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50% 연동형 비례대표, 전국·6개 권역 두 단계로 선출
…석패율제까지 도입 ‘고차방정식’
선거법안 어떻기에…사칙연산 16번 등장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패스트 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보면 복잡하기 짝이 없다. 개정안의 핵심은 지역구는 225석(현행 253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는 75석(현행 47석)으로 늘리는 것이다.

지역구 최다 득표자를 의원으로 뽑는 것은 기존과 같다. 문제는 비례대표 75석을 선정하고 배분하는 방식이다.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와 지지 정당에 각각 투표하고 비례대표는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단순 배분해 왔다.

예컨대 A정당이 정당 득표율 34.1%를 기록했다면 현행 비례대표 47석의 34.1%에 해당하는 16.027에서 반올림한 16석을 배분받는다. 지역구에서 80석을 얻었다면 A정당의 전체 의석은 96석이 된다. 비교적 단순하다.

하지만 이번에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주도로 마련된 선거법 개정안에 따르면 비례대표 선정은 6개의 계산 과정을 거쳐야 하고 이 과정에서 사칙연산 기호(+ - × ÷) 등 수학기호가 16번 등장한다. 난수표와 같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듯싶다. 단순 요약하면 현재의 ‘지역구 당선자 수+정당 득표율에 따른 비례대표 배분’ 형식에서 ‘50%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석패율제’로 바꾸는 것이다. 당초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가 각 당의 이해관계가 얽혀 변형됐다.

◆ 지역주의 타파 명분 불구 이 세상 유일한 선거제 탄생

이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된다는 전제 아래 A당이 지역구에서 80석을 얻었고 정당 득표율 40%를 기록했다고 가정해 보자. 연동형제라면 A당은 300석의 40%인 120석을 무조건 확보한다. 지역구에서 얻은 80석을 제외하고 비례대표에서 40석을 배정받는다.

하지만 50% 준연동형제에선 다르다. A당은 비례대표 40석이 아닌 50%인 20석을 일단 먼저 배정받는다. 이렇게 연동률 50%를 적용해 각 정당이 가져간 비례대표 의석수가 40석이라면 75석에서 40석을 뺀 35석이 남는다. 이를 정당 득표율대로 다시 나눈다. 35석에 A당의 정당 득표율 40%를 대입하면 A당이 가져가는 의석은 14석이다.

이렇게 해서 A당이 얻은 총 의석수는 지역구 80석에 50% 연동형비례대표 방식의 1차 할당 몫 20석과 전국 정당 득표율 배분 비례대표 14석 등을 합해 114석이 된다. 이게 끝이 아니다. 비례대표 당선자는 전국 6개 권역별로 나눠 배출해야 한다. 명목은 지역주의 타파다. 현재 비례대표는 각 당의 중앙당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순위를 정해 선출한다.

개정안대로라면 A당은 50% 연동형비례대표 20석과 전국 정당 득표율 배분 비례대표 14석 등 총 34석의 비례대표를 서울과 인천·경기, 호남·제주, 대구·경북, 부산·경남, 충청·강원 등 6개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나눠야 한다.

A당을 다시 예로 들어보자. A당이 서울에서 30%의 정당 득표율을 기록했다고 가정하자. A당은 총 확보 의석 114석 가운데 30%인 34석이 서울 권역에 할당된 몫이 된다. 실제로 서울 지역구에서 32석을 얻었다면 할당된 34석에서 32석을 뺀 2석이 서울 지역에 배분되는 비례대표 연동 의석이 된다. A당이 호남에서 정당 지지율 10%를 얻었다면 114석 가운데 11.4석, 반올림해 11석이 호남 권역의 몫이 된다. 이 지역에서 지역구 3석밖에 얻지 못했다면 11석에서 3석을 뺀 8석이 호남지역 비례대표 연동 의석수가 된다.

이 때문에 각 정당은 선거 전에 권역별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를 만들어야 한다. 1번 후보부터 순서대로 당선자를 자른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표를 통해 정당 비례대표 후보 개개인에게 지지를 표명할 수 없다. 후보들의 순서도 바꿀 수 없다. 유권자들은 특정 정당에 표를 주는 것이지 특정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자유한국당은 “내 표가 어디 갔는지 알 수 없는 제도”라며 비례대표제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열세 지역구에서 아깝게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구제해 주는 석패율제까지 도입된다. 각 정당이 지역구 선거에서 석패한 후보자를 권역별로 최대 두 명까지 비례대표로 당선시킬 수 있다. 예컨대 호남 지역구에서 출마했다가 낙선한 자유한국당 후보들 가운데 득표율이 가장 높은 후보자 2명을 석패율제에 의해 비례대표로 당선시킬 수 있다.

◆ 지역구 대폭 줄어 여당서도 반대표 나올 가능성

이 정도 되면 비례대표 산정 방식이 “의원들도 모르고 천재만 이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만약 이대로 시행된다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선거제가 한국에 존재하게 되고 세계 정치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얘기마저 나온다.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표의 등가성(等價性) 문제도 논쟁거리다. 새 선거제에선 특정 권역에서 지역구 의석을 많이 얻은 정당에 투표한 표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위헌론을 제기한다. 비례대표 명부에 투표한 득표율이 높아도 지역구 의석을 많이 차지한 정당에는 배분되지 않고 지역구 의석을 적게 차지한 정당에 비례대표가 많이 주어지는 것은 평등선거 원칙에 위배되는 위헌적 제도라는 것이다.

모든 선거제도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짚어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의석에 반영되는 비례성을 강화할 수 있지만 대통령제에 적합한지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다. 연동형은 소수당에 유리한 제도로, 다당제를 낳기 쉽다.

정당들 간 연립 내각이 보편화돼 있는 내각제에선 연동형을 하더라도 정국 운영에 큰 문제가 없다. 반면 대통령제에서는 연정이 쉽지 않아 정국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 ‘연동형제’를 실시하는 나라가 한 곳도 없는 이유다. 독일이 연동형제를 도입한 것은 히틀러의 나치당과 같은 강력한 정당의 출현을 막기 위한 고심의 산물이라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면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당에 유리하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들이 나온 것도 주목된다. 개정안을 2016년 20대 총선에 적용할 경우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석수가 크게 줄고 정의당 의석수가 크게 증가한다. 20대 총선에서 123석을 얻었던 민주당은 16석 줄어든 107석, 122석을 차지했던 새누리당(현재 자유한국당)은 12석 감소한 110석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의당은 8석 늘어 14석을, 38석이었던 국민의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으로 분당)은 59석을 각각 차지할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내년 ‘4·15 총선’을 앞두고 바른미래당 해체 등 정계 개편이 예상돼 이대로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정당 지지율대로라면 바른미래당의 바른정당계를 제외한 범여권은 최소한 160석을 확보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자유한국당이 고립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유한국당이 크게 반발하는 이유다.

한국의 비례대표제는 후보 선정과 순위 결정 과정 등에 국민의 뜻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결정되면서 밀실야합·뒷거래 등 잡음을 낳았다. 이 때문에 비례대표를 늘리려면 공천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부터 내놓는 게 순서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선거제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선거구 획정 작업이라는 난관이 남아 있다. 지역구 28곳을 줄이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인근 지역구를 통폐합해야 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최대 100곳의 지역구를 조정해야 한다. 같은 당 의원들끼리 경선에서 혈투를 벌여야 한다. 이 때문에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쳐지면 여당 내에서도 반대표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5곳을 조정하는 데도 16개월 동안 진통을 겪었다. 선거제 개정안이 여당이 계획한 대로 올해 말 국회에서 처리된다고 하더라도 총선까지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4개월 만에 100곳에 달하는 지역구 조정 작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3호(2019.05.06 ~ 2019.05.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