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019 기업 문화 혁신 리포트]
- 20~50대 직장인 400명 설문…‘일방적 소통’ ‘답정너’ 리더 문제- 기업 문화 혁신 잘하는 기업은 삼성, LG, SK, 네이버 순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기업들이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 창의적인 팀을 꾸리기 위해 전에 없던 시도에 나선다.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기업들의 위기의식과 불안감은 구성원들의 창의성 독려와 이를 위한 업무 환경 조성으로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촉구한다. 일하는 방식의 혁신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필수 원칙으로 꼽힌다.
직장인 93.5% “조직 문화 바꿔야”...가장 필요한 혁신은 ‘근무시간 유연화’ 31.8%
한경비즈니스는 20~50대 직장인 400명(남녀 각 200명)을 대상으로 ‘기업 조직 문화 혁신’에 대해 물었다. 기업 문화에 대한 전반적 인식을 파악하는 한편 지금 필요한 기업 문화의 조건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조직 문화의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서부터 혁신에서 중요한 가치, 효과적인 개편 방식, 바람직한 리더의 역할 등에 대해 의견을 구했다.
조직 문화 혁신 ‘필요하다’…93.5% 응답
먼저 직장인들은 조직 문화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데 압도적인 응답을 보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세대별로 100명씩, 총 400명에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필요하다(필요 59%, 매우 필요 34.5%)’고 응답한 비율이 93.5%로 다수를 차지했다. ‘불필요하다(불필요 5.3%, 매우 불필요 1.3%)’고 답한 비율은 6.6%에 그쳤다.
이때의 조직 문화는 복지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아닌, 기업에서 일하는 방식을 말한다. 회의와 보고 등 의사소통을 하는 방식, 업무 환경의 변화, 일하는 시간의 양과 질을 점검하는 차원이다.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조직 문화=복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한때 ‘신의 직장’을 논하던 시기에는 복지 확대가 중요한 화두였지만 지금 기업들이 추진하는 조직 문화의 핵심에는 ‘자율’이 있다.
‘왜 혁신이 필요한지’에 대해 직장인들은 구성원 의식 변화(36%)와 기존 방식 한계(28.5%)를 우선적으로 꼽았다. 외부 환경 급변(14.25%)도 이유였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제맛이 나듯이 달라진 환경에서는 새로운 원칙이 필요하다. 세대가 달라지고 가치관이 변화하고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는 수직적인 조직 문화와 통제의 법칙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조직 문화를 혁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위계질서와 수직 체계가 공고한 한국 기업의 문화를 바꾸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응답자들은 ‘혁신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기성세대 구성원(30.25%)과 기존 문화의 견고(28.0%)라고 답했다. 경영진의 의지 부족(24.75%)도 한몫을 차지했다.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한 세대가 조직 구성원으로 합류하고 있지만 기존 세대와 문화가 견고하게 맞서며 직장 내 ‘갈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직장인 93.5% “조직 문화 바꿔야”...가장 필요한 혁신은 ‘근무시간 유연화’ 31.8%
기업들이 최근 조직 문화 개편을 고민하는 실질적인 이유에는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박준 대한상의 기업문화팀장은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밀레니얼 세대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소통이 어려워지는 것”이라며 “어떻게 그들은 조직 내에 안착시키고 적응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직급 체계를 바꾸거나 의사소통의 구조를 개편하고 있고 특히 팀원들에게 자율성을 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설문 조사의 결과는 아직 기성세대의 권한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3년간 조직 문화가 개선됐나’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5.8%가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다소 개선(33.5%)이 그 뒤를 이었고 다소 악화(5.8%)도 일부를 차지했다. ‘현재 혁신을 시행 중인지’에 대해서도 61.8%가 ‘없음’, 38.3%가 ‘있음’이라고 답했다.
현실은 ‘자율 복장’으로 낮은 수준에 그쳐
그렇다면 ‘현재 시행 중인 혁신’은 무엇일까. 기업들이 기업 문화 개선을 위해 주로 어떠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는지 물었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필요로 하는 공유 오피스 등 공간 조성과 조직 운영과 업무에 영향을 주는 제도 변화뿐만 아니라 강제성이 없는 캠페인성 활동과 이벤트 등으로 유형을 구분해 다양한 선택지를 마련했다.
기업 조직 문화 혁신은 작은 데서부터 시작된다. 복수 응답을 통한 조사 결과 자율 복장(33.8%), 직원 소통 행사(21.8%), 출퇴근과 점심시간 유연화(20.8%), 기타(17.8%), 사무 공간 리모델링(16.3%), 호칭과 직급 단순화(16.0%), 집중 근무시간(15.0%), 가족의 날(14.3%), 조직 간 경계 허물기(13.8%)의 순으로 비율이 높았다. 조직 개편과 근본적 제도 변화를 통해 업무 효율을 높이는 적극적인 개선보다 자발적 참여에 의존하는 낮은 단계의 조직 문화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기업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조직 문화 혁신이 헛된 구호나 생색내기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실제 조직 구성원들이 필요로 하는 방안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가장 필요한 혁신 방안’에 대해 역시 복수 응답을 받은 결과 직원들은 더 높은 수준의 혁신 방안을 기대하고 있었다. 출퇴근과 점심시간 유연화(31.8%), 조직 간 경계 허물기(31.0%), 인사평가 절대평가 도입(27.0%), 2주 연차 권장(24.3%), 집중 근무시간(22.5%), 직원 소통 행사(22.3%), 호칭과 직급 단순화(22.0%)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선택지, 다른 결과는 ‘효과적인’ 조직 문화 혁신의 조건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 준다.
가치의 우선순위를 밝히는 것도 조직 문화 혁신 작업에 큰 도움이 된다.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에 대해 첫손에 꼽힌 것은 바로 자율(33.3%)이었다. 그다음이 효율(30.8%)이다. 워라밸(18%)과 수평(15.5%)이 그 뒤를 이었다. 기업들이 기업 문화 개선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대개 복지 확충이나 일회성 이벤트에 그쳐 뚜렷한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면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끄는 키워드가 여기에 있다.
‘혁신 성공에 필요한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경영진의 강한 의지(41.5%)로 조사됐다. 결국 최종 의사결정자의 결단과 의지가 없이는 조직 문화 혁신은 명목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직원 참여(32.5%)다. 또 명확한 전략(12.5%)과 비전 공유(6.25%)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혁신 추진을 위해서는 캠페인(12.0%)과 같은 일회성 활동보다 제도 변화(72%)가 더 시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인 93.5% “조직 문화 바꿔야”...가장 필요한 혁신은 ‘근무시간 유연화’ 31.8%
사무 공간 혁신 필요…75.5%
이어 주요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는 사무 공간 혁신과 호칭 단순화, 조직 개편에 대한 직장인들의 생각을 물어봤다. 먼저 사무 공간 혁신에 대해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효과 있다’가 전체의 75.5%(매우 있다 11.5%, 있다 64.0%)로 다수를 차지했다. 또한 ‘가장 필요한 사무 공간 혁신’으로는 카페식 오피스(26.25%)가 첫손에 꼽혔고 이어 자율 좌석제(21.75%)와 1인실(22.75%), 공유 오피스(19.25%)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근 직장 내에서 호칭을 바꾸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호칭 단순화(폐지)의 효과에 대해 응답자의 61.0%가 ‘효과 있다(매우 있다 9.5%, 있다 51.5%)’고 응답했다. 39.0%가 ‘효과 없다(없다 34.25%, 매우 없다 4.75%)’고 응답했다. 선호하는 호칭에 대해서는 ‘님(55.25%)’ 호칭이 으뜸을 차지했다. 매니저(16.25%)가 그 뒤를 이었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새로운 조직 모델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혁신 기업들의 성공 공식을 받아들여 조직적 변화를 꾀하는 전통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ING은행은 2015년부터 조직 구조, 업무 프로세스, 인사 평가, 일하는 방식을 동시에 변화시켜 애자일(agile) 조직을 출범시켰고 이를 통해 상품 개발 속도가 이전보다 10대 이상 빨라지는 성과를 거뒀다. 필립스·다임러와 같은 제조업에서도 애자일 조직을 성공적으로 도입했다.
기동력 있는 조직, 자율적 소단위팀이 새로운 조직 모델의 특징으로 떠오른다. 피라미드 구조를 대체하는 이와 같은 애자일 조직이 필요한지에 대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76.5%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필요 없다’는 의견이 22.6%로 대비를 이뤘다. 애자일 조직을 비롯해 조직 구조 개편과 직급 체계 단순화, 보고 단계 간소화 등은 모두 일하는 방식 중에서도 의사소통의 구조와 관계가 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조직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기민한 대응이 필요하다.
소위 ‘꼰대’는 조직 문화 혁신의 걸림돌이다. ‘리더의 문제점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들은 일방적인 의사소통(27.5%)과 답이 정해져 있는 대화(27.5%)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권위적인 태도(27.0%)도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를 통해 의사소통의 불균형이 일어난다. 한마디로 답정너(답이 정해져 있고 너는 대화만 하면 돼) 스타일의 리더는 조직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바람직한 리더의 역할로는 ‘화합 및 의견 조율(36.75%)’이 첫손에 꼽혔다. 구성원과의 소통(28.0%)도 많은 선택을 받았다. 가장 낮은 응답은 ‘부서 실적 향상(0.75%)’이었다. 많은 리더들이 탁월한 실적과 결과를 내기 위해 총대를 메고 구성원들을 이끌어 간다면 설문 조사 결과는 ‘소통이 먼저다’는 다른 방향성을 촉구한다.
마지막으로 국내 기업 가운데 혁신을 가장 잘하고 있는 기업 혹은 그룹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삼성(23.1%), LG(12.5%), SK(9.8%)가 으뜸으로 꼽혔다.
직장인 93.5% “조직 문화 바꿔야”...가장 필요한 혁신은 ‘근무시간 유연화’ 31.8%
이 밖에 참고할 수 있는 조직 문화 혁신의 조건이 있을까. 대한상의의 ‘기업 문화 혁신에 필요한 6가지 키워드’ 보고서에 따르면 ①원칙의 재정비-변화의 목적과 미래상을 명확히 ②일관되고 지속적인 메시지-단기간 성공을 기대하지 말고 긴 호흡 필요 ③본질과 핵심에 집중-비효율적인 관행과 과감히 결별 ④디지털 기술로 변화를 촉진-자연스럽게 변화할 수 있는 환경과 툴을 제공 ⑤기업문화팀을 조력자로-기업 문화 전담팀에 전폭적 권한 부여 ⑥리더십으로 완성-리더가 혁신의 ‘열외’가 아닌 ‘열쇠’가 돼야 한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7호(2019.10.21 ~ 2019.10.2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