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건설 사업으로 11년째 위기 버텨와…올 초 금강산서 창립 20주년 행사 등 기대감
현대아산의 끝나지 않는 기다림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금강산 관광 사업 재개에 분주했던 현대아산이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월 23일 금강산을 방문해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는 소식이 보도된 것이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관광객 피살 사건 이후 10년간 중단된 상태다. 그 후 경직된 남북 관계로 좀처럼 재개를 시도하지 못하다가 지난해 4월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돌파구를 찾는 듯했다. 현대아산은 금강산 관광 사업을 재개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설치했고 올해 2월 창립 20주년 행사를 금강산에서 열었다. 3월에는 금강산과 개성공단 시설에 투자하기 위해 약 414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하며 관광 재개를 준비하던 상황이었다.
◆하루 만에 실무 회담 거절한 北
부푼 기대를 안고 금강산 관광 재개를 준비해 왔던 현대아산에 김 국무위원장의 ‘남측 시설 철거 발언’은 급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아산 측은 10월 23일 성명문을 내고 “관광 재개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보도에 당혹스럽지만 차분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1998년 금강산 관광을 시작한 현대그룹은 남북 경협을 위한 그룹사로 1999년 ‘현대아산’을 설립했다. 현대아산은 2000년 북한과 합의해 30년간 전력, 통신, 철도, 금강산 수자원, 명승지 관광 사업(백두산·묘향산·칠보산) 등 7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권리를 취득했다. 또 50년간 금강산관광지구에 대한 토지 이용권과 관광·개발사업권도 얻었다. 현대그룹 측은 이러한 사업권 대가로 북측에 5억 달러(약 5825억원)를 지불했다.
김 국무위원장의 발언이 보도된 이틀 뒤 북한은 통일부와 현대아산 측에 문서 교환 형식으로 금강산 관광 시설의 철거 문제를 논의하자는 통지문을 보냈다. 하지만 정부는 원칙적으로 ‘실무 회담’을 고수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통일부와 현대아산은 10월 28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금강산국제관광국 앞으로 각각 대북 통지문을 발송했다. 이 대북 통지문은 당국 간 실무 회담을 제안하는 내용이다. 현대아산은 당국 대표단과 통행해 북측이 제기한 문제와 금강산관광지구의 새로운 발전 방향에 대한 협의를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 측이 통지문을 보낸 다음 날인 10월 29일 금강산 관광 실무 회담을 거절하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북측은 이날 보낸 통지문에서도 자체적으로 현대적인 관광문화지구를 새로 건설하겠다고 밝히며 시설 철거 계획과 일정을 보내줄 것을 재차 요청했다.
현대아산 측에 따르면 북측은 통지문에서 “북측(금강산국제관광국)은 현대 측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많은 고심과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을 잘 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남북 관계 모든 현안은 대화와 협의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원칙하에 사업자와 긴밀히 협의하며 대응 방향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현대아산 측은 “금강산 관광 문제와 관련해 다각적인 대책을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아산의 끝나지 않는 기다림
◆재개 준비 중이었는데…허탈한 현대아산
1998년 실향민 출신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500마리의 소 떼를 이끌고 휴전선을 넘으며 남북 경제 협력의 물꼬를 텄다. 같은 해 현대그룹은 북측과 금강산 관광 사업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한 후 이듬해인 1999년 남북 경제 협력 사업에 근거해 현대아산을 세웠다. 2000년 현대아산과 북측은 금강산·개성 특구 지정과 SOC 사업권에 합의했다.
금강산 관광은 2005년 기준 누적 관광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순항했다. 2007년에는 기세를 몰아 개성 관광도 시작했다. 하지만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을 계기로 관광 사업이 전면 중단됐다. 여기에 남북 관계와 동북아 국제 정세가 경색되면서 현대아산의 주축이었던 남북 경협 사업은 도저히 재개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016년에는 개성공단 또한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현대아산으로선 이 시기를 버텨낼 성장 동력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남북 경협과 관광 사업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진출할 수 있는 사업 중 하나는 면세점이었다. 현대아산은 자체 브랜드인 ‘현대면세점’을 론칭해 개성공업지구 내 면세점과 2011~2014년 양양국제공항면세점을 운영했다. 또 2012년 위동훼리 선상면세점 운영을 시작으로 단동훼리·화동훼리·연운항훼리 등을 추가로 운영해 5개 노선의 선상 면세점을 운영 중이다.
또 하나의 돌파구는 건설 사업이다. 현대아산은 국내 건설 시장에 진출해 사업 영역 다각화에 나섰다. 현대아산은 개성공단 1단계 개발 경험을 토대로 화성동탄 택지 개발 사업, 충남도청 내포신도시 개발 사업 등 택지·단지 조성 분야에 참여했다. 또 한국관광공사 신사옥과 코레일 유통 본사 사옥 등 업무 시설과 공공주택 사업 공사도 진행했다. 자체 브랜드인 ‘빌앤더스’를 론칭해 충남 내포신도시 수익형 오피스텔인 ‘현대빌앤더스’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특히 건설 사업은 현재 현대아산 매출액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분야다. 2019년 6월 기준 현대아산 건설 부문의 매출액은 251억3400만원으로 전체의 68.3%를 차지했다. 관광 경협은 116억9100만원으로 31.7%다.
하지만 그룹의 주축이었던 남북 경협 사업이 중단되면서 현대아산의 영업 손실이 몇 년째 지속되고 있다. 현대아산은 2017년 68억3773만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 2018년에는 36억6154만원으로 손실 폭을 줄였지만 올해도 여전히 적자를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약 10년간 관광 사업이 중단되면서 투자에 상응하는 수익을 얻지 못했다는 것도 문제다.
통일부에 따르면 금강산관광지구에 가장 많이 투자한 기업은 현대아산으로 1억9660만 달러(약 2291억원)다. 뒤를 이어 한국관광공사와 에머슨퍼시픽 등 기타 기업이 1억2256만 달러(약 1428억원)를 투자했다. 현대아산은 금강산관광지구에 해금강호텔·금강산옥류관·구룡마을·온천빌리지·고성항횟집 등의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 중단이 10년을 넘어가면서 이미 시설의 노후화도 진행된 상황이다.
금강산 관광 사업을 비롯한 남북 경제 협력 사업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의 영향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현대아산은 과거 남북 경협 사업을 추진하며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대책을 마련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금강산 관광이 추진되면서 현대아산과 북측이 다양한 우여곡절을 거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현재로서는 현대아산을 비롯한 사업자들과 충분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월 31일에는 김 장관, 배국환 현대아산 사장, 안영배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한자리에 모여 금강산 관광 관련 문제를 논의하는 면담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배 사장은 “정부 당국이 국민의 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잘 해주시기를 바라고 다각적인 대북 관계나 국제 관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9호(2019.11.04 ~ 2019.11.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