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대표 “기술을 가진 기업의 스토리텔링이 주목 받는 시대죠”
‘텐트 폴 세계 1위’ 라제건 동아알루미늄 대표...‘헬리녹스’로 젊은층 사로잡아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히든챔피언.’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당 분야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기업을 말한다. 국내 중소기업인 동아알루미늄(DAC)은 전 세계 텐트 폴 시장점유율 90%를 차지하고 있는 히든챔피언이다.

노스페이스·콜맨·MSR·몽벨·빅 아그네스 등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 텐트 10개 중 9개가 동아알루미늄의 텐트 폴을 쓴다는 의미다.

◆전 세계 180건 특허 보유

“처음부터 세계 최고가 목표였습니다.” 라제건 동아알루미늄 대표는 미국 유학 시절 창업을 꿈 꿨다. 어떤 분야든 세계 최고가 돼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다니던 미국 은행을 그만두고 입국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분야는 제조업이었다.

역사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창업 아이템으로는 ‘알루미늄 튜브’를 택했다.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강도 알루미늄은 워낙 공정이 까다롭고 세분화된 시장입니다. 가격이 비싼 초경량·고강도 알루미늄의 사용 목적은 명확합니다.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가벼워야 하고 밖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튼튼해야 하는 아웃도어 시장밖에 없죠. 그래서 텐트 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미국 회사 이스턴이 세계 텐트 폴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라 대표는 차별화를 위해 텐트 제조 공장과 텐트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관심 있게 들여다봤다. 당시 텐트 시장은 크게 1.5m 내외의 백패킹 텐트와 사람들이 서서 다닐 수 있는 가옥형 텐트로 분류됐다. 가옥형 텐트 폴은 대부분 스틸 소재가 사용됐다. 소재가 가벼울수록 강성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가볍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해요. 하지만 ‘어떻게 가볍게 해야 하느냐’는 길이 꽉 막혀 있었죠.”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은 강도가 높아질수록 깨지는 성질을 갖는다. 더구나 응력부식에 약한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라 대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소재 개발부터 시작했다.

3년간의 개발 끝에 DA17이라는 획기적 알루미늄 폴 제품을 내놓으면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텐트에서 가장 많은 무게를 차지하던 조인트(폴과 폴을 직접 연결하는 부분)를 알루미늄 합금으로 대체하거나 아예 없애고 폴과 폴을 직접 결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

시장의 판도를 바꾼 주인공은 1998년 개발한 모델 ‘페더라이트(Featherlite)’다. 탄력이나 강성은 기존 제품과 같지만 무게는 18%나 줄였다. 동아알루미늄은 페더라이트 출시 2년 만에 이스턴사를 몰아내고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당시 주요 브랜드의 부품 90%가 한꺼번에 바뀌는 것은 처음 본다며 업계가 놀랐죠. 아웃도어 브랜드로선 세계 1위 업체에서 이름 없는 수입 부품사로 바꾸는 격이잖아요. 오직 품질과 기술력으로만 승부를 봤습니다.”

라 대표는 이후에도 소재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300번이 넘는 실험 끝에 2006년 새로운 알루미늄 합금 ‘TH72M’을 개발했다. 이 소재는 보잉사 항공기에 버금가는 강도를 갖고 있으면서도 무게가 가볍다. 새로운 소재 개발을 통해 0.4mm의 얇은 튜브를 부러짐 없이 텐트 폴로 상용화했다.

동아알루미늄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국·미국·독일·일본 등지에 180여 건이 넘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자국 제품만 고집하는 미 육군도 동아알루미늄의 폴을 사용한다. 이 회사는 아웃도어 업계 최초로 시속 160km의 바람을 일으키는 풍동 설비도 갖췄다.
‘텐트 폴 세계 1위’ 라제건 동아알루미늄 대표...‘헬리녹스’로 젊은층 사로잡아

◆글로벌 ‘제이크피케이션’ 현상

라 대표는 텐트 폴만 개발하지 않는다. 텐트 구조설계까지 직접 나선다. 그가 지금까지 설계한 텐트만 최소 1000동이 넘는다. 세계 주요 브랜드의 획기적인 텐트는 대부분 라 대표가 설계했다. 이를 두고 외국 바이어들은 라 대표의 영어 이름 ‘제이크’를 따 ‘제이크피케이션’이라고 부를 정도다.

“10년 전 제가 개발한 텐트가 미국 과학 잡지에도 소개됐어요. 동아알루미늄이나 제 소개는 빠지고 텐트 브랜드 직원들이 인터뷰를 통해 설계 원리를 설명했습니다. 본인들이 개발한 제품이 아니라 핵심 기술을 틀리게 말했죠. 당시 부품 업체는 뒤에 숨어 있는 게 당연했어요. 하지만 이제 소비자들이 기술을 가진 기업의 스토리텔링에 주목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가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담했지만 앞에 나설 수 없었다.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업의 숙명이었다. 라 대표는 진정한 세계 1위가 되기 위해 2011년 아웃도어 브랜드 ‘헬리녹스’를 만들었다.

헬리녹스는 1년 뒤 동아알루미늄의 폴을 적용한 캠핑 의자 ‘체어원’을 내놓으며 단숨에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로 거듭났다. 체어원은 850g의 초경량 의자다. 그런데도 145kg의 무게까지 견딜 수 있다. 조립이 간편하고 분해하면 어른 신발 크기 정도다.

2013년 헬리녹스 분사 후 라 대표의 아들 라영환 헬리녹스 대표가 회사를 이어 받았다. 이제는 모회사보다 더 유명한 브랜드가 됐다. 헬리녹스는 분사 후 3년 만에 매출 200억원을 넘어섰고 지난해 매출 279억8189만원을 기록했다. 동아알루미늄의 지난해 매출액 282억4618만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동아알루미늄은 철저히 제조업의 마인드를 가진 회사예요. 하지만 브랜드는 다른 감각으로 접근해야 했죠. 아들 세대는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해외를 다니면서 눈과 몸으로 세계적인 감각을 익힐 수 있었잖아요. 두 브랜드 정체성부터 다니는 직원들까지 모든 게 달랐기 때문에 2013년 분사를 결정했습니다.”

헬리녹스는 분사 후 승승장구했다. 지금까지 레드 닷 어워드를 10번 넘게 수상했다. 슈프림·나이키·칼하트 등 까다롭기로 소문난 글로벌 브랜드와도 여러 차례 협업했다. 라 대표는 이제 헬리녹스의 성장이 동아알루미늄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라 대표는 세계 최고가 되는 꿈을 이뤘다. 하지만 여전히 알루미늄 소재 개발과 텐트 설계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다. 다음 목표는 함께 사는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가 모교를 찾거나 후배 창업가를 만나면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삶의 목표가 정확하게 서야 해요.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왜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하죠. 처음엔 정신없이 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디를 향해 뛰는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6호(2019.05.27 ~ 2019.06.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