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 한국·독일 등 데스크톱용 CPU ‘1위’

- 2014년 1달러까지 추락했던 주가 800% 상승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1969년에 실리콘밸리 신생 기업으로 설립된 AMD는 첨단 반도체 제품에 주력하며 수십 명의 직원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직원 1만 명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고 그동안 많은 업계 최초를 달성했습니다. 초기 엔지니어링 경력 때부터 오늘날까지 저는 반도체 기술의 영향력과 미래의 잠재력에 여전히 놀라고 우리가 이룩한 이 길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만년 2등’의 역습…인텔 밀어낸 AMD와 ‘리사 수’ 매직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가 AMD 창립 50주년을 맞아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말이다. 2014년 10월 그가 ADM의 CEO로 취임한 이후 AMD의 주가는 800% 이상 뛰었다. 한때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았던 AMD는 최근 인텔을 위협하는 강력한 경쟁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만년 2위 사업자에서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선 AMD의 스토리에는 혁신적인 제품 그리고 수 CEO의 리더십이 자리한다.

수 CEO는 또한 “AMD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어렵고 흥미로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성능 컴퓨팅과 시각화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며 “반도체 산업에 가장 좋은 때는 없다. AMD는 우리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는 고성능 컴퓨팅과 그래픽 솔루션으로 향후 50년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라이젠’ 이후 CPU 시장의 지각변동
AMD는 1969년 설립된 미국의 반도체 회사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스타트업으로 시작했다. 중앙처리장치(CPU) 부문에서 인텔, 그래픽처리장치(GPU) 부문에서 엔비디아와 경쟁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중반까지는 CPU 시장의 강자로, 인텔과 시장을 양분하기도 했다. 1972년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고 2006년 그래픽 카드 생산 업체 ATI를 인수·합병(M&A)하면서 본격적으로 GPU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경쟁사와 점유율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인텔이 ‘코어2 프로세서’라는 제품으로 존재감을 보인 반면 AMD는 제품 경쟁력에서 밀려나고 오랜 기간 신제품 없는 공백기를 가지면서 시장에서 점차 잊혀 갔다. 특히 2011년 ‘불도저 마이크로 아키텍처’ 설계 방식에 기반한 제품이 과한 발열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글로벌 CPU 시장점유율이 한 자릿수대로 떨어졌다. 주가는 1달러대까지 추락했다. 2012년 11억8000만 달러(약 1조4000억원)의 순손실을 내는 등 실적도 크게 악화됐다.

PC 부문에서는 제품 라인업이 부진한 데다 모바일 부문에서도 뼈아픈 선택을 했다. 2010년 이후 정보기술(IT) 트렌드를 모바일이 주도할 때 시장의 성장세를 읽지 못하고 ATI의 모바일 그래픽 사업부를 퀄컴에 팔아버렸다.

반전 스토리는 수 CEO가 구원투수로 투입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가 2012년 총괄부사장에 선임되고 2년 뒤인 2014년 사장 겸 CEO에 오르면서 AMD의 기술혁신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대만 출신의 수 CEO는 두 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고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공학박사로, 공학적 전문성과 기업 전략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IBM에서 12년간 일하면서 40편 이상의 반도체 관련 논문을 발표하고 다수의 특허를 출원하는 등 이력을 쌓아 왔다.

수 CEO의 전략은 부진하던 사업 부문을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7%에 달하는 인력 감축으로 회사의 안정화를 꾀했다. 또한 게임기용 가속처리장치(APU)를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에 납품하고 거기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연구·개발(R&D)에 쏟아부었다. 비주력 사업은 철수하는 대신 주력인 CPU 개발에 매진한 것이다.
‘만년 2등’의 역습…인텔 밀어낸 AMD와 ‘리사 수’ 매직
서버용 CPU에서도 인텔에 맞서는 중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2017년 출시된 ‘라이젠’ 시리즈다. 새로운 ‘ZEN마이크로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라이젠은 가격과 성능 면에서 시장의 파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ZEN마이크로아키텍처는 확장성 있는 구조를 갖고 경쟁사에 비해 생산 효율성이 높다. 라이젠 1세대 출시 당시 인텔의 일반 데스크톱용 CPU는 4코어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AMD는 8코어 제품을 데스크톱 시장 전면에 내세웠다. CPU 성능의 관건인 코어 수를 최대 8개로 끌어올리면서 멀티태스킹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지난해 2세대 라이젠 이후 올해 7월 7나노(nm) 공정을 최초로 적용한 라이젠 3세대 제품이 출시되면서 수 CEO의 매직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했다. 인텔이 아직 14nm에 멈춰 있는 상황에서 7nm 공정을 사용함으로써 성능과 가격 측면에서 모두 업계 1위를 추월했다. 반도체 공정은 미세화될수록 소비 전력과 발열이 줄어들고 코어를 많이 담을 수 있게 된다. 3세대 라이젠은 30MB가 넘는 고용량 캐시 탑재로 게이밍 성능이 강화됐고 코어 개당 성능(IPC)이 15% 향상됐다. 3세대 라이젠은 현재 12코어 제품까지 출시됐고 조만간 16코어 32 스레드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시장점유율도 반응했다. 독일과 한국 등 일부 시장에서는 1위 인텔을 넘어서기도 했다. 전자제품 가격 비교 사이트 다나와에 따르면 지난 7월 이후 데스크톱용 CPU의 점유율에서 AMD가 5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꾸준히 유지하며 1위인 인텔을 넘어섰다. 독일 시장에서도 60% 이상 점유율을 나타낸다. AMD 본사의 마이클 리아오 마케팅 총괄은 서울에서 9월 10일 열린 AMD 라이젠 미디어 라운드 테이블에서 “일본에서 66%, 한국에서 50%, 필리핀에서 60%의 시장점유율을 달성했고 이 밖에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데스크톱 분야뿐만 아니라 노트북에서도 많은 반적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특히 고전을 면치 못했던 서버용 CPU 부문에서도 데스크톱용 CPU 이상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버용 CPU 부문에서 AMD의 점유율은 2% 미만이었다. ‘옵테론’으로 2006년 당시 20% 초·중반 수준을 기록하던 서버용 CPU는 데스크톱용보다 더 큰 폭으로 추락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신제품 ‘2세대 에픽 프로세서’ 이후 인텔의 독점 체제를 흔들며 반등을 노리고 있다. 지난 8월 7일 출시된 2세대 에픽 프로세서는 최첨단 7nm 공정 기술을 기반으로 제작됐고 내부에는 최대 64개의 ‘젠2’ 코어가 탑재돼 기술적 우위와 성능을 자랑한다. 특히 서버용 CPU는 데스크톱용 CPU에 비해 수익성이 약 10배 높아 AMD에서도 미래 성장성을 크게 바라보는 분야다.

수 CEO는 AMD에서 ‘프레지던트 리사 수(President Lisa Su)’가 아닌 ‘닥터 리사 수(Dr. Lisa Su)’로 불리고 있다. 기술혁신의 리더로 입지를 구축하면서 세계 IT 무대에서 대우를 받는 중이다. 올해 가전 전시회(CES)에서 수 CEO는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AMD에서는 창사 50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 최대 가전 쇼에서 키노트를 맡게 됐다. 지난 5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전시회 ‘컴퓨텍스 2019’에서도 기조연설을 맡았다.

글로벌 점유율에서는 아직 인텔이 부동의 1위다. 하지만 AMD는 “마켓 리더는 바뀌었다”라고 말한다. AMD 라이젠 미디어 라운드 테이블에서 AMD 관계자들은 “라이젠 1세대부터 3세대까지 꾸준히 기술 발전을 주도해 왔고 인텔이 이러한 발전을 금방 따라온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인텔은 더 이상 마켓 리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직 점유율이나 규모 면에서는 2위이지만 기술 리더십만큼은 앞섰다는 취지의 설명이다. AMD는 CPU 성능뿐만 아니라 그간 앞서지 못했던 인터페이스 표준 측면에서도 3세대 라이젠 출시와 함께 업계 최초로 PCI(Peripheral Component Interconnect) 익스프레스 4.0 규격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아키텍처의 CPU 출시 이후 암흑기를 넘어 파죽지세의 스토리를 써가고 있는 AMD의 상승세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올해는 특히 서버용 CPU 부문에서 아마존·구글 등 글로벌 큰손들이 AMD의 제품을 채택하면서 기회의 땅이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반응은 뜨겁다. AMD코리아 관계자는 “2017년 이후 새 제품이 나왔다면 올해는 크게 도약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데스트톱용 CPU 점유율이 50% 이상으로 상승한 데 이어 출시를 앞둔 서버용 CPU 신제품으로 성장세가 기대돼 과거의 전성기를 뛰어 넘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4호(2019.09.30 ~ 2019.10.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