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금리 낮고 정부 정책 기조에도 맞아 [헌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신한금융지주가 7월 30일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5억 달러(6052억원) 규모(만기 10년 6개월)의 외화 지속가능채권을 한국 금융지주사 최초로 발행했다. 지속가능채권은 저소득층과 중소기업 지원 등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소셜 본드, 환경 개선과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하는 그린본드가 결합된 특수목적 채권이다.
이는 국내 금융지주사가 지속가능채권을 발행한 첫째 사례다. 발행 금리는 미국 국채 5년물 금리에 150bp(1bp=0.01%포인트)를 가산한 수준인 3.34%다. 신한금융지주는 이를 그룹 차원의 중·장기 친환경 경영 비전인 ‘에코 트랜스포메이션 2020’의 적극적인 추진을 위한 다양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 Environment·Social·Governance) 관련 사업에 활용할 예정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채권 투자에 대한 수요가 증하가면서 정부와 기업들의 채권 발행이 늘어나고 있다.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사회 책임 투자(SRI)를 강조한 ESG 채권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ESG는 기업의 재무적인 부문뿐만 아니라 비재무적인 요소인 환경·사회·지배구조의 건전성을 기준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ESG 관점에 부합하는 용도의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되는 게 ESG 채권이다. 그린본드와 소셜본드 그리고 두 개의 성격이 결합된 형태인 지속가능채권 등이 여기에 속한다.
ESG 채권시장은 주요 국가와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힘입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1~5월 글로벌 ESG 채권 발행금액은 1240억 달러(150조14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50% 증가했다. 지난해 총발행금액(2080억 달러)의 60%를 채웠다.
HSBC에 따르면 갈수록 잦아지는 기상이변과 자연재해로 사람들의 위기감이 커지면서 지속 가능한 경제와 ESG 금융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ESG에 대한 투자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제는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에서 ESG 채권 금리가 일반 회사채보다 낮게 결정되는 게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발행 기업이 더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ESG 채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포용적 금융 역할을 강조해 온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사회적 투자와 친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정책 방향에 발맞춘다는 점에서 금융 공공 기관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발행되고 있다. KDB산업은행은 지난해 5월과 10월 각각 3000억원 규모의 녹색채권과 사회적 채권 발행을 추진한 데 이어 이달 들어 4000억원 규모의 원화 ESG 채권 발행에도 나섰다. 2017년 3억 달러(3600억원) 규모의 녹색채권 발행까지 감안하면 최근 3년간 국내 ESG 채권 발행을 주도했다. IBK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도 3000억~3500억원 정도의 ESG 원화 채권을 내놓았다 글로벌 투자자에게 인기 끄는 ESG 채권
ESG 외화채 발행도 인기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한국 채권 투자에 대한 니즈가 크기 때문이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 기관이 발행한 외화 채권은 54억 달러(6조5378억원) 수준이다. 외화 채권의 발행 주체는 기존 국책은행과 공공 기관에서 일반 은행과 일반 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책은행은 외화 채권 발행을 통해 외화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와 발전 자회사도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를 위해 그린본드를 꾸준하게 발행하고 있다.
일반 은행들은 자본 확충과 외화 유동성 관리를 위해 외화 채권 발행에 나서고 있다. 은행별로 보면 우리은행은 5월 대만 자본시장에서 4억5000만 달러(5449억원) 규모의 포모사 지속가능채권을 발행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대만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우리은행의 재무 성과와 지속가능채권 인증 획득을 적극적으로 설명했고 총 54개 기관이 발행금액 대비 2.4배인 11억 달러(1조3319억원)의 투자 의사를 밝혔다”며 “시중은행에서 발행한 포모사 채권 중 역대 최저 금리로 발행함으로써 향후 한국물 포모사 채권 발행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4월 4억 달러(4843억원) 규모의 ‘지속가능발전 목표 후순위 채권’ 발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8월 그린본드와 올해 4월 지속가능채권을 발행하는 등 ESG 관점의 SRI에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 역시 지난해 10월 은행권에서는 처음으로 3억 달러(3632억원) 규모로 외화 지속가능채권을 발행했고 이어 올해 1월 4억5000만 달러(5448억원) 규모로 재차 발행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번 발행을 통해 자본 확충을 위한 새로운 조달원 확보와 사회적책임투자자(SRI)를 포함한 투자자 다변화에 성공했다”며 “이번에 조달된 자금을 작년 9월 제정한 지속가능 금융 관리 체계에 해당하는 친환경·사회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운용하고 관련 차입금 상환 등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KEB하나은행도 올 1월 6억 달러(7264억원) 규모의 외화 지속가능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KEB하나은행은 “최적의 자금 조달 기회를 확보하고 사회적 가치 투자자 등 투자자를 다변화하기 위한 본연의 목적”이라며 채권 발행 이유를 설명했다.
일반 기업도 ESG 채권 발행에 나서는 중이다.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공장 등 시설 투자 목적으로 그린본드(4년 만기 5억 유로, 5.5년 만기 5억 달러, 10년 만기 5억 달러)를 발행했다. 미래에셋대우는 일반 선순위 채권(3억 달러) 발행 외에 SRI(3억 달러) 채권을 발행해 재생 가능 에너지 개발과 친환경 건물 취득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롯데물산은 7월 3억 달러(3632억원) 규모의 ESG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이 채권은 지속가능채권 형태로 발행된다. 롯데물산은 채권 발행 자금을 친환경 건물로 인증 받은 롯데월드타워 건설 자금 차환과 해외투자 등에 활용할 전망이다.
정부도 외평채로 SRI 채권 발행
한국 외화채권은 최근 높은 신용도를 바탕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실제로 발행 만기가 장기화되고 있다. 그만큼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는 의미다. 현재 한국 외화 채권 발행 만기는 ESG 채권을 중심으로 3~5년의 중·단기 구간에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6월 정부가 10년 만기 외평채 발행에 성공하면서 10년 만기 이상의 외화채권 비율이 13%까지 확대됐다.
정부가 6월 발행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은 주목할 만한 사례다. 정부 단위에서 SRI 채권을 포함한 ESG 채권을 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국환평형기금 중 일부가 한국투자공사(KIC) 투자금 등에 활용된다는 점에서 ESG 채권 발행 요건을 갖췄다. KIC는 친환경 건물 등에 대한 투자를 진행할 수 있어 ESG 사용 요건에 부합한다. 2016년 폴란드를 시작으로 프랑스·피지·나이지리아·벨기에·리투아니아 등에서 소버린(국가) 그린본드가 발행된 적은 있었지만 SRI 채권은 없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번 외평채 발행은 SRI 채권 형태로 발행된 5년물과 일반 채권 형태로 발행된 10년물에 각각 18억 달러(2조1789억원), 30억 달러(3조6306억원)의 주문이 들어왔다. 정부는 발행 규모를 5년물과 10년물 각각 5억 달러, 10억 달러(1조2102억원)로 확정했다.
발행 가산 금리(스프레드)는 5년물과 10년물 각각 미국 국채 금리에 30bp(1bp=0.01%), 55bp를 가산한 수준에 확정했다. 이번 발행으로 정부는 역대 최저 가산금리를 달성한 것은 물론 최저 비용 조달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민정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속 가능 성장과 사회적 책임 강조로 ESG 채권 발행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월 정부가 소버린 최초로 그린·지속가능채권 발행에 성공해 벤치마크 역할을 수행했다”며 “이에 따라 공공 기관부터 일반 은행과 일반 기업까지 ESG 채권 발행 주체가 더욱 다양화되고 발행 규모도 활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awlli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7호(2019.08.12 ~ 2019.08.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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