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12월 초 선거법 개정 땐 소수 정당에 유리…‘변혁’·우리공화당 적극 나설 이유 없어
빅텐트? 빈텐트?…선거법 개정에 달린 보수 통합 운명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보수 통합을 공론화했지만 협상은 더디기만 하다. 통합의 범위와 방식에 대해 한국당과 신당을 추진하는 바른미래당 내 ‘변혁(변화와 혁신을 위한 바른행동)’과 우리공화당 등의 시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당 내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계, 변혁 내 유승민계와 안철수계 사이에서도 각기 견해차가 나타난다. 보수 통합은 설(說)들만 난무한 채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변혁을 이끌고 있는 유승민 의원은 11월 초 한경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통합의 3대 원칙을 명확히 제시했다. △한국당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어야 하고 △새 집을 지을 땐 개혁적 보수를 가치로 삼아야 하며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것이다.

황 대표는 11월 14일 유 의원의 제안에 대한 대강의 답을 내놓았다. 그는 “자유 우파 정당·단체들과 협의체를 만들어 (유 의원의 3원칙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 대표는 대통합 과정에서 한국당 간판을 내려놓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 통합, 산 넘어 산…범위와 방법, 탄핵 놓고 견해차 커

하지만 한국당 내에선 유 의원의 주장에 대한 이견이 적지 않다. 우선 통합 방식과 관련해 ‘큰집론’이 대세다. 한국당이 통합의 중심이 돼 ‘작은집’을 흡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 이름을 바꾸는 ‘리모델링’ 정도는 수용할 수 있지만 그 수준을 넘어 당을 완전히 풀어헤쳐 유승민계와 우리공화당을 두루 섞는 데 대해선 부정적인 기류가 적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친박(친박근혜)계 내에선 유승민계와 통합하는 것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김진태 의원은 “유 의원을 꽃가마 태워 데려오는 것은 보수도, 통합도 아닌 분열의 씨앗”이라며 “유 의원을 데려와 공천을 주면 그간 당을 지켜오고 싸워 온 사람들을 어떻게 잘라낼 것이냐”고 말했다.

통합을 위한 핵심 과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문제다. “탄핵은 지나간 역사로 하자”는 유 의원의 주장에 대해 황 대표는 “탄핵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과거를 넘어 미래로 가야 한다”고 했다. 유 의원의 뜻에 동조하는 발언으로 읽힌다.

그러나 우리공화당은 완강하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공동대표는 기자에게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배신자들과는 함께할 수 없다”며 “이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통합·연대는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황 대표는 탄핵에 대한 양측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뚜렷한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통합이 지지부진한 데는 내년 총선 공천 방식과 관련한 지분 문제도 깔려 있기 때문이다. 변혁이 한국당에 국민경선공천제를 제안했다는 설이 터져 나오면서 논란이 일었다. 변혁 일각에선 국민경선 도입 등을 통한 공천권에 대한 한국당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변혁의 다른 축인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통합에 대한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도 또 다른 변수다. 이 때문에 유승민계와 안철수계의 의견 통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각 정파 간 이런 복잡한 상황 때문에 한국당과 변혁 내 유승민계·안철수계, 우리공화당을 모두 포괄하는 황 대표의 이른바 ‘보수 빅텐트’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탄핵 문제에 대한 변혁과 우리공화당 간 접점을 찾기 쉽지 않은 만큼 통합 범위는 한국당과 변혁 내 유승민계 간 ‘스몰텐트’에 그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원유철 한국당 보수대통합추진단장은 기자와 만나 “통합은 결국은 될 것”이라면서도 “유승민계 의원들은 통합에 응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우리공화당은 사정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당 내 비박계와 유승민계에선 소통합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국 247석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수도권(122석)과 중도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소통합이 유리하다는 판단도 하고 있다.

비박계 김무성 의원이 유승민계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당명 변경→황 대표 체제 해체→비상대책위 겸 총선선대위 구성→황교안·유승민 등 보수 야권 차기 대선 주자 참여→대선주자 수도권 험지 출마→여론 조사 방식 공천’이라는 플랜 A도 이런 소통합을 염두에 둔 것이다.

황 대표 체제 유지와 유 의원의 선대위 참여 등 플랜 B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내에선 범보수 대통합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 만큼 통합 범위를 두고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통합의 또 다른 핵심 변수는 선거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 여부다.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지역구 의석수와 비례대표를 연동해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담은 선거법 개정안은 ‘패스트 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돼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12월 3일 이후 패스트 트랙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 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빅텐트? 빈텐트?…선거법 개정에 달린 보수 통합 운명


◆ 한국당, 통합 위해서라도 선거법 개정 저지에 ‘사활’

만약 선거법 개정안이 이대로 처리된다면 통합 작업은 난관을 만날 게 뻔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소수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변혁과 우리공화당은 지역구에서 선거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늘어난 비례대표(47석→75석)에서 의석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변혁과 우리공화당 모두 선거법 처리 시 통합보다 독자 생존 쪽으로 활로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

변혁이 통합보다 신당 창당에 무게를 두고 있는 배경이다. 유 의원은 “당분간 한국당과의 통합 논의 기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변혁 신당추진기획단 공동단장인 유의동·권은희 의원도 “한국당과의 통합은 없다”며 “통합 노력은 향후 신당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법 개정안 처리는 결국 각자도생(各自圖生), 분열을 의미한다. 반대로 선거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되면 통합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황 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지도부는 선거법 개정안 저지를 위해 최후 방어선을 치고 있다.

의원직 총사퇴 카드까지 거론된다. 12월 초에는 결판나게 될 보수 통합이 ‘빅텐트’가 될지, ‘빈텐트’가 될지, ‘스몰텐트’가 될지 주목된다.

하지만 통합에 앞서 ‘무엇을 위한 통합’인지 보다 분명히 제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윤여준 환경부 전 장관은 “황 대표가 국민을 설득할 의제·진로·비전을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 의원이 제시한 개혁적 보수에 대한 방침을 명확하게 밝히고 통합 정당이 추구할 가치·정체성을 정립하는 일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보수 통합은 ‘빅텐트’가 아닌 ‘빈텐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향점 없이 추진하는 보수 통합은 한국 정치사에서 흔히 봐 왔듯이 선거를 앞둔 정략 차원의 또 다른 이합집산에 불과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1호(2019.11.18 ~ 2019.11.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