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소송하지 않기로 합의한 분리막 특허 문제 삼아…LG화학 “전혀 다른 특허” 주장
“LG화학, 명백한 합의 위반”…SK이노베이션, 배터리 관련 추가 소송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에 국내에서 추가 소송을 걸었다. SK이노베이션은 10월 22일 LG화학을 상대로 배터리 특허 소송 취하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고 밝혔다. LG화학이 과거 체결했던 합의를 깨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특허 소송을 낸 것이 배경이다.

LG화학도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LG화학 측은 “당시 합의는 한국 특허와 관련한 것이었다”며 “이번 소송은 미국 특허인 만큼 상관이 없다”고 밝히며 물러서지 않았다. 배터리 관련 특허를 둘러싼 양 사의 갈등의 골이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모습이다.

◆‘분리막 특허’가 양 사 갈등 원인


SK이노베이션의 이번 소송은 지난 9월 LG화학이 ITC에 올린 특허 소송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당시 LG화학은 ITC에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2차전지 관련 특허 5건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소장을 제출했다.

이와 관련해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과거 합의를 파기하고 소송을 냈다”며 소송 취하와 손해배상 등을 요구한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이 이 같은 주장을 펼치는 배경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국내에서 처음 ‘특허권침해금지’와 ‘특허무효주장’ 소송을 제기한 해다.
문제의 중심에는 LG화학이 2005년 획득한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 한국 특허 775310)’ 관련 특허가 있다.

분리막은 양극재·음극재·전해액과 함께 전기차 배터리 ‘4대 핵심 소재’로 꼽힌다. 전기차 배터리 내부에서 양극재와 음극재가 섞이면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분리해 주는 역할을 하며 안전하게 배터리가 작동하도록 돕는 것이 바로 분리막이다.

2011년 첫 분쟁이 일어났을 때 SK이노베이션 측은 LG화학이 갖고 있는 특허와 다른 기술을 사용했다고 법정에서 반박했다. 분리막과 보호재를 접합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SK이노베이션 측의 설명이었다.

LG화학도 이 부분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거의 유사하다며 법원에서 해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물러섬 없는 다툼 끝에 법원은 특허권침해금지 소송 1심에서 SK이노베이션의 손을 들어줬다. LG화학은 고등법원에 항소했지만 곧 소송을 취하했다.

특허 무효 소송도 1심에서 SK이노베이션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지만 LG화학은 특허를 정정한 뒤 해당 안건을 상고심에 올렸다. 그리고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을 받아 다시 심리가 이뤄지게 됐다.

분쟁이 길어질 조짐을 보이자 2014년 양 사는 결국 합의하게 된다. 합의서에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대상 특허(안전성 강화 분리막)와 관련해 직접 또는 계열사를 통해 국내·국외에서 상호간 특허침해금지나 손해배상의 청구 또는 특허 무효를 주장하는 쟁송을 하지 않기로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SK이노베이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LG화학이 이를 어기고 ITC에 제소했다”고 강조하며 이번 소송의 배경을 밝혔다.

◆한·미 특허 동일 여부 ‘새 쟁점’


SK이노베이션의 주장은 이렇다. LG화학이 문제 삼은 5건의 특허 중 ‘SRS 원천 개념 특허(미국 특허 7662517)’는 양 사가 2014년 서로 국내외에서 제소하지 않기로 합의한 한국 특허와 사실상 같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LG화학의 미국 특허는 ‘특허협력조약(PCT) 국제 출원 제도’를 통해 등록한 만큼 ‘한국과 동일한 특허’라는 점을 들었다.

PCT 제도는 한 국가의 특허 출원인이 특허협력조약에 가입한 다른 나라에서 쉽게 특허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SK이노베이션 측은 “PCT의 핵심은 기준이 되는 국가, 즉 한국 특허와 ‘동일한’ 내용만을 인정해 준다”며 “다른 특허였다면 애당초 미국에서 출원 자체가 불가능했다. 실제로 LG화학의 미국 특허와 한국 특허를 비교하면 발명자도 동일하고 발명의 상세한 설명과 도면도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은 합의 파기를 이유로 LG화학이 특허 침해를 주장한 분리막 관련 3건의 특허에 대해 스스로 소송을 취하할 것을 이번 소송에서 청구했다. 또 합의 대상이었던 특허를 기반으로 한 후속 특허 2건에 대해서도 모두 소송을 취하해야 한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또한 자사와 배터리 사업 미국 법인인 SKBA에 LG화학이 합의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액으로 각각 5억원씩 지급해야 한다고 청구했다. 취하가 완료될 때까지 지연 손해금 명목으로 두 원고에 매일 5000만원을 각각 지급할 것도 요청했다.

물론 LG화학 측의 주장은 이와 정반대다. 과거 합의한 한국 특허와 이번에 소를 제기한 미국 특허는 별개라는 주장을 즉각 내놓았다.

LG화학은 “특허 독립(속지주의)의 원칙상 각국의 특허는 서로 독립적으로 권리를 취득하고 유지한다. 또 각국의 특허 권리 범위도 서로 다르다”며 “한국에서 특허를 받았어도 특허 권리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특허”라고 강조했다.

합의서에 포함된 ‘국외’라는 문구에 대해선 “한국 특허(775310)에 대해 외국에서 청구 또는 쟁송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당시 합의서는 특허 번호를 특정하는 방법에 의해 대상 범위가 정해진 것이다. 특정 특허 번호, 즉 ‘775310’ 외에는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 측 관계자는 “그렇다고 특허의 본질이 다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를 예로 들었다. 현대차의 쏘나타를 보더라도 각국이 가진 규제나 도로교통법을 따르기 위해 기능이 다르고 적용된 부품이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차량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설명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업적 판단을 하는 것은 당연한 생리”라며 “하지만 일본 정부가 나서 한국 기업들을 옥죄고 있고 중국 정부 또한 자국 기업을 키우기 위해 폐쇄적인 배터리 보조금 정책을 이어 가는 시점에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LG화학의 행보는 아쉬운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돋보기
LG화학의 문제 제기로 촉발된 ‘배터리 싸움’



최근 다시 불거진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의 배터리 갈등은 ‘전쟁’으로 비유될 정도로 판이 커졌다. 첫 시작은 LG화학이었다. 올해 4월 ‘영업 비밀 침해’를 문제 삼아 SK이노베이션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제소한 것이다. 이어 5월 국내 수사기관에 의뢰하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이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 6월 국내 법원에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LG화학을 고소했고 9월 ITC와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걸었다.

이에 같은 달 LG화학 역시 SK이노베이션에 대해 ITC와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냈고 이를 문제 삼아 결국 SK이노베이션이 10월 22일 ‘합의 파기’에 대한 소송까지 국내에서 제기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ITC는 LG화학이 4월 제기한 영업 비밀 침해 소송의 ‘증거 개시 절차(디스커버리)’를 진행 중이다. 증거 개시 절차는 분쟁 당사자가 가진 증거를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조사다. 조사는 올해 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이고 이를 토대로 한 최종 판결은 내년 10월 정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8호(2019.10.28 ~ 2019.11.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