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폴리틱스]
-예산안 두 달 넘게 방치, 막판 허둥지둥·‘재정 지킴이’보다 증액 앞장 ‘구태’…개선 노력 안 해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예산 심의 5가지 병폐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예상했던 그대로다. 올해도 어김없이 구태가 반복됐다. 매년 되풀이되는 병폐지만 개선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국민 혈세를 한 푼이라도 소중하게 여겨 허투루 쓰이는 데가 없는지, 써야 할 곳에 제대로 배정됐는지 꼼꼼하게 따져보고 지적해야 할 국회 예산 심의가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국회는 해마다 ‘예산 심의 구태’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매년 늑장 처리하는 데 대해 심사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식상할 정도로 제기됐지만 올해도 귓등으로 흘려보내면서 내년도 예산안은 법정 처리 시한(12월 2일)을 훌쩍 넘겼다.

국회 각 상임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지역구 예산을 뻥튀기하고 실세들의 지역구 예산을 늘리는 데는 여야 모두 한통속이다. 이 때문에 최후의 ‘재정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국회가 오히려 퍼주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나라 살림이 정쟁에 발이 묶여 흥정거리로 전락한 것도 예년과 판박이다. 올해 예산 심의에서 나타난 5대 병폐를 짚어봤다.

①막판 몰아치기 심의로 인한 ‘국회 리스크’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지난 9월 3일이다. 올해보다 9.3% 늘어난 513조5000억원 규모의 ‘초(超)슈퍼예산’이다. 예산 규모는 매년 늘어나지만 국회 심의 기간은 변함이 없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국회는 정부의 예산안 제출 이후 두 달 넘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의원들이 자기 이름을 알리기 좋은 기회인 국정 감사에 온 힘을 쏟으면서 예산안은 뒷방 신세가 됐다.

국회가 예산안 심사에 본격 들어간 것은 11월 22일부터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불과 열흘 앞두고 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그나마 소소위 구성 등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는 등 툭하면 심의가 중단됐다.

간사 선임, 소위원회 구성, 휴일과 휴회 등을 감안하면 법정 처리 시한까지 실제 심의는 1주일도 채 안 됐다. 이 기간에 513조5000억원을 두고 분야별 증액과 감액 심의를 하고, 17개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올라온 예비 심사 결과를 모두 살펴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니 올해도 법정 처리 시한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현행 헌법이 적용된 1988년부터 국회 선진화법이 적용된 2014년 이전까지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이 지켜진 것은 여섯 번에 불과하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예산안 심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12월 1일 정부안을 자동으로 본회의에 회부하는 선진화법이 적용된 이후에도 6년 동안 한 차례만 법정 처리 시한이 지켜졌다. ‘위법 국회’가 상습화되고 있는 것이다. 막판 몰아치기, 부실 예산 심사가 뻔히 예견돼 왔지만 국회는 개선점을 찾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②법에도 없는 ‘소소위(小小委)’에서 짬짜미 심의

심의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는 올해도 법 규정에도 없는 ‘소소위’를 구성해 운영했다. 예산안조정소위가 여야 15명으로 구성되다 보니 밀도 있는 심의가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소소위엔 보통 교섭단체(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예결위 간사 3명과 기획재정부 관계자가 참석한다. 협상이 교착되면 각 당 원내대표 또는 정책위원회 의장이 참여해 주고받기 식 타협을 시도한다.

속기록 작성도 하지 않아 매년 밀실 야합, 흥정 논란이 일었다. 올해는 김재원 예결특위 위원장이 ‘짬짜미 심사’를 막기 위해 소소위도 속기록을 작성할 것을 제안했지만 민주당이 반대하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③국회 각 상임위 지역구 예산 뻥튀기 되풀이

정부가 예산안을 제출하면 국회 각 상임위원회가 해당 부처 예산을 먼저 심사한다. 이 과정에서 각 상임위는 앞다퉈 지역구 예산 증액에 나선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당뿐만 아니라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재정 중독’이라며 대대적인 삭감을 예고한 한국당 의원들도 예산 불리기에 나섰다. 각 상임위는 11조원 넘게 증액한 내용의 예비 심사 보고서를 예결특위에 넘겼다.

예년과 같이 지역구 예산과 밀접하게 관련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3조4374억원으로 가장 많다. 국토교통위원회가 2조3192억원으로 그다음을 이었다.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증액된 대표적 지역구 예산 사업은 경기 안성~구리 고속도로(3620억원), 김포~파주 고속도로(733억원), 경남 함양~울산 고속도로(722억원) 등이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어 지역구 예산 늘리기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예산 심의 5가지 병폐


④실세들 예산 나눠 먹기


실세들의 예산 나눠 먹기 현상은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지역구인 세종과 안성을 잇는 고속도로 사업 추진을 위해 399억원 증액 요청이 있었다.

윤호중 민주당 총선기획단장의 지역구인 구리시 도로 개설 사업에 48억원이 더 필요하다는 요청도 들어왔다. 김재원 위원장은 경북 상주와 의성 사이 국도 개선비용 176억원의 증액을 요청했다. 이 밖에 각당 실세와 예산 심의를 하는 예결위 위원들도 앞다퉈 자신들의 지역구 사업 증액에 나섰다.

⑤정쟁에 볼모가 된 예산안

나라 살림 심의가 정쟁에 발목이 잡히는 현상도 되풀이됐다. 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등 쟁점 법안을 놓고 싸우느라 예산은 뒷전에 밀렸다. 국회법상 예산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과거 다른 현안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본회의 자체가 열리지 못해 예산안 처리도 지연된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⑥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이런 고질적인 부실·지각 예산안 심의 ‘적폐 시스템’을 하루 빨리 개선해야 하다는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나왔다. 국회의원들도 동의한다. 하지만 매번 말뿐이다. 매년 예산안을 늑장 처리하고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 여야 지도부는 “개선점을 찾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됐다.

전문가들은 우선적으로 개선돼야 할 과제로 비상설화로 돼 있는 예결특위를 상설 상임위로 전환하는 것을 꼽는다. 예결특위가 비상설화돼 있다 보니 예산·결산 심사 시기에만 가동된다. 예결특위는 보통 8월에 구성돼 예산안이 통과할 때까지만 운영된다.

이런 시스템을 상설 상임위 체제로 바꿔 1년 내내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가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일본·영국·프랑스 등 대부분 선진국들은 이렇게 운영된다.

9~10월에 실시되는 국정 감사를 정기 국회 이전으로 앞당겨 실시할 필요도 있다. 정기 국회 땐 예산안과 법안 심사에 주력할 수 있게 하자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되면 예산안 실제 심사 기간도 두 달 정도 늘어나게 된다.

예산안 제출 시기를 앞당겨 심의 기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리 정부는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다음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의할 수 있는 총기간은 60일이다.

물론 국감 등과 겹치는 바람에 실제 심의 기간은 매년 2~3주밖에 안 된다. 국감을 옮겨 60일간 온전히 예산안 심의에 집중하도록 하더라도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심의 기간이 짧다. 미국은 회계연도 시작 8개월 전에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영국·독일·프랑스 등은 4~5개월 동안 예산안 심의에 집중한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4호(2019.12.09 ~ 2019.12.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