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뫼(스웨덴)=이정흔 한경비즈니스 기자 /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말뫼는 인구 30만 명 정도의 스웨덴 남부에 자리한 해안도시다. ‘도시의 얼굴’은 늘 변하기 마련이지만 지난 40~50여 년간 ‘말뫼의 얼굴’은 그야말로 180도 변신에 성공했다. 암울한 분위기가 가득한 ‘브라운 시티’였던 이곳은 현재 ‘그린 시티’로 거듭나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17~21일 스웨덴 말뫼를 찾았다. 말뫼 혁신의 주인공인 일마 리팔루 전 시장을 비롯해 다양한 관계자들, 시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코쿰스 조선소 폐쇄…실업률 22%까지 치솟아
“여기가 바로 120년간 말뫼 지역 경제의 기반이었던 코쿰스 조선소가 있던 자리예요. 혹시 ‘말뫼의 눈물’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요?”
스웨덴에 도착한 뒤 말뫼의 가이드를 맡은 아라빈 씨가 기자를 가장 먼저 안내한 곳은 다름 아닌 옛 코쿰스 조선소 부지였다. 조선소의 외벽은 옛 모습 그대로였지만 내부는 벽들이 부서져 내려앉아 있다. 이 근처에 이른바 ‘골리앗 크레인’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70년대 코쿰스 조선소의 대형 크레인은 ‘세계 최대 조선소’를 지닌 말뫼의 자부심이었다. 그런 코쿰스 조선소가 문을 닫은 게 1987년, 이후로도 이 크레인은 20년 동안이나 무용지물이 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2003년 골리앗 크레인은 ‘단돈 1달러’에 한국의 현대중공업에 팔렸고 크레인이 해체돼 멀리 떠나는 모습을 말뫼 사람들은 눈물로 지켜봤다.
이 ‘말뫼의 눈물’이 최근 국내에서 자주 언급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골리앗 크레인의 새로운 주인이 된 현대중공업은 이후 세계 제1위 조선소로 우뚝 솟았다. 하지만 국내 조선업이 위기를 겪으며 현재 울산에 자리한 이 골리앗 크레인이 지난 2018년 또 다시 멈춰 섰다. ‘말뫼의 눈물’이 ‘울산의 눈물’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렇듯 국내에서는 ‘몰락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이 표현을 현지 가이드가 먼저 언급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가이드로부터 이어진 설명을 들으면서 이 ‘말뫼의 눈물’이라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코쿰스 조선소가 문을 닫은 뒤에 사실 크레인을 판매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워낙 대형 크레인이다 보니 해체 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한국의 현대가 그걸 떠안아 준 셈이었던 거죠. 말뫼에서 골리앗 크레인이 해체돼 나가던 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울었어요. 말하자면 그날 이곳 시민들은 ‘말뫼의 과거’와 일종의 작별식을 가졌던 겁니다. 이제는 정말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모두가 실감할 수밖에 없었죠.”

코쿰스 조선소가 문을 닫을 당시 시청 공무원으로 ‘대책 태스크포스팀’의 책임자였던 크리스터 페르손 말뫼대 교수는 당시의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묘사했다.
“물론 조선 산업 내부에서도 극복해 보려는 노력이 있었죠. 처음에는 ‘오일탱크 선박이 잘 팔리지 않는다면 가스탱크 선박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석유 에너지에 문제가 생겼으니 아마 향후에는 ‘가스’가 새로운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던 겁니다. 코쿰스는 고객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형 가스탱크 선박을 만들었어요. 문제는 이 가스탱크 선박이 완성됐는데 사겠다는 곳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 선박은 꽤 오랫동안 바깥에 정박돼 있었어요. '아, 이 회사가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겠구나'라는 걸 시민들 모두가 그걸 눈으로 지켜본 겁니다.”
모두가 위기의 징후를 감지하고 있었지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에 이 위기가 명확히 보이기까지 대략 5~6년의 시간이 걸렸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돼 갔다. 한때 말뫼의 실업률은 22%까지 치솟았다. 이 도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급속도로 악화돼 갔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덴마크 코펜하겐 등으로 떠나는 사람이 늘었고 도시는 텅텅 비었다. 사람들이 떠나가자 시의 재정도 타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제조업이 무너지며 법인 수입이 감소한 상태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급증할수록 복지비용이 증가하면서 1993~1994년 시의 재정은 거의 파탄 직전 상황에까지 내몰렸다.
◆ ‘골리앗 크레인’에서 ‘터닝 토르소’로…새롭게 바뀐 말뫼의 얼굴
말뫼는 현재 암울했던 과거를 완전히 벗어버리는 데 성공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령화로 몸살을 앓던 이 도시의 평균연령은 36세. 전체 인구의 대략 40%가 29세 미만인 유럽의 대표적인 ‘젊은 도시’로 거듭났다.
말뫼에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95년 무렵부터다. 이때부터 2013년까지 19년간 말뫼시를 이끈 일마 리팔루 전 시장의 역할이 주효했다. 당시 말뫼시의 변화를 이끈 ‘핵심’은 크게 세 가지였다. 외레순드대교, 터닝 토르소와 그 주변의 친환경 주택단지 건설, 말뫼에 우수한 젊은 인재들을 불러들일 대학 설립이었다.
현재 ‘외레순드대교’를 통해 코펜하겐에서부터 말뫼에 도착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20분이다. 이 다리가 건설된 이후 상당수의 사람들이 코펜하겐에서 ‘일하고’ 말뫼에서 ‘거주하는’ 삶을 살고 있다. 물가가 비싼 코펜하겐에 비해 말뫼는 상대적으로 주택 가격이 저렴한데다 생활 물가가 싸기 때문이다. 인구가 ‘떠나가던’ 도시인 말뫼에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데 이 다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독일 등 다른 나라와 연결이 쉽다는 것은 이 도시가 갖고 있는 강력한 지리적 강점이죠. 말뫼를 스웨덴의 작은 도시가 아니라 국경이 없는 유럽이라는 더 큰 지역을 연결하는 도시로 만들 계획이었죠. 중요한 것은 일관되게 ‘친환경’적인 방식을 추진했어요. 지금 이 다리 위를 지나가는 기차는 바이오 연료를 사용합니다. 환경학자들의 얘기를 많이 듣고 이를 반영해 연구하고 자료를 만들어 환경학자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수차례 거쳤죠.”
이와 동시에 버스나 자전거 등의 대중교통 인프라도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버스 시스템을 혁신하며 디젤 버스를 없애고 그 대신 유럽에서 처음으로 ‘친환경 가스’를 사용하는 버스가 지나다니는 도시가 됐다.
외레순드대교를 건너 말뫼로 들어오는 길에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말뫼시 한가운데 높이 솟아 있는 ‘터닝 토르소’다. 세계적 건축가인 스페인의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190m의 초고층 건물로 말뫼 어디서나 한눈에 보인다. 터닝 토르소가 말뫼 시민들에게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골리앗 크레인’이 사라진 말뫼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터닝 토르소의 뒤쪽에는 친환경 주택단지가 조성돼 있다. 한눈에 봐도 각양각색의 색깔에 현대적이면서도 모던한 디자인의 주택들이다. 터닝 토르소를 포함해 이 주택단지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는 100% 친환경이다. 말뫼는 당시 이 지역에 ‘주택 전시회’를 통해 전 세계에 말뫼의 변화를 홍보했다. 페르손 교수는 이와 같은 ‘도시의 새로운 이미지’가 실제로 이 도시에 젊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 일마 리팔루 전 시장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로"
말뫼의 변화에 정점을 찍은 것은 말뫼대 설립이었다. 말뫼를 지식 기반 산업도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들을 불러들일 대학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반대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말뫼 인근에 대학 도시로 유명한 ‘룬드’가 있는데 굳이 말뫼에 왜 새로운 대학이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이미 명문대로 이름이 나 있던 룬드대와 같은 분야에서 경쟁해선 이길 수 없다는 판단에 말뫼대는 ‘교차 응용 학문(cross displinary education)’에 집중하기로 했다. 로저 요한슨 말뫼대 교수가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말뫼에 대학을 설립하자는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것은 1994년이었습니다. 당시 말뫼의 정치인들은 사민당 보수당 가릴 것 없이 대학 설립을 위해 같이 움직였어요. 실제로 보수당은 당시 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게 당론이었는데 말뫼시의 보수당 정치인들은 이와 달리 말뫼시를 위해 대학 설립 추진을 위해 움직였던 겁니다. 이례적인 일이었죠. 그만큼 상황이 절실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이와 함께 대학을 졸업한 젊은 청년들이 말뫼에 뿌리를 내리고 이곳에서 자신들의 혁신을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리팔루 전 시장은 이를 “도시 전체를 젊은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혁신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시험대(testbed)’로 내놓았다”고 표현했다.
“당시 시장으로서 가장 주목했던 일은 말뫼라는 도시가 ‘죽어 있는 도시’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도시’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교통·교육·사회보장 등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도시를 위해 어우러져야 하는 게 너무 많죠. 그런데 이걸 정부가 혼자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도시에서 스스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찾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뭐든 다 해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해 준 겁니다.”
말뫼가 이와 같은 선순환을 만들어 내는 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는 ‘시티센터’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좋은 인재를 양성하는 베이스캠프로서의 역할을 하는 말뫼대는 말뫼시의 가장 중심 지역에 주요 건물들이 배치돼 있다.
이 건물들과 멀지 않은 곳에 ‘밍크(MINC)’가 자리 잡고 있다. ‘말뫼 인큐베이터’라는 뜻의 이 기관은 말뫼에서 스타트업을 하려는 기업가들을 지원해 주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정부 산하 기관으로 100% 정부와 시의 재원으로 운영된다. 4층 건물에 자리 잡고 있는 밍크는 각 층마다 사업 아이디어의 발달 단계에 따라 사무실을 배치하고 있다.

“말뫼 토박이여서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랐어요. 이곳에도 좋은 학교가 있고 스타트업을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 잘돼 있는데 굳이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갈 이유가 없잖아요.”
◆ 정보가 ‘교류하는’ 곳에 혁신이 움튼다
밍크가 자리 잡은 곳에서 몇 발자국 걸어가면 ‘미디어에볼루션시티’를 만날 수 있다. 옛 코쿰스 조선소의 건물 한쪽에 자리 잡은 미디어에볼루션시티는 스타트업과 기업의 ‘디지털 혁신’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실제로도 밍크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연계해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음식·건축 등 전통 산업들에까지 다양한 ‘디지털 혁신’이 요구되면서 미디어에볼루션시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옛 코쿰스 조선소의 낡은 건물 그대로인데 내부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모든 것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유리창으로 된 내부 사무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며 혁신을 꿈꾸는 모습이다. 미디어에볼루션시티의 마그너스 닐슨 최고경영자(CEO)는 이곳에 대해 ‘멤버들이 가능한 한 자주 만나고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며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정부-대학-기업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균형을 이루는 ‘삼각편대’를 강조했다. 혁신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만 말뫼대가 추구하는 방식은 ‘톱다운’보다 ‘보텀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들이 스스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표출하고 이를 정부에 전달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대학은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의 뿌리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곳의 주역은 역시 현장에서 혁신을 만들어 가고 있는 스타트업들이다. 이와 함께 대기업의 참여가 프로젝트의 진행에 매우 빠르고 강력한 동력을 부여해 준다.

둘째는 ‘공유 사무실’로서의 공간이다. 현재 미디어에볼루션시티에 입주해 있는 스타트업 가운데는 직원 5명의 조그마한 규모에서부터 직원 100여 명 규모의 꽤 큰 기업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셋째는 멤버들의 혁신을 돕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업무는 ‘멤버 기업들이 현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보고 답을 얻고 그 답을 해석하는 ‘큐레이터’의 역할이다. 닐슨 CEO는 “기업들을 위해 좋은 큐레이터가 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이 업무를 표현했다.
“우리가 늘 강조하는 것은 ‘우리는 답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에요. 기업들의 혁신을 돕는 일을 하지만 우리가 그 혁신의 ‘답’을 갖고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답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죠. 그 답을 갖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기업들이고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답을 찾아냅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혁신’을 추구하는 방법이죠.”
◆말뫼의 변화를 주도한 이들이 직접 말하는 ‘말뫼의 혁신 비결’은?
외레순드 다리, 터닝 토르소 그리고 말뫼대. 이 세 가지가 말뫼의 혁신을 일으킨 주요 동력이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말뫼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 이 세 가지를 ‘겉모습만 그대로 흉내’낸다고 해서 그 도시에 말뫼와 같은 혁신이 일어날 수 있을까. 진짜 ‘말뫼의 혁신’ 비결은 이 세 가지 핵심 요소, 그 뒤에 숨겨진 무엇인가에 있다는 얘기다. 과거 ‘말뫼의 혁신’을 주도했고 또 현재 이를 이끌어 가고 있는 주역들에게 ‘말뫼의 혁신 비결’을 한 가지씩 꼽아 달라고 했다.
1. 일마 리팔루 말뫼시 전 시장-"계획이 아닌 ‘비전’, 유연해야 한다"

“어떤 도시도 다른 도시의 방법을 그대로 복사한다고 해서 똑같은 성공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각자 저마다의 상황이 다르고 그에 따라 방법이 달라져야 하니까요. 당시 저는 말뫼시의 미래에 대해 어떤 것도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도시가 나아가고자 하는 큰 방향에 대한 ‘비전’을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지 고민했어요. 도시는 박물관이 아니라 살아있는 공간이잖아요. 살아 움직이는 도시에 맞춰 유연해져야만 합니다.”
2. 로저 요한슨 말뫼대 교수-"정부·대학·기업 그리고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끝없는 토론"

“제 기억에 당시 시청 한쪽 벽에 거대한 벽보(textile)를 걸어놓고 모든 시민들이 ‘도시의 혁신 방법’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적도록 했어요. 이곳에서 모은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토론을 거쳐 현실 가능한 것들을 가려내고 구체적인 방향을 설정해 나갔죠. 그 이후로도 정부·대학·기업 그리고 외부 관계자 등의 끝없는 토론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추진력을 얻은 아이디어도 있고 공중으로 사라진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수천수만 번의 토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성과라는 겁니다.”
3.크리스터 페르손 전 말뫼시청 TF 책임자-"시민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게 하라"

4.마그너스 닐슨 미디어에볼루션시티 CEO-"세계와 함께 움직여야 도시의 매력이 산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1호(2019.07.01 ~ 2019.07.0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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