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레포트 Ⅰ]
-강동수 SUPEX추구협의회 SV추진팀 부사장
-“재무제표 표준화에도 수백년 걸려, SV 계량화는 이제 시작이죠”
“사회적 가치, 마이너스 성과도 그대로 공개…개선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SK그룹의 ‘사회적 가치(SV)’ 추구의 첨병 역할을 하는 조직이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회다. SV를 측정하기 위한 지표를 개발하는 것은 물론 직원들이 경영 전반에 이를 적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SV를 측정하기 위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 등 다양한 임무를 맡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의 모습에 대한 실질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실행해 나가는 역할인 셈이다.
지난 10월 5일 SK그룹 본사에서 강동수 SUPEX추구협의회 SV추진팀 부사장을 만나 ‘사회적 가치 측정’의 의미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SK그룹은 다양한 방식으로 ‘SV’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SV인가요.


“일반적으로 SV라고 하면 ‘착한 일’ 혹은 ‘착한 기업’을 먼저 떠올립니다. 기업이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는 것을 넘어 ‘착한 기업’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추구하는 SV가 ‘경제적 가치(EV)’를 포기하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비영리단체(NPO)가 아니니까요. EV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기도 하고요.

다만 더 이상 EV만 좇아서는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SV를 추구하는 것은 SK그룹의 경영 철학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본시장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고 이와 같은 시장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결정이기도 합니다.”


-자본시장에서 기업의 SV 추구를 요구한다면 어떤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나요.


“이미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자본시장이 SV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 투자 자산 중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 비율이 26%에 달합니다. TPG·베인캐피털과 같은 주류 금융사들이 임팩트 투자 영역에 대규모 펀드를 조성하며 참여하고 있어요. 자본시장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기업들 또한 빠른 속도로 이와 같은 흐름에 부응해 가고 있습니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선언만 해도 구글·애플·제너럴모터스(GM)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전환 이행을 선언하고 있고요. 이미 수많은 기업들이 ‘메가트렌드’ 관점에서 SV를 중요한 전략으로 삼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무엇보다 SV는 ‘새로운 시장’으로서의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인류는 해양 쓰레기와 빈곤·교육 등 거대한 도전들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기업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기업은 사회적 이슈에 유연하고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고 보유한 기술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새롭고 창의적인 시도를 통해 해법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SK에서 개발 중인 SV 측정 지표는 기존의 ESG 등과 어떻게 다른가요.


“SV를 측정하기 위한 방법들은 우리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SV를 추구하기 위해 ‘측정 지표’가 중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죠. 하지만 이를 측정할 때 어떤 단위를 사용하느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예를 들어 공장의 제품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₂) 배출을 줄이는 공정을 도입했다면 이와 관련한 성과를 ‘톤’으로 나타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이와 비교해 현재 우리가 추구하는 측정 방식은 모든 것을 ‘화폐단위화’하는 것입니다. ESG와 마찬가지로 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에서의 기업 경영 활동 성과를 측정하지만 이를 ‘화폐단위’로 치환해 재무제표와 같은 회계 장부에 기록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SV를 ‘화폐단위화’했을 때 얻게 되는 이점은 무엇인가요.


“화폐단위든 아니든 SV를 측정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객관적인 지표로 ‘측정’할 수 있어야 이를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는 기준점을 삼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를 측정하는 데 ‘화폐’를 단위로 삼겠다는 것은 결국 단 하나의 사회적 활동에서 나타나는 성과가 아니라 기업의 경영 활동 전반에서 창출되는 다양한 사회적 활동들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함으로써 경영적 판단의 근거로 삼기 위한 것입니다. 기업들에는 무언가의 성과를 측정하는데 ‘화폐’라는 단위가 가장 익숙하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착한 일’이라고 하면 어디까지가 착한 일일까요. 북한이탈주민을 돕는 것은 착한 일일까요. 그렇다면 이건 ‘얼마나’ 착한 일일까요. 한국의 중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과 그 착한 일의 정도를 비교할 수 있나요. 당연히 각각의 ‘착한 일’에 따라 우리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impact)이 다르겠지만 각기 다른 착한 일들의 단위를 ‘화폐화’한다면 같은 기준을 갖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단순히 ‘착한 일을 하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착한 일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추구하는 데는 훨씬 유리한 겁니다.”
“사회적 가치, 마이너스 성과도 그대로 공개…개선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지난 5월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들의 SV를 측정해 발표했습니다. 측정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내부적으로 SV 측정과 관련한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가장 어려운 도전이었습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반도체 생산은 회사의 ‘경제적 이익’ 관점에서도 물론 중요하지만 국내 주력 산업으로서 ‘경제 간접 기여 성과’가 매우 큽니다. 그런데 반도체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배출되는 CO₂ 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죠. 그러다 보니 SK하이닉스의 경우 경제 간접 기여 성과에서는 9조9000억원의 가치를 창출한 반면 비즈니스 사회 성과에서는 마이너스 4575억원의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이처럼 불가피하게 마이너스를 낼 수밖에 없는 항목들이 있으니 초기만 하더라도 관계사들로서는 불편함을 호소할 수밖에 없죠.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강조했던 것은 SV 측정이 ‘지금 얼마나 잘하고 있나’를 보겠다는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더 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 위한 지표라는 것이었습니다. SK하이닉스의 비즈니스 사회 성과에서 올해 마이너스 4575억원의 가치를 창출했다면 내년에는 이를 어떻게 더 줄여 나갈까 고민할 수 있는 ‘개선의 시발점’이 되는 겁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SV가 그만큼 경영 목표를 설정하는 데 중요한 목표로 제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어느 지점’에서 SV와 EV의 균형을 잡아 나가야 할지는 큰 과제입니다.”


-현재 이 지표를 통해 SV를 측정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SV를 측정할 수 있는 범위는 매일매일 달라지기 때문에 그 숫자를 정확하게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SV를 측정하는 게 불가능한 분야도 있고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측정’이라는 것은 결국 ‘데이터’가 기반입니다.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SV 측정이 현재 가능해진 데는 다양한 데이터를 연결해 줄 수 있는 플랫폼이 그만큼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는 만큼 앞으로는 SV를 측정하기 위한 더 다양한 방법들이 개발될 테고 그 결과 또한 더욱 정교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SK그룹은 지난 5월부터 SV를 핵심성과지표(KPI)에 50%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 SK그룹 내부적으로도 변화가 느껴지나요.


“처음에는 내부적으로도 많이 혼란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SV를 KPI에 반영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지금까지 해 오던 기업 경영 활동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세워 나가야 하는 과정이니까요. 그렇다고 직원들이 손 놓고 있을 수 있나요. KPI에 반영한다는 것은 실제로 인사 평가나 인센티브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니까요. 어떤 신제품을 기획한다고 하더라도 이 신제품의 SV를 더욱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내부적으로도 이번 결정은 SV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고 있고 직원들도 상당히 빠르게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최근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상당수의 직원들이 ‘우리 회사가 SV를 주도하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는 답변이 많았어요. 또한 자신들의 업무에서 SV를 실현해 가고 있다는 이 자부심이 직원들의 행복과도 연관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SV 측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SK가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SK가 SV 측정을 시작했지만 이를 더 많은 그룹들이 적용하고 SV를 높여 나가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SV 측정 지표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문제겠죠. SV의 측정 체계는 아직 부족한 점이 있고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예정입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 피해 관련 사건·사고, 지배구조 개선 성과, 법규 위반 사항 등은 객관적인 측정 방법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지만 미반영 항목을 주석에 표기하고 추후 반영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SK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다양한 기업들과 전문가들과 협력을 넓혀 나가고 있습니다. 향후 SV를 일종의 재무제표 형태로 작성해 공개하는 방안을 현재 회계학자들과 공동으로 연구 중입니다. 바스프(BASF)와 같은 SV 측정 체계 개발에 관심이 높은 글로벌 기업들과 VBA((Value Balancing Alliance)라는 연합체를 구성해 ‘사회적 가치 계량화 연구와 글로벌 표준화 작업’도 진행 중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SV를 계량화한다는 데 여전히 실현 가능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결국은 우리가 진정성을 갖고 꾸준히 노력해 결과로 보여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무제표처럼 EV를 평가하는 체계를 정교화하고 표준화하는 데도 몇 백 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에 비해 SV를 평가하려는 노력은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물론 예전과 비교하면 데이터가 많기 때문에 SV를 측정하는 데 EV 지표를 개발하는 것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보지만 그만큼 어려운 도전인 것만은 분명하죠.

하지만 이와 같은 ‘사회적 가치 추구’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사회적 가치 측정’ 지표의 개발은 기업을 경영하는 데도 점점 더 중요도가 높아질 것입니다. 기업이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이 제품의 SV를 측정하는 경우가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또 기업들 간의 인수·합병(M&A)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 기업의 SV에 대한 평가는 더욱 중요한 경영 판단의 항목이 될 테고요. 그야말로 ‘블루오션’인 겁니다.
고무적인 것은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SV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 5월 진행했던 사회적 가치 축제 ‘SOVAC(SOcial VAlue Connect) 2019’만 하더라도 4000명의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관심입니다. 최근에는 SK그룹의 SV 측정 방식을 포스코와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SV 추구’에 대한 SK의 진정성이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0호(2019.11.11 ~ 2019.11.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