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겉도는 퇴직연금 200조]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교육포럼 대표…“노후 수입원 중 연금 비율 12.5% 불과”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국내 1세대 노후 자산 설계 전문가.’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교육포럼 대표의 이름 앞에 빠지지 않는 수식어다. 국내에 퇴직연금이 도입되기 직전인 2004년부터 2012년까지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겸 미래에셋 부회장을 지냈다. 이후 미래와금융 연구포럼 대표로 지내다 2014년 트러스톤자산운용으로 옮겨와 직장인들의 은퇴 교육 활동에 열정을 쏟고 있다. 성수동 트러스톤 연금교육포럼 사무실에서 10월 21일 강 대표를 만났다. 국내 최고의 ‘노후 자산 전문가’가 바라본 퇴직연금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안을 들어봤다.
“‘사회의 눈’이 매서워져야   퇴직연금 제대로 굴러가죠”

-지난 15년간 노후 자산과 관련한 교육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노후자산 준비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를 체감하나요.


“그럼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꼽자면 예전엔 ‘노후 자산’이니 ‘은퇴 준비’ 교육이라고 하면 은퇴를 앞에 둔 이들이 주로 강연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니에요. 특히 30~40대의 관심이 높습니다. 지난주 제가 특별한 곳에서 강연을 했어요. 국내 한 여행사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인데 크루즈 여행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죠. 솔직히 저는 강연장에 사람이 얼마 없을 줄 알았어요. 놀러간 여행지에서 이런 심각한 얘기를 누가 들으러 올까 했는데, 웬걸요.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부부들이 몰려와 강연장이 꽉 찼을 정도니까요. 그만큼 많은 이들이 은퇴 후 노후 생활을 절박하고 현실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죠. 다만 이를 실천으로 옮기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어요. 그런 점에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죠.”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특히 연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노후에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경제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것은 소액이라도 ‘정기적인 수입원’을 마련하는 거예요. 바로 그 역할을 해주는 것이 ‘연금’이고요. 은퇴할 때 얼마나 큰 목돈을 쥐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연금 수익을 얻을 수 있느냐가 중요해요. 보통 선진국에서는 노후 생활의 주요 수익원이 연금이에요. 미국과 일본만 하더라도 비율이 60~70%에 달하고 독일은 80~90% 정도죠. 그런데 한국은 비율이 매우 낮습니다. 1980년대에 0.8%에 불과했고 2017년에 비율이 12.5%였거든요.”


-그렇다면 국내에선 노후의 주요 수입원으로 연금의 비율이 낮은 이유가 있나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겁니다. 물론 고령화는 유럽도 마찬가지고 일본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요. 프랑스는 고령화사회(총인구 중 65세 이상의 인구가 총인구를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인 사회)에서 고령사회(14%)로 접어들기까지 155년이 걸렸어요. 일본은 35년이 걸렸죠. 일본만 하더라도 30년 전과 지금의 세상은 모든 게 다 달라요. 인 문제는 주택·교육·결혼 등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이 기간이 고작 ‘26년’이에요. 이처럼 인구구조가 ‘벼락같이’ 바뀌는데 문제는 우리가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최고의 노후 준비는 ‘자녀 세대’를 잘 교육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구조 자체가 불가능해요. 기대 수명이 늘어나면서 60세 아들이 90세 아버지를 ‘모셔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자녀 세대가 노후를 책임질 수 없으니 ‘연금’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퇴직연금이 중요한 이유가 있나요.


“최근 일본에서는 ‘2000만 엔 문제’가 큰 화제를 모았어요. 부부가 정년퇴직 후 95세까지 안정적으로 생활하기 위해서는 2000만 엔(약 2억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공적 연금’만으로는 해결되지 못하는 겁니다. 일본에서는 현재 일반 직장인들도 은퇴 후 부부가 월 20만 엔(약 215만원) 정도의 연금을 받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은 국민연금의 평균 수령액이 51만원이에요. 100만원 이상 수령자가 5% 정도죠. 더욱 중요한 문제는 1947년부터 1953년까지 6년간 진행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와 비교해 한국은 1950년부터 1983년까지 28년간 진행됐어요. 향후 30년간 한국은 매우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퇴직연금 등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노후 빈곤 문제가 그만큼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많은 직장인들이 퇴직연금을 ‘노후 자산’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퇴직연금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입니다. 노동자들이 ‘당연히’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근로기준법에 노동자 월급의 일정 금액을 퇴직금으로 적립하도록 돼 있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퇴직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기업들이 많거든요. 적어도 한국은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잘 갖춰져 있는 셈이죠. 다만 노동자들이 그 변화를 잘 실감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예요. 국내에 퇴직연금이 도입된 것은 2005년입니다. 그전만 해도 대부분 ‘퇴직금’으로 운영했죠. 퇴직 후 연금 형태로 퇴직금을 받는 미국 등과 달리 한국에서는 대부분 퇴직 때 ‘목돈’을 받는 게 오랫동안 익숙했던 겁니다. 현재는 상당수의 기업들이 ‘퇴직연금’으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고 하지만 노동자들은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확정 급여형(DB형)은 회사가 알아서 운영하고 어차피 퇴사할 때 ‘목돈’으로 받거나 ‘연금’으로 받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정도죠. 그 차이를 실감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앞으로 확정 기여형(DC형)의 비율이 높아지면 노동자들 또한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DC형은 노동자가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금액이 2배 정도 차이가 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를 위해 전제돼야 할 것은 ‘금융 교육’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퇴직연금 시장의 성숙도 측면에서 일본이 미국과 한국의 중간쯤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2001년에 DC형이 도입됐거든요. 그런데 일본의 금융 교육 전문가들이 얘기하기로, 일본의 기업들이 ‘퇴직연금은 당신들이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겁니다’라는 것을 이해한 게 작년이라고 해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노동자’들에게 퇴직연금 관리가 그들의 몫이라는 것을 설득하기 시작한 단계라는 거죠. 이와 비교해 우리는 이제 막 기업들이 ‘퇴직연금 관리가 기업의 책임’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단계로 보입니다. 이랜드와 같은 기업들이 대표적인 사례죠. 기업이든 노동자든 연금 사업자에게 퇴직연금을 맡기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제대로 감시하고 관리하지 못하면 지탄 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합니다.”
“‘사회의 눈’이 매서워져야   퇴직연금 제대로 굴러가죠”

-최근 들어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수익률은 중요한 문제죠. 하지만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어요. 단기적인 수익률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더 중요해요. 다만 근본적인 문제들을 짚어 볼 필요는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의 발표에 따르면 DB형과 DC형을 더해 연간 수익률이 1%대라고 하는데 DB형은 손해가 나더라도 기업이 손해를 채워 넣어요. 문제는 DC형입니다. 그런데 작년에 주식시장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1년간만 보면 수익률이 거의 마이너스나 다름없죠. DC형도 자세히 살펴보면 80% 정도가 원금 보장형입니다. 대부분이 예·적금이니 지금과 같은 구조로는 1.5%의 수익률 내기도 힘듭니다. 이에 비해 미국은 DC형의 82% 정도가 주식 등을 중심으로 한 펀드 상품을 통해 적극적으로 운용되고 있어요. 일본도 비율이 48% 정도에 달하는데 한국은 유독 17~18% 정도에 머무르고 있죠. 이 비율을 높여야 합니다.”


-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어느 정도까지 기대하는 게 적당할까요.


“이 부분에서 꼭 강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직 국내의 많은 투자자들은 고성장기의 투자수익률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10%가 넘는 수익률을 바라는 이들도 많은데, 이를 빨리 버려야 합니다. 개인은 ‘정기예금 수익률 플러스알파’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하는 게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2~3%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하는 게 적당하다고 봅니다. 대표적으로 일본만 해도 지난 20년간 그렇게 시장이 어려웠는데도 3% 정도의 수익률을 내고 있습니다. 시장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원칙을 지키는 투자’를 한다면 3% 정도의 수익률을 내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원칙을 지키는 투자’는 무엇인가요.


“국내에서는 노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습니다. 그만큼 금융자산의 비율이 낮다는 얘기죠. 지금이야말로 ‘투자’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투자는 ‘일확천금’을 바라는 그런 투자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일본·한국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투자를 목적’을 묻는 앙케트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은 60%가 ‘노후 대비’를 꼽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60%가 ‘돈 벌려고’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돈을 벌려고 하다 보면 답이 없어요. 단기 시황 전망은 불가능하니까요. 그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죠. 노후 대비를 위한 투자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20~30년 장기 투자가 가능해지고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적립식 투자가 가능해집니다. 무엇보다 노후 자산을 목적으로 한 연금은 ‘적립식 투자’ 효과가 매우 큽니다. 10년 이상 적립식 투자를 이어 가면 주가가 하락할 경우 보유 계좌 수를 늘려 갈 수 있기 때문에 시세가 반등할 때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겁니다. ‘분산투자’도 중요한 원칙입니다. 국제적인 분산투자를 위해 해외투자 비율을 높일 필요도 있습니다.”


-최근 들어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디폴트 옵션, 기금형 연금제 등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각각의 제도들마다 장점이 있고 지금보다 좋은 제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제도 만능’주의로 흐르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도 합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하더라도 제도만 도입한다고 문제가 풀리지는 않습니다.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한다고 해도 결국 중요한 것은 기업이나 노동자들의 ‘책임 의식’입니다. 결국은 노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본의 전자회사인 세이코앱슨이 좋은 사례가 되겠네요.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대에 노조에서 아무리 임금 인상을 요구해 봤자 회사에서 직원들의 임금을 3% 올려주는 것은 버겁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직원들에게 금융 교육(투자 교육)을 열심히 제공해 직원들이 퇴직연금(DC형)을 운용해 3%의 수익률을 올리고 재산을 증식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더 나은 겁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노조가 주축이 돼 조합원들의 금융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거든요. 결국 퇴직연금 제도가 잘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눈’이 매서워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업과 노동자의 역량을 키우는 ‘금융 교육’이 핵심입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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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8호(2019.10.28 ~ 2019.11.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