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뛰어난 ‘스킬’ 만으로는 서로 공감 어려워…상대에 대한 ‘호기심’ 갖고 관찰해야
원활한 소통은 상대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다
[김한솔 HSG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A 기업에서 팀을 이끌고 있는 리더가 과거 함께 일하다 다른 부서로 발령받은 B 과장을 사무실에서 우연히 만났다. 리더는 반가운 마음에 B 과장에게 차 한잔 건네며 “옮긴 팀에서 일은 괜찮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B 과장은 “충분히 배려해 줘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반갑게 불러 세우긴 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어진 리더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다시 대화를 이어 간다. 대화를 잘하려면 ‘질문’이 중요하다고 하니 계속해 물어보기를 시도한다.
리더가 “둘째 아들은 잘 크고 있느냐”고 질문하자 B 과장은 “저는 쌍둥이 딸만 둘입니다”라고 답하며 멋쩍게 웃었다.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리더는 다시 “내가 헷갈린 것 같아. 딸들이 이제 몇 학년이지”라고 되물었다. B 과장은 “학교 입학은 아직입니다. 이제 내년에 여섯 살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몇 번의 어색한 질문이 오간 뒤 대화는 끝났다. 리더와 B 과장의 어색한 소통. 왜 이렇게 됐을까.

질문으로 시작된 리더의 대화 ‘스킬’은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알맹이’다. 사람들이 가끔 착각할 때가 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스킬’이 중요하다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질문법’을 공부하고 ‘경청’의 원리를 배운다.

물론 이런 부분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에 앞서 준비해야 하는 게 있다. 바로 ‘마음’이다. 자기 앞의 상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소통 스킬이 부족해도 통할 수 있는 대화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진짜 소통을 원하면 ‘자기 얘기’는 참아라


‘실리콘밸리’ 하면 신기술과 높은 연봉, 치열한 경쟁 등 다양한 단어가 생각날 것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수많은 기술들이 나오는 그곳, 실리콘밸리의 리더들이 구성원들에게 ‘항상’ 묻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과연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건네면 일반적으로 기술 개발이 중요한 곳이니 ‘개발 진척도’를 매일매일 체크하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혹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미 탁월한 사람들이니 일 관리는 필요 없을 테고 ‘뭘 도와줄 수 있을까’를 묻고 있다는 응답도 돌아온다.

둘 다 필요한 질문이고 리더가 해야 할 일은 맞다. 그런데 이들이 구성원에게 관심을 갖고 하는 질문은 의외였다. 바로 “당신은 행복한가”가 답이다.

그냥 의례적으로 “괜찮아”라고 묻는 게 아니다. 정말 행복한지 계속 묻고 또 묻는 게 이들의 문화라고 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리더들이 착해서가 아니다. 그게 조직의 성과 창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크게 2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는 이 질문을 통해 ‘조직 생활에서의 행복도’를 파악할 수 있다. 팀 동료와 마찰은 없는지, 다른 프로젝트 리더와 갈등은 없는지, 혹은 업무량이 너무 많아 허덕이고 있지 않은지를 ‘행복한가요’라는 질문 하나로 파악해 볼 수 있다. 이렇게 파악된 정보를 토대로 리더는 조직 내 갈등 해결에 나설 수도 있고 업무 재분배 등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둘째가 더 중요한데 구성원을 ‘제대로’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 내 이슈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주말에 행복한 일이 있었다면 혹은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다면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며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흔히 듣는 말이 있다. 누구나 ‘공과 사를 구분하라’, ‘회사에서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일에 지장을 주지 마라’ 등의 핀잔을 들어 봤을 것이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다. 회사는 자신에게 ‘돈’을 주는 대신 성과 창출에 기여할 ‘시간’을 산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공’, 다시 말해 일의 영역과 ‘사’, 즉 개인적 감정 등을 무 자르듯 구분할 수 없다.

갑자기 아이가 아파 지난밤 응급실에 다녀온 부모가 출근 도장을 찍은 순간 아이에 대한 걱정을 잊을 수 있을까. 결혼을 앞두고 전세 자금 마련이 쉽지 않아 고민인 직원이 퇴근 순간까지 그것을 머리에서 깨끗이 지우고 ‘일만’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얘기다. 그래서 리더는, 더 나아가 조직은 구성원 개개인의 상황과 거창하게는 ‘행복’을 챙겨야 한다.

소통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잘되지 않아 안타까운 상대가 있는지 스스로 한번 물어보자. 지금 그 사람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일까. 상대가 최근 무엇을 했을 때 가장 즐거워 보였을까.

이 질문에 대해 선뜻 답하지 못한다면 미안한 얘기지만 소통은 어렵다. 잊지 말자. 소통의 시작은 ‘관심’이다.

상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면 대화는 물 흐르듯 흘러갈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앞서 예를 든 상황으로 설명해 보자.

간밤에 아이와 응급실에 다녀와 불편한 마음을 갖고 출근한 동료가 있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당신은 어떻게 대화를 하는 게 좋을까.

“어휴, 힘들었겠네. 나도 아이 키우면서 그맘때 열이 나 응급실 몇 번 갔었는데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더라고. 응급실 가 봐야 해 주는 것도 없고 말이야.”

혹시 이런 식의 대화가 떠올랐다면 당신은 소통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비난할 수는 없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소통하고 싶다면 참아야 한다. 그냥 들어주면 된다. “어쩌다가 다친 거야. 많이 아픈 거야”라고 말이다.

짧은 감탄사 몇 번만으로도 상대와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금은 좀 괜찮아지긴 했는데”와 같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대화가 나오기도 한다.

◆‘경청’보다 중요한 ‘관심’


그렇다면 결국 ‘경청’만이 답인 것일까. 맞다. 하지만 그냥 ‘듣기’만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듣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생각해 보자. 정말 ‘궁금할 때’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또는 아이의 지금 상태가 어떤지 궁금하면 묻게 된다. 그래서 소통이 되려면 ‘경청 스킬’을 발휘하기 전에 상대가 가진 문제에 대한 ‘호기심’이 필요하다.

조직에선 어떨까. 안타깝게도 많은 리더들은 호기심이 없다. 특히 구성원의 ‘문제 상황’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일이 많다고 푸념하는 구성원에게 공감해 준다고 “어쩌겠어, 조직이라는 게 다 그렇지”라며 오히려 문제를 부추기거나 위로해 주겠다며 “나는 더 힘든 일도 많았어, 그 정도는 참고 해 보자”는 꼰대 같은 잔소리만 하게 된다. 왜 힘든지 진심으로 궁금해 하지 않기 때문에 저런 대응이 나오는 것이다.

많은 리더들은 오랜 조직 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이 직원들의 속성을 잘 안다고 자부한다. 정말 그럴까. 미안한 얘기지만 상대가 힘들어 하는 이유를 타인인 자기가 다 알 수는 없다.
원활한 소통은 상대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다
상대는 자신이 힘든 것과 전혀 다른 맥락 때문에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는데 이를 모른 채 “나도 그랬어”라고 말하면 소통은 끊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도 모르는 상태에서 ‘답’을 주겠다고 나서는 것처럼 무모한 행동도 없다.

‘별문제 아닌 것 같은데 저 직원은 왜 이렇게 힘들어 할까’, ‘매일 점심시간만 되면 사라졌다가 늦게 사무실에 나타나는데 무슨 일이 있나’와 같이 호기심이 생기면 판단하기 전에 묻는다. 그리고 자기 예상과 다른 답변이 나오면 더 물어보게 된다. 이게 대화이고 소통이다.

소통하라고 해서 상대의 얘기를 그냥 참고 들어주는 게 아니다. 그건 ‘성인군자’나 가능한 행동이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상대의 문제에 대해 ‘궁금증’을 가져보면 어떨까. 작은 호기심 하나가 대화를 이어 주는 큰 물꼬가 될 수 있다.

자기 의도를 충분히 설명해도 이해하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는 힘들다. 자신에 대해 오해하며 반발하는 상대와는 마주 앉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이렇게 소통은 어렵다. 그래서 배워야 한다. 설득적으로 말하기 위한 기술은 무엇인지, 상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화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등에 대해 말이다.

하지만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를 향한 자기 마음이다. 상대가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호기심’을 갖고 계속 접근한다면 비록 그 스킬이 서툴더라도 내용은 전달된다. 연설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든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말더듬이였던 것처럼. 결국 핵심은 상대방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6호(2019.12.23 ~ 2019.12.29) 기사입니다.]