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장 꿈꾼 형, 핵심 기업 내놓고 퇴진
- 동생은 ‘한 우물 경영’으로 재계 55위에 안착
금호家 형제의 난 10년…박삼구·찬구 형제의 엇갈린 운명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10년이라는 시간이 두 형제의 평가를 뒤집어 버렸다. 둘 사이가 ‘앙숙’ 관계이기에 이 평가는 더 잔인하다.

10년 전만 해도 형은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로 사세를 확장시키며 재계를 호령하는 최고경영자(CEO)로 칭송받았고 동생은 형에게 ‘새가슴’이라는 핀잔을 듣는 그저 그런 CEO로 인식됐다.

하지만 지금의 평가는 180도 바뀌었다. 동생은 뚝심 있는 ‘한 우물’ 경영으로 견조한 실적을 올리는 기업을 만들어 낸 CEO가 됐고 형은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경영 일선에서 퇴진했다.

바로 금호가(家)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의 이야기다.

◆ 180도 바뀐 평가, 실적에 ‘웃는’ 박찬구
금호家 형제의 난 10년…박삼구·찬구 형제의 엇갈린 운명
2009년 발생한 ‘형제의 난’ 끝에 갈라선 박삼구 전 회장과 박찬구 회장의 희비가 엇갈리는 양상이다. 이들 두 박 회장은 금호그룹 고(故) 박인천 창업자의 3남·4남이다.

형 박삼구 전 회장은 2009년 워크아웃 후 그룹을 재건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지만 결국 유동성 여파로 퇴진한 반면 박찬구 회장은 자신이 이끌고 있는 금호석유화학그룹의 실적 개선을 통해 경영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년에는 두 기업의 순위도 역전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기업집단(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현황에 따르면 한때 재계 순위 7위까지 올랐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총자산 11조4000억원으로 올해 재계 순위 28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아시아나항공(자산 6조9250억원) 매각을 결정하면서 이제는 60위권 밖 중견기업으로 축소가 불가피해졌다.

또한 영위 사업은 건설·고속·레저에 그치게 된다. 아시아나항공이 제외되면서 그룹 총자산은 4조원대로 위축되고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기준(10조원)과 공시 대상 기업집단 기준(5조원)에도 못 미치게 된다. 특히 지난해 재계 순위 60위를 기록한 한솔(5조1000억원)보다 자산 규모가 쪼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연결 기준으로 계산하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받는 타격은 더욱 크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매출과 자산 규모는 각각 7조1834억원, 8조1911억원이다. 그룹 전체로 볼 때 매출은 74%, 자산은 71%다.

반면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총자산 5조8000억원을 보유하면서 재계 순위 55위에 올랐다. 특히 금호석유화학은 업황 부진 속에서도 견조한 실적을 올리며 안정적으로 사세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에도 업황이 부진했지만 금호석유화학은 7년 만의 최대 실적인 매출액 5조5849억원을 올렸고 영업이익도 5546억원으로 전년 대비 111%나 급증했다.

올해 역시 분위기가 좋다. 지난해 실적의 절반 수준을 이미 상반기에 달성했다. 금호석유화학의 상반기 매출액은 2조5722억원, 영업이익은 2831억원에 달한다.

대내외 악재로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케미칼 등 유사한 포트폴리오를 지닌 화학 업체들의 동반 부진이 예상되는 가운데 유독 금호석유화학만이 상승세를 이어 갈 것으로 예상되는 데 대해 업계는 그간 꾸준히 주력으로 삼아 온 합성고무 부문이 실적의 견인차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두 기업에 대한 기업 신용 평가 기관의 평가도 뒤집혔다. 올해 한국신용평가는 금호석유화학의 신용 등급을 ‘A-(긍정적)’에서 ‘A(안정적)’로 한 단계 높였다. 아시아나항공(BBB-)과는 4등급 차이로 벌어졌다.

금호석유와 아시아나항공은 2015년 그룹 계열 분리 때만 해도 신용 등급이 각각 ‘A-’와 ‘BBB’로 2단계가 차이 났다. 하지만 이후 두 형제의 다른 경영 방식은 현재 신용 등급이 4단계로 벌어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

◆ 사세 확장 vs 한 우물, 결과는 ‘한 우물’
금호家 형제의 난 10년…박삼구·찬구 형제의 엇갈린 운명
박삼구 전 회장과 박찬구 회장의 경영스타일은 ‘극과 극’이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삼구 전 회장은 ‘공격적·진취적’인 반면 박찬구 회장은 ‘우직·묵묵한’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승자의 저주’로 불리는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 책임을 놓고 두 회장이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박찬구 회장은 ‘대한통운 매각을 통해 그룹 재무 건전성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박삼구 전 회장은 ‘경영자(박찬구)가 그릇이 작다’며 무시해 두 형제간의 골이 깊어졌다.

상반된 경영 스타일로 두 형제가 다툼을 시작하는 와중인 2009년 결국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이들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이듬해 박삼구 전회장은 건설과 항공 부문을, 박찬구 회장은 석유화학 부문을 각자 나눠 맡아 분리 경영을 시작했다.

박찬구 회장은 독립 경영을 시작하면서 확고한 경영 스타일을 선보였다. 재무 건전성에 중점을 둔 한 우물 경영이었다.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을 2012년 자율협약에서 졸업시킨 이후 지난해 말 통상 제조업의 양호한 부채비율로 여겨지는 ‘100% 이하’를 달성했다.

또한 박찬구 회장은 매년 기록하는 순이익 중 못해도 절반은 잉여금으로 차곡차곡 쌓았다. 이렇게 쌓인 잉여금은 지난해 말 1조9246억원이 됐다. 자율협약 첫해였던 2010년 당시 잉여금인 4714억원보다 4배 이상 늘어났다.

물론 박삼구 전 회장도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문제를 아예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광화문 사옥 매각과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하고 있던 CJ대한통운 그리고 대우건설의 잔여 지분까지 모두 매각했다.

그러면서도 인수·합병(M&A)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2017년 박삼구 전 회장은 재무적 투자자를 유치해 금호타이어를 다시 품기 위해 인수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인수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포기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조7000억원대에 이르는 아시아나항공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매각에 나서는 처지가 됐다.

◆ [돋보기] 무너진 ‘호남 최대 재벌’ 금호
금호아시아나그룹 앞에는 ‘호남 최대 재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고(故)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자가 미제 택시 2대를 갖고 광주택시(1946년) 회사로 시작해 광주여객(현 금호고속·1948년), 죽호학원(1959년), 삼양타이야공업(현 금호타이어·1960년), 한국합성고무공업(현 금호석유화학·1971년), 금호실업(1976년), 금호문화재단(1977년), 아시아나항공(1988년) 등 굴지의 기업들을 일으키며 거대한 그룹을 만들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무리한 인수·합병(M&A)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 형제의 난 등으로 그룹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이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기업집단 재계 순위 37위인 중흥건설 (총 자산 9조5000억원)에 호남 최대 재벌이라는 수식어를 넘겨줘야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4호(2019.09.30 ~ 2019.10.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