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통합지주사 출범 이후 4년 만에 7000억원 투입
-투자 성과 공유 차원 주가 부양책에 주가 ‘쑥쑥’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SK그룹 지주회사인 SK(주)의 주가가 10월 들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 10월 1일 자사주를 장내 매입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다.

SK(주)는 이날 주가 안정과 주주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자기주식(보통주) 352만 주를 7180억8000만원에 취득한다고 공시했다.

공시 당일 SK(주)의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9.8% 오른 22만4000원에 거래를 마감하며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후 상승세를 이어 가면서 10월 17일 종가 기준 24만3000원까지 올랐다. 자사주 취득 공시 이후 주가가 19.1% 껑충 뛰었다.
‘투자형 지주회사’ SK, 자사주 매입으로 수익 공유 시동
◆주요 자회사 4분기 실적 큰 폭 상승 전망

증권가에서는 2015년 통합지주회사 출범 이후 한 차례 자사주를 매입한 뒤 4년 만에 이뤄진 주주 환원 노력에 시장이 적극 화답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주사 차원의 여러 성장 관련 이벤트가 예상대로 진행 중임에도 주가가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주주 가치 제고 차원에서 자사주 매입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자사주 보유 비율이 20.7%에서 25.7%로 높아짐에 따라 배당 여력이 커진 만큼 SK(주)는 주주들에게 주당 6.7%의 배당금을 더 지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K(주)는 자체 사업 포트폴리오 등이 다양해 투자형 지주사로 불린다. 하지만 최근 대외 경제 여건 악화 등으로 주가가 조정을 겪었다. 증권가에서는 SK(주)의 주가 조정을 두고 ‘과도한 하락’이라고 입을 모아 왔다.

SK(주)는 상장 자회사들의 실적 회복과 비상장 자회사들의 기업 가치 상승 등 기초 체력이 탄탄하고 호재도 많아 지주사 종목 중 대표적인 ‘저평가 우량주’로 꼽혔다. 순자산 가치(NAV) 대비 할인율이 52%로 사상 최대 수준인데다 주가순자산배율(PBR)도 올 들어 0.7배 수준에 그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주가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는 평가였다.

이와 관련해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전년 동기 대비 올 4분기 영업이익이 가장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기업으로 SK(주)를 꼽았다. SK(주)는 지난해 4분기 651억원에서 올 4분기 1조1844억원으로 영업이익 증가율이 1719.4%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SK(주)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은 4조7089억원으로 추정된다.
‘투자형 지주회사’ SK, 자사주 매입으로 수익 공유 시동
주요 자회사들이 탄탄한 펀더멘털을 기반으로 실적 회복세를 보이는 점도 SK(주)의 주가 상승에 힘을 보태는 요인이다.

SK이노베이션의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은 증권가의 예상치(3557억원)를 훌쩍 뛰어넘은 4976억원을 기록했다. 4분기를 포함한 올 하반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67.2% 증가한 9269억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 또한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3분기를 기점으로 개선되면서 외국인 매수세가 몰리며 주가가 반등하고 있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3분기부터 D램 재고 감소가 시작되고 가격 하락 폭도 줄어드는 추세”라며 “이에 따라 4분기부터 반도체 업황 사이클이 바닥권을 탈출하면서 턴어라운드에 들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K텔레콤도 하반기 중 5세대 이통통신(5G) 투자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매출 증가가 이어지며 실적 회복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최민하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SK텔레콤은 지난 2분기부터 무선통신 사업 내 가입자당 매출액(ARPU)의 턴어라운드가 시작됐다”며 “5G 상용화 이후 증가한 투자비와 마케팅비가 단기적으로 부담이 될 수는 있지만 고가 요금제인 5G 가입자가 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본업의 이익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장 자회사들의 호실적도 눈에 띈다. 반도체 웨이퍼 제조업체인 SK실트론은 올해 상반기 매출 7712억원, 영업이익 1904억원을 거두며 실적 성장세를 이어 갔다.

반도체 공정용 특수 가스 제조사인 SK머티리얼즈도 올 상반기 매출액 3672억원, 영업이익 1095억원으로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2.5%와 47.0% 증가했다.
‘투자형 지주회사’ SK, 자사주 매입으로 수익 공유 시동
◆독자 개발 신약 11월 FDA 허가 앞둬

제약·바이오 사업에서도 대형 호재가 기대된다. 시장은 오는 11월 21일께로 예정된 SK바이오팜의 독자 개발 신약 ‘세노바메이트’에 대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약 허가(NDA) 여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내 최초로 신약 개발과 임상, FDA NDA 절차를 독자적으로 진행한 만큼 판매를 통한 이익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뇌전증(간질) 치료제인 세노바메이트는 미국에서만 연간 1조원의 매출이 예상되는 블록버스터급 신약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SK(주)는 세노바메이트 승인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SK바이오팜의 유가증권시장 상장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SK바이오팜의 기업 가치를 6조원 이상으로 추정한다.
‘투자형 지주회사’ SK, 자사주 매입으로 수익 공유 시동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SK바이오팜의 상장은 공모가와 구주 매출에 따라 특별 배당이 결정되는 첫 사례인 만큼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다”며 “SK(주)는 SK바이오팜 상장 이후 SK실트론과 SK바이오텍 등 비상장 계열사의 상장을 연이어 추진하면서 배당주로서의 매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SK(주)의 이번 자사주 매입이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SK(주)는 자회사인 SK텔레콤을 통해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를 지배하고 있다. 인수·합병(M&A) 등을 하는 데 불편함이 많은 구조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SK텔레콤을 통신 사업 등을 하는 사업회사와 SK하이닉스 지분 등을 보유하는 투자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투자회사를 지주회사인 SK(주)와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SK(주)는 이에 대해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증권가에서도 투자 성과에 따른 수익 공유 차원의 주가 부양책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양지환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미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SK가 사업 부문을 인적분할하고 자사주를 활용해 사업회사의 지배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시각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도 자사주를 활용한 자회사의 지배력 확대를 경계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대로 미래에셋대우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현대차그룹의 ‘모비스 분할 후 글로비스와의 합병’ 방안만 보더라도 모비스의 주가 하락과 글로비스의 주가 상승에 대한 우려로 결국 실패했다”며 “시장의 시나리오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대주주와 자회사 주주 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주주총회 통과 가능성부터 따져봐야 할 만큼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7호(2019.10.21 ~ 2019.10.2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