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계 1위 산와머니 9개월 ‘개점휴업’…지속되는 저성장에 장기 전망도 어두워
악화되는 영업 환경에 사업 접는 대부 업체들
(사진) 명동역 인근에 붙어있는 대부업 광고/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대부업의 쇠락 조짐이 뚜렷하다. 업계 1위 산와머니는 지난 3월부터 신규 대출을 하지 않고 있다. 2위 러시앤캐시도 저축은행 인수를 계기로 향후 대부업에서 철수할 계획이다. 이 밖에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는 영세 업체들도 속속 사업을 접고 있다.

대부업이 흔들리는 가장 큰 이유는 법정 최고 금리 인하다. 대부업체들이 돈을 빌려주고 받을 수 있는 이자가 줄어드는 만큼 수익성 악화는 당연하다.

정부는 대부업법이 제정된 2002년 연 66%였던 법정 최고 금리를 총 여섯 차례에 걸쳐 내렸다. 특히 연 27.9%에서 연 24.0%로 또 한 번 인하된 지난해부터 대형사에서도 ‘못 버티겠다’는 비명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서민금융연구원이 올 초 대부 업체 250곳을 조사한 결과 연 24.0%로 최고 금리를 인하한 이후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고 밝힌 곳이 24.7%였다.

대부업계 1, 2, 4위 업체는 동시에 사업 철수 수순을 밟고 있다. 17조원 안팎(대출 잔액 기준)에서 정체돼 있는 대부업 시장의 외형이 가파르게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1위 산와머니는 영업 재개 여부가 불투명하다. 철수설도 솔솔 나오고 있다. 러시앤캐시·원캐싱·미즈사랑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2위 아프로패이낸셜대부와 웰컴론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4위 웰컴크레디라인대부는 업종 전환을 준비 중이다.

아프로는 OK저축은행을, 웰컴은 웰컴저축은행을 2014년 각각 인수했다. 금융위원회는 인수를 승인하면서 “2024년까지 대부업을 정리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원캐싱과 미즈사랑은 폐업했고 러시앤캐시와 웰컴론은 대출 잔액을 40%씩 줄였다.

정부의 정책 금융도 대부업엔 위협 요소다. 대부업의 주 영업 대상은 신용 등급 7~10등급의 저신용자다. 햇살론·미소금융·새희망홀씨·바꿔드림론 등 투입된 정책 서민 금융 상품 자금이 2015년 4조7000억원에서 2017년 6조7000억원, 2018년 7조2000억원에 달해 대부 업체 자금 공급을 대체했다.

◆TV 광고 휩쓸던 대부 업체들의 전성기


한때 대부업은 고성장 업종이었다. 대부업의 성장은 외환 위기와 맞물려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권고에 따라 1998년 이자제한법이 폐지된 이후 연 수백% 금리의 사채와 불법 추심이 기승을 부렸다. 당시 전국 사채업자는 4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살인적 고금리’를 통제하기 위해 사채를 제도권으로 흡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2002년 등록제 도입과 최고 금리 제한을 핵심으로 하는 대부업법이 시행됐다.

합법적으로 연 66.0%의 이자를 받을 수 있게 되자 일본계 대부 업체가 국내에 몰려들었다. 대부 업체 창업도 줄을 이었다. 대형화된 업체들은 연예인을 내세운 TV 광고를 쏟아부었다. ‘30일 무이자’, ‘누구나 300만원’ 같은 자극적인 마케팅도 도입했다. 제도권 흡수 5년 만인 2007년엔 등록 대부 업체 수가 1만8197개까지 늘어나며 정점을 찍었다.

과열된 마케팅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대학생과 주부가 대부 업체에 발을 들였다가 ‘고금리의 노예’로 전락하기도 했다. 급기야 정부는 금리 인하, 광고 통제, 중개 수수료 제한 등 각종 규제를 본격화했다. 2015년부터 자산 100억원 이상 대형 대부 업체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금융위원회에 등록하도록 했다.

대부업계는 법정 최고 금리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인하됐다고 하소연한다. 주요국 중 최고 금리가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일본 정도다. 그나마 일본 정부는 최고 금리를 20%포인트(1991년 40%→2010년 20%) 내리는 데 19년이 걸렸다. 한국은 똑같은 20%포인트(2010년 44%→2018년 24%) 폭의 인하를 8년 만에 해치웠다. 대부금융협회 측은 “일본은 3년 6개월의 유예 기간을 둬 충격을 흡수했다”며 “한국은 조정 기간조차 6개월에 불과했다”고 했다. 2018년 말 기준 국내 등록 대부 업체는 8310개로 10년 새 반 토막이 났다.

대부업의 쇠락은 통계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금융권에 따르면 신용 대출액 기준 대부업 상위 69개사의 올 상반기 말 현재 신규 대출액은 2조862억원으로 집계됐다. 2017년 하반기 기준 3조3640억원과 비교하면 1년 6개월 만에 38% 줄어든 것이다. 특히 서민 자금줄인 소액·무담보 신용 대출이 크게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대부 업체가 새로 취급한 신용 대출액은 3조1953억원에서 1조7351억원으로 45.7% 줄었다. 임승보 대부금융협회장은 “과거 신용 대출의 중심이었던 대부 업체들이 이제 안전한 담보 대출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부 업체들은 심사도 대폭 강화했다. 업계에 따르면 2015년 21.2%였던 대부업의 대출 승인율이 올 상반기에 12.1%로 떨어졌다. 대출 승인 건수 역시 2015년 165만3000건에서 올해 62만9000건으로 33.4% 줄었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업의 쇠락이 반드시 대부 업체의 쇠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즉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스신용평가 정보에 따르면 2012년 말 9188개에 달했던 개인 운영 대부 회사는 2018년 말 5525개로 크게 줄었다. 반면 자산 100억원 이상의 대형 대부 회사는 같은 기간 129개에서 247개로 증가했다.
악화되는 영업 환경에 사업 접는 대부 업체들
◆대형사들은 오히려 실적 늘기도


실제로 최근 업계 3위 리드코프의 경영 실적은 상승세다. 리드코프는 대부업계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올해 상반기 매출액 2607억원, 영업이익 243억원의 실적을 달성하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5.3%, 11.8% 증가해 ‘어닝 서프라이즈’를 거뒀다.

DB금융투자에 따르면 리드코프의 핵심 사업인 소비자금융 부문 영업수익이 지난해 4월 법정 최고 금리 인하의 영향으로 전년 동기 대비 6.9%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대손 상각비, 마케팅비용 감소, 대출 채권 매각 이익 등으로 6.7% 늘었다. 대손 상각비는 488억원에서 436억원으로 줄었고 모집비 등 지급 수수료도 113억원에서 71억원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경하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리드코프에 대해 법정 최고 금리가 인하되면서 소비자 금융 부문의 외형 성장은 멈췄지만 비용 통제가 강화돼 수익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생사들의 신규 대출이 축소되면서 마케팅 비용 부담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대부업에서 저축은행으로 업종 전환을 준비 중인 이른바 ‘대부업계 저축은행’은 저축은행업계에서 일종의 ‘메기 효과’를 내고 있다. 노지현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대부업계 저축은행은 저신용자에 대한 신용 평가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저축은행 시장에서 오랜 사업 경험에 기반한 영업 노하우와 우수한 신용 평가 시스템을 바탕으로 가계 대출 자산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 책임연구원은 “당분간 대부업계의 업황이 지금보다 크게 어려워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국내 경제의 저성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경기 민감도가 높은 저신용자 대상 신용 대출 사업이라는 구조에 따라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늘어나는 가계 부채가 부실화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대부업의 부실화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hawlli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6호(2019.12.23 ~ 2019.12.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