블록체인의 계절이 바뀌고 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의 가격이 회복세에 접어들었고 글로벌 기업들의 블록체인 행보도 눈에 띄게 늘었다. 블록체인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는 ‘무엇을 해도 통하는 여름’이 ‘아무리 해도 되는 일이 없는 겨울’보다 분명히 좋다.

하지만 황량한 겨울도 나름의 미덕을 품고 있듯이 풍성한 여름에도 위험은 있다. 무엇보다 짧은 시간 안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가 많은 문제를 방치하게 한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선전해 주는 청사진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겨울이라면 눈에 보이는 증거를 들이밀어도 꼼짝 하지 않았을 비판적인 사람들도 여름에는 ‘만병통치약’을 쉽게 선택한다. 모두가 같은 희망을 가지면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피라미드식 팽창의 한가운데서 냉정함을 유지하며 옥석을 분별하기는 쉽지 않다.

블록체인은 많은 것을 바꿀 혁신 기술이 분명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과 같은 일들이 당장 이뤄질 것이라는 식의 과장이 너그럽게 수용된다. 일반인들이 아직 신기술의 원리와 한계에 익숙하지 못한 때문이다. 식품 안전과 관련해 블록체인이 완벽한 해결책인 것처럼 제시되고 있지만 그 꿈에 도달하기까지는 많은 조건들이 갖춰져야 한다.


◆2025년 20% 식품 기업 블록체인 도입 전망

세계적인 시장조사 회사 가트너는 최근 세계적인 식품 기업들 중 20%가 2025년까지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해 식품의 품질 보증을 제공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가트너는 기록을 바꿀 수 없는 블록체인이 식품의 유통 과정을 추적하는 데 이상적인 해결책이라고 평가했다. 블록체인을 활용해 식품 안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글로벌 회사는 바로 IBM이다.

IBM은 네슬레를 비롯한 세계적인 식품 회사들과 함께 1년 반의 시험 운행 과정을 거쳐 2018년 10월 식품의 이력을 추적하는 블록체인 ‘식품안전생태계(Food Trust Ecosystem)’를 출범했다.

올해 4월 네슬레와 까르푸는 소비자가 까르푸 매장에서 으깬 감자의 포장지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매장에까지 이르는 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고 공동 발표했다. 감자를 생산한 농부와 생산 날짜, 저장 시간과 창고 위치 등을 제공한다. 미국 식품·의약품 체인 앨버트슨컴퍼니도 IBM의 생태계에 합류했다. 이 회사는 블록체인이 로메인 상추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투명하게 추적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5월에는 에콰도르에 본사를 둔 SSP(Sustainable Shrimp Partnership)가 IBM의 생태계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에콰도르의 11개 새우 양식 어장에서 생산되는 새우를 미국 시장에 공급한다. 이 회사는 블록체인을 통해 프리미엄 새우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프리미엄 새우를 구입하는 소비자가 포장지의 QR코드를 스캔하는 것만으로 어장과 양식 방법 등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의 주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지난해에는 IBM의 식품 안전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유니레버와 영국 슈퍼마켓 체인 세인즈베리가 ‘말라위 농부를 돕는 법’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하기도 했다. 말라위 농부들에게 안전한 농법을 교육하고 이렇게 생산된 차를 소비자에게 비싼 값에 판매한다. 소비자는 신뢰할 수 있는 건강한 차를 좋은 가격에 구입하고 차를 재배하는 말라위 농부들은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게 되므로 지구 환경과 영세 농부 그리고 소비자 모두에게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스타벅스도 블록체인을 이용해 커피콩의 생산과 유통 이력을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스타벅스의 블록체인 파트너는 마이크로소프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 블록체인 서비스를 이용하면 커피 농장에서 컵까지의 주요 이력 데이터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 커피 유통 경로에서 발생하는 변경 사항들을 즉시 기록하므로 소비자들에게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스타벅스 기업 이미지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윤리적 소비의 일환이기도 하다. 스타벅스는 38만 개 이상의 커피 농장에서 커피콩을 조달하고 있다. 소비자는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스타벅스가 커피콩 재배자들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분산성은 ‘제도와 정책’에서 나와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영세한 생산자와 윤리적인 소비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블록체인이 변경할 수 없는 기록인 것은 맞지만 그것은 서버가 분산돼 있고 경쟁 관계인 회사들 간에 장부가 공유되고 있을 때다.

블록체인의 분산성은 기술적인 개념이라기보다 제도적이고 정책적인 의미가 강하다. 즉 ‘거대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는 블록체인’이라는 말은 엄밀하게 말해 ‘돈 없는 부자’같은 모순어법이다. 굳이 거대 글로벌 기업을 믿을 수 있었다면 블록체인 따위는 애초에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거대 기업들이 주도하는 블록체인 생태계라도 여러 기업들이 참여한다면 완전하지 않더라도 블록체인이 주는 분산성과 투명성의 이점을 누릴 수는 있다. 문제는 식품의 소비자가 믿어야 하는 것은 식품에 대한 블록체인의 기록이 아니라 식품 그 자체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생산 과정에 대해 정보를 확인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가 마시고 있는 커피가 블록체인에 기록된 그 커피라는 것을 블록체인은 보장하지 못한다. 결국 스타벅스를 믿어야 하므로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좋은 이력이 담긴 QR코드를 떼어다 불량한 새우나 농약으로 범벅이 된 차의 포장지에 붙여도 블록체인 자체는 이를 방지하지 못한다. 이런 기만을 방지하는 기술을 통해 소비자 신뢰를 확보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추가로 지불돼야 한다.

결국 블록체인도 비용이라는 한계 속에 존재하는 현실의 기술이다. 소비자가 신뢰에 대해 얼마만큼의 웃돈을 지불할 수 있는지를 따져볼 때 커피·상추·새우와 으깬 감자에 블록체인이라는 비싼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결론이 블록체인 원론상 더 타당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신뢰하고 싶은 대상이 결국 블록체인을 적용하려는 글로벌 기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런 미묘한 사실을 고려해야만 이번 블록체인 여름을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을지 모른다.

[돋보기] 오라클 문제와 유전자 블록체인

블록체인은 사물을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데 탁월하다. 전자적 코드임에도 복제를 방지하는 능력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식품 안전에 쓰인다면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타당할 만큼 단가가 비싼 농산물이어야 한다. 참치·소·돼지 등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블록체인은 소나 돼지가 태어났을 때나 참치가 잡힌 시점에 개별 코드를 부여하고 이를 토큰화해 현금화할 수 있다. 하지만 유통 과정에서 분해돼 재가공되기 때문에 유통 과정에서 가짜 식품과 뒤섞는 기만이 충분이 가능하다.

현실과 블록체인의 디지털 정보를 연결하는 데서 오는 신뢰 문제를 ‘오라클 문제’라고 하며 사물인터넷(IoT)이나 센서 기술 같은 블록체인 외부의 기술 발달에 의존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특히 참치와 같이 참치의 진부 여부가 문제가 되면 DNA 검사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최종 제품에서 시료를 채취해 DNA 검사 키트에 넣으면 블록체인 기록과의 일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유전체 분석 기술이 가파르게 진보하고 있기 때문에 이 과정도 빠르고 저렴해지고 있으므로 참치를 관리하는 블록체인은 설득력이 있는 기술이다. 국내에서도 마이지놈박스가 최근 유전자 정보를 삽입할 수 있는 블록체인 메인넷을 개발, 완료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4호(2019.05.13 ~ 2019.05.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