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거도는 퇴직연금 200조]
-DB·DC형, 회사 규약 따라 노동자의 선택 범위 제한…IRP 등 ‘딴 주머니’로 보완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직장 생활 6년 차에 접어드는 A 씨. 가슴에 늘 사표를 품고 살고 쌓여만 가는 카드빚을 보며 ‘퇴직금으로 한 방에’를 궁리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회사가 퇴직금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대부분 직장인들의 모습이다. 확정 급여형(DB형), 확정 기여형(DC형), 개인형 퇴직연금(IRP) 등 막상 신경을 좀 써보려니 복잡하기만 한 이 ‘용어’들에 기가 확 죽는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사소하지만 쓸데 있는 퇴직연금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봤다.

◆퇴직금 vs 퇴직연금, 어떻게 다르지?


우선 우리 회사의 퇴직연금에 대한 모든 사소한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 회사의 퇴직금을 위탁 운용하고 있는 금융사의 담당자일까. 아니다. 우리 회사의 재무팀이나 인사팀의 퇴직연금 담당자를 찾아가야 한다.


기본적으로 퇴직연금의 운용과 관련된 전반적인 사항들은 퇴직연금을 위탁 운용하는 연금 사업자가 아니라 ‘회사’에서 노동자의 동의를 얻어 ‘규약’을 정하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주체가 ‘기업과 노동자’인 것을 분명히 하는 대목이다.


그전에 먼저, 퇴직금과 퇴직연금의 차이부터 짚어보자. 한국 퇴직금 제도의 역사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 제28조에 의해 ‘퇴직자에 대한 소득 보장’의 목적으로 최초로 도입됐다. 현재 퇴직금은 상시 노동자 수와 상관없이 1인 이상 전 사업장에서 1년 이상 노동한 노동자에게 지급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렇다면 어차피 법으로 퇴직금 다 주도록 돼 있는데 굳이 ‘퇴직연금 제도’가 필요한 이유는 뭘까. 쉽게 얘기해 퇴직연금은 노동자와 회사 모두를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김상일 미래에셋생명 법인영업본부 수석매니저가 귀띔해 준 ‘퇴직연금 1호 회사’의 사례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김 수석매니저는 “2005년 퇴직연금 도입 후 처음으로 퇴직연금에 가입한 회사는 의외로 대기업이 아니라 아주 조그만 중소기업이었다”고 소개했다. 당시 이 기업은 경영에 어려움을 겪어 파산을 겪은 뒤라 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는 게 불가능했다. 이후 직원들의 노력으로 회사는 공장을 다시 가동하게 됐지만 이와 같은 상황을 한 번 경험한 직원들이 먼저 퇴직연금에 가입하고 싶다고 연락해 온 것이다.


퇴직연금을 통해 퇴사에서 퇴직금으로 지급해야 할 비용을 미리 외부 기관에 따로 적립해 놓으면 노동자는 최소한 회사가 퇴직금을 떼어먹을 걱정을 덜 수 있다. 기업에도 장점이 있다. 퇴직금은 기업이 언젠가는 직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암묵적인 부채’다. 특히 노동자가 많은 대기업이라면 이 부채 규모는 더욱 커진다. 그러니 회사로서도 퇴직연금을 통해 이 부채
(퇴직연금 부담금)를 외부 기관에서 관리하는 게 더욱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퇴직연금 부담금 납입액은 손금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법인세 절감 효과도 크다.
사소하지만 쓸 데 있는 퇴직연금 A to Z

◆퇴직금 vs DB형 vs DC형, 퇴직할 때 받는 돈 얼마나 다를까?



퇴직연금은 크게 DB형과 DC형으로 나뉜다. 결정적인 차이는 퇴직금의 운용 주체에 있다. DB형은 기업이 노동자의 퇴직급여를 운용하고 노동자가 퇴직할 때 법정 퇴직급여(직전 3개월 평균임금×근속연수)를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에게는 퇴직금과 큰 차이가 없다.

퇴직연금을 운용한 결과 수익이 난다면 이는 회사에 귀속되고 만약 손실이 나도 기업의 책임이다. DB형에 가입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실적 배당형’보다 ‘원금 보장형’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와 비교해 DC형의 운용 주체는 노동자다. 기업은 노동자의 재직 기간 중 매년 임금 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연·분기·월 단위로 노동자의 DC 계좌에 지급한다. 노동자는 수령한 퇴직급여를 운용해 투자 수익을 얻는 것이 가능하고 손실이 나더라도 노동자의 책임이다.


물론 DC 계좌에 입금된 퇴직급여를 노동자가 중간에 마음대로 꺼내 쓰지 못하도록 돼 있다. 현재는 6가지를 예외 사항으로 두고 있는데 무주택 가입자가 본인 명의의 주택을 구입할 때, 5년 이내에 가입자가 개인 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받은 때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DC형 퇴직연금을 중도 인출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퇴직연금 중도 인출 금액은 1조1793억원으로 전년 동기(8163억원) 대비 무려 44.5% 정도 늘어났다. ‘노후 소득 안전판’으로서 퇴직연금의 기능이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퇴직연금 중도 인출 기준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DB형 vs DC형, 어떤 게 노동자에 더 유리할까?


그렇다면 노동자는 어떤 경우에 DB형과 DC형을 선택하는 게 나을까.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면 임금 상승률이 운용 수익률보다 높을 때는 DB형이 유리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DC형이 유리하다. 일반적으로 ‘임금피크제’를 기점으로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하는 노동자들이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입사 당시 연봉 1200만원에 신입 사원으로 근무하게 된 B 씨는 입사 후 3년 뒤 퇴사하게 됐다. 지난 3년간 B 씨의 연봉은 해마다 4%씩 인상됐는데 이때 B 씨가 지급받게 되는 퇴직금은 퇴사 당시의 월급인 108만원×3년으로 324만원이 된다. 만약 B 씨가 DC형에 가입돼 있었다고 하면 입사 첫해 100만원, 그다음 해 인상된 월급 104만원, 퇴직 당시 월급 108만원을 더한 312만원이 기본 퇴직금이 되고 여기에 투자 수익이 더해진다.

결국 노동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퇴직급여를 운용해 ‘플러스알파’를 높이느냐에 따라 최종 금액이 큰 차이가 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소하지만 쓸 데 있는 퇴직연금 A to Z

◆DB형에서 DC형으로 갈아타기,어디까지 선택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현재 회사에서 DB형에 가입돼 있는 노동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퇴직급여를 운용하기 위해 DC형으로 변경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는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규약’에 달려 있다.

만약 회사에서 DB형과 DC형을 모두 도입하고 있다면 노동자는 퇴직연금을 담당하는 부서에 DC형으로 전환하고 싶다는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최근에는 임금피크제 등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DB형과 DC형 두 가지를 모두 도입하고 있는 곳이 많다. 직원들은 DB형으로 운영하고 임원들은 DC형으로 운용한다거나 임금피크제에 해당되는 직원들은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렇다면 이때 노동자의 선택권은 어디까지일까. 예를 들어 회사가 현재 M사의 퇴직연금 DB형에 가입돼 있다면 노동자는 M사가 아닌 S사나 K은행으로 가입하는 게 가능할까.

김 수석매니저는 “모든 것은 회사가 정하기 나름”이라며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한 곳의 퇴직연금 사업자에게 맡기기보다 복수의 퇴직연금 사업자에게 위탁하는 경우가 많고 DC형 역시 회사에서 정하고 있는 퇴직연금 사업자들 내에서 가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니 아무리 노동자가 꼼꼼하게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수익률과 운용 전략, 수수료를 비교한다고 해도 이미 사내에서 정해 놓은 퇴직연금 규정에 투자 가능한 연금 사업자로 M사 한곳만을 지정하고 있다면 애초에 노동자가 다른 연금 사업자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DC형으로 전환됐다면 노동자는 가입한 퇴직연금 사업자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DC형 계좌의 퇴직급여를 투자할 상품을 선택하거나 투자 비율을 조정하고 수익률을 확인할 수 있다. 퇴직연금 사업자를 선택하는 데는 회사가 정한 테두리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지만 가입이 완료된 뒤 퇴직급여의 투자 상품을 고르는 것은 전적으로 노동자의 몫이다. 가입돼 있는 퇴직연금 사업자에서 판매 중인 퇴직연금 상품이라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투자 비율을 조절하는 것 또한 자유롭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퇴직연금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복잡한 시장 상황을 미리 반영해 투자 비율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DC형도 주식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실적 배당형’보다 예·적금을 중심으로 한 ‘원금 보장형’ 상품의 비율이 높은 이유다.

◆IRP, 언제든 내 맘대로 개설 가능해?


DC형이든 DB형이든 노동자가 퇴직 시 퇴직연금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이를 지급받기 위한 개인 계좌가 필요하다. 바로 개인형 퇴직연금(IRP)이다.IRP는 노동자가 원하면 언제라도 원하는 연금사업자에 개설할 수 있다. 단 이때 IRP 계좌 개설은 한 금융사에 1계좌로 제한된다.

IRP는 노동자가 개인적으로 자금을 추가 납입해 다양한 투자 상품을 운용할 수 있다. 쉽게 말해 DB형이나 DC형으로 관리하는 회사의 기본 퇴직급여 외에 노동자가 개별적으로 ‘딴 주머니’를 만들어 추가 투자 상품을 운용할 수 있는 것이다. IRP를 통해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은 상장지수펀드(ETF)와 생애 주기형 펀드(TDF) 등 시중에 판매되는 퇴직연금 상품은 모두 가능하다.

김 수석매니저는 “일반 계좌와 비교해 IRP를 통하면 연간 700만원까지 납입 금액에 대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최근 들어 특히 30~4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세테크 상품’으로 각광 받으며 IRP를 통한 투자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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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8호(2019.10.28 ~ 2019.11.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