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대전은 그동안 특색 없고 재미없는 도시로 알려져 있었다. 하물며 ‘노잼 도시(재미없는 도시)’라는 타이틀이 붙기도 했다. 친구가 놀러오면 데려갈 만한 곳이 없다며 대전 시민들이 직접 붙인 별명이다. 대전이 ‘노잼 도시’라는 풍문은 2019년 국정감사에서까지 이슈가 됐다.
하지만 이런 대전에, 그것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재개발만 기다리며 낡아 가던 동네에 최근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변화의 땅은 대전역 바로 뒤에 자리한 ‘소제동’이다. 소제동에는 평일 오후에도 젊은이들이 북적이고 인스타그램에는 새로운 ‘핫 플레이스’ 소제동에 대한 게시글이 넘쳐난다. 노후화된 건물과 빈집으로 골머리를 앓던 이 동네는 왜 갑자기 떠올랐을까.
대전역 2번 출입구로 나와 동쪽으로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동네가 펼쳐진다. 2차로 도로를 기준으로 자리한 낡은 슈퍼와 철물점·이용원·세탁소는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담고 있다. 대전역에서 5분 정도 떨어져있지만 사람이 살고있는 집보다 비어있는 집이 더 많아보일 정도로 곳곳에 빈집과 폐허가 즐비했다.
소제동은 지난해 소제동이 포함된 대전 동구 내 빈집은 총 2037호로 대전 관내에서도 가장 많았다. 오래되다 못해 낡았다는 느낌이 드는 회색빛 동네. 하지만 그래서 더 새롭게 다가오는 동네. 소제동의 첫인상이었다.
황량한 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서울에서도 보지 못한 독특한 콘셉트의 상업 공간이 나타난다. “이게 왜 여기 있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개성 있는 카페와 식당이 곳곳에 숨어 있다. 뜬금없이 등장한 상업 공간들은 구경하는 이로 하여금 당황스러움과 함께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골목마다 어김없이 폐가와 낡은 단층집들이 이어지지만 걷다 보면 갑자기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을 닮은 식당이 등장하고, 대나무밭을 가진 찻집이 나타난다. 이처럼 500여m에 걸쳐 있는 10여 개의 가게가 전국의 젊은 세대를 대전으로 이끌고 있다.
“저는 부산에서 왔고 이 친구는 울산에서, 저 친구는 서울에서 왔어요. 인스타그램에서 소제동에 핫한 카페와 식당이 많은 걸 보고 일부러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만나기로 했죠.”
카페 ‘오아시스’에서 인증 샷을 찍으며 놀던 동갑내기 친구들 역시 부산·울산·서울에서 오직 소제동을 방문하기 위해 대전으로 모였다. 평일 오후인데도 불구하고 10여 개의 카페와 식당은 친구와 연인 등 젊은 인파로 꽉 차 있었다.
◆빈집 가득했던 낡은 관사촌의 변신
이 같은 변화는 지역에 잠재돼 있던 이야기와 콘텐츠의 재발견을 통해 이뤄졌다. 이 동네의 변화를 이끈 주인공은 바로 도시 공간 기획 스타트업 ‘익선다다’다.
익선다다는 지방자치단체와 정부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지방의 ‘도시 재생’과 ‘빈집 활성화’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셈이다. 익선다다의 도시 재생은 처음이 아니다.
익선다다는 2014년 서울 도심 속 아무도 찾지 않던 익선동을 부활시킨 회사다. 익선동 카페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익동다방’을 시작으로 열두달·르블란서·엉클비디오타운·낙원장 등 10여 개 상가를 기획했다. 익선다다는 익선동에서의 성공을 뒤로하고 2017년 대전에 내려와 소제동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익선다다는 소제동에 잠재돼 있던 이야기에 집중했다.
소제동은 ‘철도 도시’라는 대전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동네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갈라지는 대전은 철도로 근대가 시작된 도시다. 대전역 앞쪽 은행동은 10년 전까지 대전에서 ‘시내’로 통할 만큼 제일 잘나가는 상권이었다. 이제는 쇠퇴한 상권이지만 개발 흔적은 여실히 남아 있다. 그와 달리 대전역 동쪽 출입구에 자리 잡은 소제동은 개발의 손길을 거치지 않고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시간을 그대로 담고 있다.
특히 소제동에 자리 잡은 통일성 있는 집들은 일제강점기 ‘철도청 관사촌’으로 사용되던 ‘적산가옥(敵産家屋)’이다. 1904년 대전역이 처음 생긴 이후 역 근처에는 일본 철도공사 종사자들과 기술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모여 살며 ‘관사촌’이 형성됐다.
당시 북관사촌과 남관사촌이 함께 있었지만 전쟁과 도시화로 대부분 소실됐다. 하지만 동관사촌이던 소제동만이 폭격을 피해 100년 넘게 건물 40여 채를 그 자리에 보존하고 있었다. 소제동은 국내에 남아있는 관사촌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일제강점기 ‘관사촌’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도 몇 없어 그 자체로도 희소가치가 있는 동네다. 100년 이상 된 동네라기엔 골목의 규모나 형태가 비교적 구획을 따라 나뉘어 있고 집들도 대부분 마당이 딸려 있어 큼직큼직했다.
손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아 폐허가 된 집들에도 이곳의 특징인 회색빛 석기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익선다다는 낡았지만 오래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소제동에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낙후된 원도심이 젊은 창업가들을 통해 변하는 사례는 서울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지금은 많이 상업화된 익선동과 성수동, ‘힙지로’라고 불리는 을지로도 원래는 아무도 찾지 않던 구도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곳에 하나둘 모여든 젊은 예술가들과 창업가들이 도시에 새로운 색깔을 입히자 젊은 소비자가 찾는 뜨는 상권으로 부흥했다.
하지만 소제동은 ‘익선다다’라는 하나의 스타트업이 주도적으로 변화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다른 도시와 구별된다.
◆300가구 문 두드리며 6개월간 전수조사
익선다다는 소제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 6개월 동안 전수조사에만 매달렸다. 익선동에서는 새로운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소제동에서는 빈집을 채우는 게 우선이었다. 익선다다는 관사촌이 형성돼 있는 소제동과 삼성동 일대 빈집을 조사하기 위해 6개월 동안 300가구를 집집마다 돌며 문을 두드렸다. 한눈에 봐도 빈집투성이인 이 동네는 그중 50%인 150여 채가 빈집이었다.
익선다다는 소제동에 얽힌 이야기를 풀기 위해 근대 문헌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박한아 익선다다 대표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아 시간과 이야기가 그대로 보존돼 있는 이 동네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채우고 보존해 나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단순히 새로운 핫 플레이스를 만들기 위해 소제동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다. 익선다다는 1920년대부터 시작된 소제동 관사촌에 쌓인 시간과 이야기를 풀어냈다.
익선다다가 소제동에서 주목한 핵심 콘텐츠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회색빛 석기와’다. 한옥과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회색빛 석기와는 소제동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소제동에 처음 왔을 때는 동네가 아무런 색도 없이 온통 회색이었어요. 회색이 방치되고 낡으면 슬럼화돼 보이지만 잘 사용하면 아주 세련된 색이거든요. 이 지역만의 회색 톤을 지키고 관사촌 동네와 어우러지기 위해 석기와를 유지하겠다고 마음먹었죠.” 박 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익선다다는 바로 난관에 부닥쳤다. 한옥 기와와 달리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석기와는 어느 곳에서도 생산되고 있지 않았다. 익선다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변 관사들이 도로공사로 인해 부서질 때마다 기와를 모았다. 익선다다가 처음 문을 연 카페 ‘오아시스’와 ‘볕’은 익선다다가 소제동에서 느낀 이미지를 그대로 담았다.
오아시스는 홀연히 마주친 사막의 오아시스를 주제로 잡았다. 황량한 회색빛 골목 속에 유일하게 자리 잡은 카페였기 때문에 지금 소제동의 변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이름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건물과 지붕의 회색 톤이 사막의 모래를 연상시켰다”고 설명했다.
팬케이크를 파는 카페 ‘볕’은 익선다다가 소제동에 가장 먼저 선보인 공간이다. 소제동에 높은 건물이 없다 보니 햇볕이 그대로 들어와 이름을 ‘볕’이라고 지었다. 박 대표는 “단층 건물 사이로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 역시 소제동만의 특색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익선다다가 만든 공간들은 지역주의를 내세우는 ‘로컬리즘’을 극대화하고 있다. 볕에서는 충남에서 생산된 밀가루를 사용해 팬케이크를 만들고 또 다른 레스토랑 ‘파운드’는 충청도 지역 기반 식자재를 사용한다. 파운드는 서천김 페스토파스타, 예산 표고 트러플크림파스타, 금산 깻잎 리조토, 예산 꽈리고추 닭구이 등 충청도 지역에서 나는 농수산물로 전 메뉴를 구성했다.
방문객들은 지역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에서 지역 식재료를 이용한 요리를 맛본다. 그뿐만 아니라 곳곳에 다양한 농산물과 장인들이 만든 제품도 함께 전시돼 있다. 토요일에는 이곳에서 지역 생산자들이 참여하는 마켓도 열고 있다. 익선다다는 매번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통해 공간에 콘셉트를 부여한다. ‘그레이구락부’라는 이름의 카페 겸 술집은 최인훈 작가의 단편소설 ‘그레이구락부 전말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회색 클럽’이라는 뜻의 그레이구락부는 소설 속에서 광복 이후 방황하고 고뇌하던 지식인들의 도피처가 된다.
박 대표는 “시대는 다르지만 당대 지식인들의 고뇌와 방황의 배경이 되던 그레이구락부를 재현해 현 시대의 청년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현실의 도피처가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소제동의 추상적인 이미지를 콘텐츠로 풀어낸 카페도 있다. 디저트 가게 ‘층층층’은 소제동에 쌓인 ‘시간의 층’을 담은 공간이다. 음식도 밀가루 반죽이 층층이 쌓여 있는 디저트 ‘밀푀유’를 팔고 음료도 색깔에 따라 층이 구분돼 나온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사막을 연상시키는 식당 ‘솔트’는 음식과 공간을 ‘소금’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풀어냈다. 온통 흰색으로 꾸며진 실내 한복판에 소금산이 쌓여 있고 주 메뉴인 스테이크 역시 소금막으로 둘러싸여 나온다.
현재 레스토랑 ‘솔트’와 ‘온천집’은 익선다다가 익선동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기업 ‘글로우 서울’과 같이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익선다다는 딤섬을 파는 ‘홍롱롱’, 독일식 돈가스를 파는 ‘슈니첼’, 관사촌카페 등 소제동에 자리 잡은 10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익선다다는 스토리를 담은 공간을 통해 소제동에 멈춰 있던 시간을 흐르게 했다. 단순히 ‘낡은 동네’나 ‘한옥촌’이 아니라 소제동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하나의 매력이 돼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오래된 관사촌이 기성세대에게 향수이자 불편함이었다면 새로운 세대에겐 낯선 경험이자 새로운 욕구로 다가왔다.
◆임대 대신 매매로 젠트리피케이션 극복
익선동의 부활을 이끈 익선다다였지만 소제동 프로젝트는 첫 단추를 끼우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박 대표는 “서울의 낙후된 도심과 지방의 낙후된 도심은 차원이 달랐다“고 말했다. 투자를 유치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투자자들은 지방도시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아무도 찾지 않고, 사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많은 이 동네의 가능성을 보기 힘들었다.
결국 익선동에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집주인 5명이 익선다다를 믿고 초기 투자를 진행했다. 익선동 투자자들은 슬럼화된 도시의 변화를 직접 지켜봤기 때문에 이들에게 선뜻 투자할 수 있었다.
익선동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점을 몸으로 겪은 익선다다는 소제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임대 대신 매매를 택했다. 도시에 다양한 콘텐츠를 채우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다.
박 대표는 “도시가 풍부해지려면 카페와 맛집뿐만 아니라 갤러리·만화방·게스트하우스 등 다양한 콘텐츠가 들어와야 한다”며 “임대 구조에서는 계속 수익을 낼 수 있는 카페와 식당이 최선의 선택이지만 매매를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했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콘텐츠를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매로 젠트리피케이션은 피했지만 재개발 이슈는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 대전역을 중심으로 많은 지역이 역세권 개발지구로 묶여 있다. 관사촌이 남아 있는 소제동과 삼성동 역시 아파트로 재개발될 예정이다. 10년 동안 답보 상태였던 재개발은 올해부터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특히 관사가 밀집한 삼성 4구역은 조합 승인과 시행사 선정까지 마무리돼 2021년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구역에는 파운드·온천집·풍뉴가 등 익선다다가 진행한 많은 상업 공간이 포함돼 있다. 나머지 공간은 존치 관리 구역인 삼성 5구역으로 묶여 재개발 이슈가 대부분 해소된 상태다.
익선다다는 이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박 대표는 “관사촌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한 채 이뤄지는 민간 위주의 도시 재생이 어쩌면 아파트 개발보다 더 큰 변화이자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지역 주민 대부분이 재개발을 기다려왔다. 개발만 기다리던 지역 주민들은 외지에서 온 익선다다의 개발이 반갑지 않은 모양새다.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구도심이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들이 내쫓기는 부정적 의미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반면 어떤 지역 혹은 국가에서는 버려진 것처럼 방치된 도시가 개발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찾아간다는 희망의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하기는 어렵다. 다만 전문가들은 익선다다처럼 민간 위주의 도시 재생은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개발과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골목길 경제학자로 유명한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작은 골목길이라도 사람들을 이끄는 매력적인 가게만 있다면 사람의 관심과 시간을 독점할 수 있다. 특히 개성과 차별성을 가진 골목길은 도시 전체의 경쟁력이 된다”며 “ 민간 위주의 도시 재생을 통해 조용했던 주거지가 하나의 문화지구로 발돋움한 만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소제동'에서 부활한 '익선동' 신화, 박한아 익선다다 대표“소제동에 얽힌 스토리 풀자, 2030이 반응했죠” 낡은 동네 ‘소제동의 변화’를 만든 주체는 대전시나 대전 관광공사가 아니다. 소제동의 숨은 가치를 발견한 익선다다는 2014년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한옥촌 ‘익선동’을 부활시킨 주인공이다. 이들은 대전에 잠재돼 있던 고유의 모습을 끌어내 ‘철도’ 도시였던 대전의 100년 전과 현재의 모습을 공존하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이들이 또다시 소제동의 땅값만 올리고 나간다며 우려한다. 하지만 이들을 단순히 ‘시세 차익만 노리는 디벨로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익선다다가 오랫동안 방치됐던 소제동에서 지방자치단체와 정부도 하지 못했던 도시 재생을 가능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뜨는 동네를 직접 만들어 내는 이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익선다다가 도시 재생을 통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일까.
-익선다다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익선동 프로젝트를 할 당시에는 우리가 ‘홍대에 자리 잡은 1세대 예술가’ 격이라고 생각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더라도 쫓겨나는 것은 우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거의 열악함을 떠나 그곳에 세 들어 살고 있던 누군가는 우리가 만든 변화로 그곳을 떠났다. 우리가 변화를 주도한다는 대의 아래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었다. 이후 도시 재생에 있어 민간 플레이어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우리 같은 1세대는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그 지역 전체를 개발하지 않는다. 도시가 특색을 유지한 채 부활할 수 있도록 마중물의 10%를 붓는 정도다. 소제동은 300채 집 중 10채를 사들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리가 변화의 그 마중물을 부어 지역 이미지를 제고하고 동네가 활성화된다면 지역 전제에는 훨씬 큰 이득이다. 소제동을 기획할 때는 전수조사부터 꼼꼼히 했고 궁극적으로는 이곳의 정주 인구를 늘리기 위해 활동해 나갈 것이다.”
-익선동에서 소제동으로 옮겨온 이유는 수도권에서 소도시로의 관점 이동인가.
“2014년부터 익선동에서 활동했는데 2016년 하반기부터는 우리의 역할이 웬만큼 끝났다. 외부 투자자들이 너무 많이 몰려왔던 상황이라 또다시 임대를 얻어 더 많은 상업 공간을 만들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익선다다가 도시 재생을 선도하는 역할이라면 새로운 도시 재생 모델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익선다다가 단순히 슬럼화 된 동네라고해서 다 뛰어드는 것도 아니다. 처음 소제동이라는 동네를 발견했을 때 소름이 끼쳤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모습 그대로 원형이 남아 있었다. 철도 관사 시대에 얽힌 이야기를 잘 풀어내면 지금 세대에게 새롭고 재미있게 다가갈 것이라 생각했다.”
-소제동에서 가게 하나가 아니라 동네 전체를 바꿨다.
“지역 전체를 활성화하는 것은 회사라는 팀이 들어가 조직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역의 색깔을 온전히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백지 상태로 시작해 100년 동안 남아 있던 이 동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다음에 들어오는 플레이어들에게도 최소한의 가이드를 남기고 싶었다. 이 동네에 대한 정의를 먼저 하고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너도나도 상인의 마음으로 들어와 난개발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소제동을 중심으로 대전이 점점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주 하면 전주 한옥마을을 떠올리듯 대전 하면 소제동 철도관사촌에 여행 가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다. 의미 있는 변화도 생기고 있다. 이번 추석에 많은 이들이 오셨는데 다 가족 단위로 왔다. 젊은 친구들이 친척들을 다 데리고 왔다. 사실 백화점이 핫하다고 해서 친척들과 다 같이 가지는 않는다. 이미 소제동이 관광지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식음료뿐만 아니라 세대를 아우를 수 있고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지방에서 살아본 적 있나 고향이 충남 공주다. 대학도 충남대를 나와 대전은 나에게 고향같은 도시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 2017년에 소제동을 처음 방문해봤다. 대전역 바로 뒤인데도 대전 토박이 친구들이 아니면 소제동에 대해 잘 모른다. 소제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공동대표인 박지현 대표와 내가 모두 1년 전 대전으로 이사왔다.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의 핵심은 스토리다.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지역과 연계된 스토리가 묻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시장에서 블루보틀이 핫하다고 해서 그대로 가지고 들어오면 대중은 오히려 식상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장인정신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는지, 그 공간이 지역의 스토리를 얼마나 새롭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도시를 온전히 새롭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익선다다가 일하는 방식이 ‘소비적인 관점’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비적인 관점이 맞다. 그런데 소비 트렌드가 너무 빨리 바뀐다. 요즘엔 상가임대차보호법이 끝나기도 훨씬 전인 3~4년 안에 소비 흐름이 바뀐다. 계속 새로운 매장이 생겨나고 기존 매장은 이유 없이 도태된다. 활성화되는 핫한 지역은 단골보다 신규 소비자가 계속 영입되다 보니 소비자들이 새로운 브랜드를 찾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이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10년으로 바뀌면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됐다. 이제는 임대차 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장사의 문제다. 이제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쫓겨나는 사람들보다 소비 패턴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도태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소비 패턴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브랜드의 힘이 더 중요해졌다. 오래 살아남으려면 스토리와 브랜드를 유지 관리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익선다다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오프라인 플랫폼이다. 지역에서 예술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나 상업 공간을 만드는 친구들, 공간 디자인을 하는 친구들과 협업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소제동 프로젝트에만 총 17팀이 참여했다. 우리가 지역을 선정하고 기획을 통해 투자를 받고 나면 그 이후에는 다양한 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싶다. 결국 익선다다의 기획을 중심으로 만드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모두 모이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9호(2019.11.04 ~ 2019.11.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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