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정치 안 하겠다고 하지만 대선 주자로 나서게 될 것”
vs “사법 개혁 이외 다른 그림 없을 것”

‘문재인 페르소나’ 조국, 법무장관 이후 어떤 길 걸을까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7월 26일 물러난 조국 전 민정수석의 관계를 수식하는 단어가 여러 개 있다. ‘평행이론’, ‘페르소나(분신)’, ‘리틀 문재인’ 등이 대표적이다.

평행이론은 두 사람의 운명이 같은 유형으로 전개되고 삶의 궤적이 비슷할 때 쓰인다. 페르소나(persona)는 ‘가면을 쓴 인격’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스위스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이 실제 자아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파악되는 자아’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영화에서는 영화감독의 분신이자 특정한 상징을 표현하는 배우를 지칭한다.

문 대통령과 조 전 수석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두 사람에게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둘 다 부산에서 출생했다. 변호사(문 대통령)와 법학 교수(조 전 수석) 등 법을 매개로 한 공통점도 있다. 비(非)검찰 출신으로 민정수석을 지냈고 검찰 개혁을 제1 과제로 삼고 있는 것도 닮은꼴이다.

정치권 입문을 꺼린 것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1988년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국회의원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이때 함께 제의를 받은 노무현·김광일 변호사는 그해 13대 국회의원이 됐다. 문 대통령은 이후 정치권의 잇단 러브콜을 받았지만 응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간곡한 요청에 내내 거절하다가 2002년 대선 막바지에 부산시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조 전 수석도 정치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 전 수석에게 2012년과 2016년 총선 출마를 권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조 전 수석은 “정치를 한다는 것은 사자의 심장을 가지고 완전히 벌거벗은 채 대중의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다. (내겐) 그런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문 대통령과 조 전 수석의 인연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 전 수석이 펴낸 ‘진보집권 플랜’을 읽은 문 대통령이 조 전 수석에게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 문 대통령-조국, 정치 입문 꺼린 것 등 공통점 많아

문 대통령은 2011년 펴낸 ‘문재인의 운명’에서 이렇게 썼다. “최근 서울대 조국 교수가 펴낸 ‘진보집권 플랜’이 화제다. 아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중략). 그러나 ‘진보집권 플랜’을 비롯해 모두들 앞으로 진보·개혁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만 논의할 뿐, 그 과제들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조 전 수석에게 함께 행동에 나서자는 의미였다. 이후 조 전 수석은 문 대통령의 ‘운명’, ‘검찰을 생각한다’ 등 북 콘서트에 단골 게스트로 초청받았다. 문 대통령은 북 콘서트에서 “법무부 장관에게 임기 5년 내내 장기적으로 검찰을 개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 (법무부 장관으로) 조국 교수가 어떠냐”고 했다. 일찌감치 조 전 수석을 법무부 장관 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얘기다.

친문(친문재인) 핵심 의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회에서 인사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채 임명된 후보자가 16명에 이르면서 조 전 수석에 대한 검증 책임이 거셌지만 문 대통령이 끝까지 그를 보호한 것은 사법 개혁에 대한 의지 때문”이라고 했다. 조 전 수석은 2017년 5월 취임 이후 민정수석 고유의 업무와 관계없는 현안에 대한 이른바 ‘페이스북 정치’로 야당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문재인 페르소나’ 조국, 법무장관 이후 어떤 길 걸을까
◆ “친문 대선 주자 안 보여…대선에 나올 수밖에”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압력 문제,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 비위 첩보 묵살 의혹 등도 잇달아 터졌지만 조 전 수석은 책임론에서 비켜 갔다. 잇단 인사 검증 실패와 페북 논란 등에도 불구하고 그가 건재했던 것은 대통령과의 돈독한 신뢰 관계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라는 게 여당 의원들의 반응이다.

문 대통령이 조 전 수석을 신뢰하는 이유는 뭘까. 한 여당 중진 의원은 “사법 개혁 적임자라는 것 이외에 강한 충성심 때문”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조 전 수석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에 대해 앞장서 비판했던 것이나 야당을 향한 강한 발언을 쏟아낸 것은 자신 만큼 존재감이나 발언권이 센 다른 참모들이 없으니 총대를 멘 것”이라며 “웬만한 충성심이 없거나 문 대통령의 신뢰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민정수석이라는 타이틀을 떠나 문 대통령 방어막에 나섰고 문 대통령이 이를 용인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2017년 5월 민정수석 취임 이후 항상 여권과 자유한국당 갈등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한국당이 거센 공격에 나서는 것은 문 대통령이 하고 싶은 얘기를 그가 대신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당으로선 조 전 수석에 대한 공격으로 문 대통령에게도 손상을 입힐 수 있다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릴 수 있다. ‘평행이론’이나 ‘페르소나’ 관점에서다.

한국당이 그를 집요하게 공격하고 여권이 적극 엄호에 나서는 이면엔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 싸움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우 한국당 의원은 “조 전 수석은 이미 고도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당은 조 전 수석을 여권의 차기 대선 잠룡으로 꼽고 있고 예봉을 먼저 꺾어 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를 잠재적 유력 대선 주자로 보는 대표적인 정치인은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다. 그의 분석이다. “일본 문제에 대해 강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인지도가 높아졌다. 정치를 안 한다는 것은 본인 생각이다. 상황이 바뀌면 나올 수밖에 없다. 법무부 장관 기용은 대선 후보로 염두에 둔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내년 1월 법무부 장관을 던지고 총선에 출마하고 대선에도 나올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승리를 위해 조 전 수석을 총선에서 부산·경남을 이끌 젊은 지도자로 생각하고 있다.”

여권의 의견은 분분하다. 여당의 수도권 중진 의원은 “문 대통령이 조 전 수석에게 정치를 권할 생각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두 사람 모두 사법 개혁 완수 이외의 다른 그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친문 진영에선 ‘문재인 페르소나’로 불리는 그가 선거에서 출마 또는 여당 승리를 위한 선봉, 구심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이낙연 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등 현재 거론되는 여권의 주요 대선 주자 가운데 뚜렷한 친문 주자가 보이지 않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친문 진영의 한 의원은 “문 대통령과 조 전 수석은 대선을 염두에 둔 플랜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유력 대선 주자라도 언제든지 낙마할 수 있는 만큼 대선 후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상황이 조 전 수석의 뜻과 관계없이 그가 대선에 나서게끔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문 대통령도 처음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결국 대통령이 됐다”며 “조 전 수석도 여권의 선거 필승 전략이 우선시되면 정치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당 내에서는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비문 측의 한 의원은 “조 전 수석이 정권의 상징처럼 부각된 상황이 여권으로선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그가 총대를 멘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사법 개혁의 성공과 실패가 문재인 정권의 성공과 실패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5호(2019.07.29 ~ 2019.08.0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